28 파라다이스 (Paradise)

[증언의 세대] 새로운 세대

by 아반


더스틴 가족의 낙원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에는 이따금씩 시원한 소나기가 더위를 식혀주고

가을에는 온통 산이 울그락 불그락 물이 들었다.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춥지 않았고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 이듬해부터는 여름에도 한낮의 태양이 그리 뜨겁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절기마다 변화를 느낄 수 있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그렇게 세 번의 절기가 바뀌고 더스틴이 일군 기상관측소 주변의 농원은 과실과 꽃들이 만발하였다.

농원에는 개들이 뛰어다니고 고양이 가족이 따사로운 양지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닭들이 부지런히 모이를 주워 먹으며 수풀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더스틴은 폐쇄 지역에 버려진 가축들을 데려와 돌보고 있다.

염소도 있고 당나귀도 있었다. 기상관측소 뒤쪽 초지에는 소들도 보인다.


더스틴은 그날도 부지런히 과수원에서 나무마다 퇴비를 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준비하는 줄 알았던 더스틴의 아내가 놀라서 더스틴을 찾은 건 바로 그때였다.


"여보 시드가 없어졌어. 아무 데도 보이질 않아."

더스틴의 아내가 다급하게 더스틴을 찾아와서 말한다.


더스틴도 처음엔 아이가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제 네 살 먹은 아이가 가봐야 집 근처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아이가 집 안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스틴도 조금 초조해지기 시작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한다.

아내는 벌써부터 울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다.


"괜찮을 거야. 침착하자. 내가 건물 뒤편을 둘러볼게"

아내는 농원 쪽을 더스틴은 건물 뒤편 언덕 쪽을 찾아본다.


잠시 후 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다시 원래 자리에서 만났다.

사방팔방 다 찾아봐도 아이는 없었다.


"시드~ ", 시드야~", "아빠야~ 어디 있어?"


"시드~", "시드~"

엄마도 따라 불러 본다.




위기 (危機)


주인이 초조해 하자 개들도 같이 따라 짖으며 불안해한다.

그러다 개 한 마리가 무언가 냄새를 맡은 듯 땅바닥을 가리키며 연신 짖어댄다.

더스틴이 가서 확인해 보니 시드의 발자국이 땅바닥에 선명하게 찍혀 있다.


"31번 구역 출입구 쪽이에요."

아내가 절규하듯 소리 지른다.


"그럴 리가 없어"

더스틴은 그 가능성을 지우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찾아보지 않고 남겨진 곳은 유일하게 31번 구역 출입구 쪽으로 난 산길뿐이었다.

아이의 발자국은 얼마 안 가서 무성한 덤불과 자갈에 흔적이 끊겨 버렸다.


더스틴과 아내는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따라 31번 구역 출입구 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개들이 주인 주위를 맴돌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오고 있다.


얼마 안 가서 저 멀리 31번 구역 출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드~", "시드~"

내려가면서 두리번거리면서 계속 아이를 부르고 있다.


더스틴의 아내가 그때 멀리서 시드를 발견했다.

"저기 시드가 있어요."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두려운 마음이 엄습한다.

시드는 출입구 바깥쪽 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앉아서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는 듯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시드~"

엄마의 소리가 아이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때 더스틴도 시드를 볼 수 있었다.

이제 아이를 어서 가서 데리고 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더스틴의 시선이 시드의 맞은편에 이르렀을 때

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늑대다.


한 두 마리가 아니다.

족히 보아도 예닐곱 마리가 아이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커다란 들개 한 두 마리가 늑대 무리에 섞여 있다.


아니다.


수풀 쪽에서 서너 마리가 더 다가온다.


"오 나의 하느님"

탄식하듯 아내의 입에서 간절함이 터져 나온다.


아내는 달리기 시작했다.


"안돼 저리 가"

아내가 소리치며 달린다.


늑대 무리와 아이의 거리가 아내의 거리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내리막길을 아내는 쏜살같이 달려가고 더스틴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늑대들이 으르렁대며 아이를 둘러싸고 있다.


늑대들은 머리를 숙이고 등털을 세우며 아이에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

사냥감을 둘러싸고 덮치려는 동작이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검은 늑대가 앞으로 나온다.

우두머리 늑대가 송곳니를 드러내 보인다.


아내는 거의 실신할 것처럼 울부짖는다.

"아 아 아! 시드 제발!"


더스틴은 돌을 주워서 늑대들을 향해 던져 보지만 너무 먼 거리다.


검은 우두머리 늑대가 아이를 향해 뛰어오르려는 순간,

아내는 무언가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철퍼덕"


달리다가 앞으로 넘어진 아내는 잠시 땅바닥에 넘어진 채로 그대로 있다가

울면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킨다.


늑대가 아이를 덮쳤다고 생각한 아내는 신음하고 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더스틴이 따라와 아내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워준다.


아내가 고개를 들어 늑대가 있는 쪽을 바라보는데

검은 늑대에 가려 시드가 보이질 않는다.


더스틴은 아내를 일으켜 아내와 함께 계속 걸어간다.

아내는 무릎이 깨지고 피를 흘리면서 절뚝이며 걸어간다.


"시드~"

아내의 목소리에 힘이 다 빠져있다.


검은 늑대가 몸을 돌려 옆으로 돌아가자 시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가 손을 뻗어 거대한 늑대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다.

더스틴의 아내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늑대가 아이의 얼굴에 입을 가져가더니

아이의 얼굴을 핥아준다.


개들이 늑대 무리에 다가가 큰 소리로 짖기 시작한다.

더스틴이 부축하던 아내를 놓아두고 늑대 무리로 곧장 들어간다.


"저리 가, 어서! 아이에게 떨어져"


더스틴이 늑대에게 위협을 가하자 검은 늑대가 수풀 속으로 물러나더니 달아나려 한다.

우두머리가 달아나려 하자 다른 늑대들도 하나둘씩 검은 늑대를 따라간다.


더스틴은 발로 땅을 차고 돌을 주워 던지며 늑대들을 모두 쫓아내고 시드를 안았다.

아이에게 혹시라도 상처가 있는지 온몸을 살피려 한다.


절뚝이며 뒤따라온 아내가 더스틴을 밀치고 아이를 안더니 그제야 오열하듯 울음을 터뜨린다.

더스틴도 아내와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린다.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 주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고 늑대보다 엄마, 아빠가 우는 것을 보고 놀란 듯 보였다.


더스틴은 아내를 진정시키고 아이를 안아서 돌아서려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이 쪽으로 오고 있다.


더스틴은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가 쭈뼛 서는 공포를 느낀다.

(저들이 우리를 본 걸까?)


이제 도망갈 수도 없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더스틴은 다가오는 누군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쪽에서 다가오는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누구지?)


남자는 손을 흔들더니 이 쪽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더스틴"


"로버트?"


로버트다.

그 남자는 로버트였다.


더스틴도 아이를 내려놓고 로버트 쪽으로 다가간다.


"로버트"

"더스틴"


두 남자는 서로 달려가 뜨거운 포옹을 한다.

로버트를 안은 더스틴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간다.


"로버트"

더스틴은 갑자기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콧물인지 눈물인지 뜨거운 물들이 더스틴의 얼굴에서 온통 흘러내리고 있었다.

로버트도 함께 울고 있다.


더스틴이 고개를 들어 보니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다.

로버트의 아내와 시드 나이로 보이는 어린 딸이 함께 있다.


더스틴의 아내와 로버트의 아내도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느린 걸음으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더스틴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바로 모건 프리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