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의 세대] 모든 것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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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파이 확산은 31번 구역 봉쇄로 해결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점점 확진자와 사망자가 증가하자 정부는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회는 이미 아나키(Anarchy) 상태로 접어들었고 약탈과 폭행이 벌어져도 경찰은 보이질 않았다.
404 부대
이 부대는 존재하지 않는 부대이다.
404 Not found
404 Not Found는 웹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HTTP 상태 코드로 해당 경로에 해당하는 리소스(페이지·파일)가 없거나 삭제된 경우 404 코드가 뜬다.
그래서 이 부대의 정식 명칭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별칭으로 이 부대를 404 부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더스틴이 31번 구역에서 어느 정도 정착할 무렵,
그는 바깥 지역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폐쇄 지역의 입구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다.
로버트 부부는 어떻게 됐을까?
그 검은 차에게 따라 잡혀 어딘가로 끌려간 것은 아닐까?
모건은 정말 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걸까?
모건이 그날 그 수용소에 간 것이 확실한가?
아니라면 모건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폐쇄 구역 바깥의 상황은 나아졌을까?
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이 해제되고 모든 것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까?
나만 여기서 6.25 때 동막골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기상대 숙소 안에 있는 라디오와 TV에는 오래된 노래와 드라마만 이따금씩 수신되었고
그 마저도 전기를 아끼기 위해 잠깐씩 틀어보다 중단했다.
폐쇄 구역으로 진입하는 도로 입구에는 녹슨 철책과 설치된 울타리 문이 삐걱되며 흔들리고 있었다.
입구 바깥쪽에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일부가 넘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더스틴은 본능적으로 폐쇄 구역 안쪽 길 옆 수풀에 몸을 숨겼다.
흙먼지가 가까워질수록 형체가 또렷해진다.
군용 지프차와 그 뒤를 수송 트럭이 따라오고 있다.
차량이 폐쇄 구역 입구에서 멈추더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가린 사람들을 군인들이 트럭에서 내리고 있다.
모두가 앙상하게 말라 보였고 저항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군용 지프에서 선글라스를 낀 두툼한 사내가 내려서 손짓을 하면서 뭐라고 고함을 치는 것 같다.
그가 모든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수송 트럭에서 내린 눈을 가린 사람들은 대략 10명 남짓으로 보인다.
군인들의 숫자는 그보다 많다.
군인들은 눈을 가린 앙상한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더니 그 위에서 조금 떨어져 일렬로 정렬한다.
그러더니 눈을 가린 사람들의 등 뒤에 선 군인들이 총을 들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선글라스를 낀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손짓을 하자.
일제히 사격을 실시한다.
"타 다당탕 탕, 탕"
군인들은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의 뒤에서 머리를 조준 사격했다.
총에 맞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졌다.
총탄의 속도는 의식을 느끼는 신경전달의 속도보다 빠르다.
머리를 관통한 총탄은 미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사람의 의식을 잃게 한다.
도축하는 소의 고통을 줄이고 가장 인도적인 방식으로 도축하기 위해 두정부 타격법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군인들은 미리 파놓은 얕은 구덩이에 시체들을 던져 넣더니
그 위에 대충 흙과 자루를 흔들어 하얀 가루를 흩뜨려 뿌린다.
바람이 불자 하얀 가루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망자의 비명처럼 떠돌던 흰 가루는 얼마간 그곳에 머물렀다.
모든 것을 다 마치고 차에 올라타기까지 불과 30여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대의 중간 간부가 지휘관 남자에게 뭐라고 하자
지휘관 남자는 침을 "캭 퉤~ "하고 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까딱까딱 흔드니 남아 있던 간부급으로 보이는 군인들도 차에 탑승했다
모든 군인이 다 차에 탑승하자 마지막으로
지휘관 남자는 뒤돌아 잠시 시체들을 바라보다가 선글라스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다
더스틴 쪽을 응시하듯 바라본다.
더스틴은 깜짝 놀라 뒤로 움츠러들었다.
숨이 멎을 것만 같다.
잠시 공포에 질려 그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하지만 지휘관 남자는 이내 뒤돌아 서버린다.
더스틴은 그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404 부대 안소니 대령이었다.
안소니는 31번 폐쇄 구역 전체를 바라보지만 어두운 수풀 속에 숨어 있는 더스틴을 보지는 못하였다.
그는 흡족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군용 지프에 탑승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죽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정부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들일까?
아니면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일까?
더스틴은 아직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날의 끔찍한 장면은 두고두고 더스틴의 뇌리에서 잊히질 않았다.
더스틴은 아내에게 간략하게만 그날의 사건을 알리고 절대 31번 구역 출입구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들에게 31번 구역 출입구는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였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흐르고 다시 더스틴의 낙원은 평온을 되찾았다.
부대를 지휘하는 404 부대 대장 안소니,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다.
그는 군대라는 이름하에 자행하는 온갖 폭력과 살인을 즐기는 미치광이 사이코패스다.
"머리에 똥만 찬 것들, 총알이 머리를 관통하고 지나쳐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안소니 대령은 권총의 총구를 습관처럼 부대원에게 들이밀며 머리통을 날려버린다는 폭언을 입버릇처럼 하고 부대원들을 수시로 폭행하는 인물이었다.
오늘도 안소니는 부대원들에게 다음 작전을 강요하고 있었다.
안소니가 다음 작전 구역을 봉쇄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작전 소령이 묵묵부답이다.
"뭐야? 대답 안 해?"
"..."
안소니가 참지 못하고 소령의 따귀를 갈긴다.
"대답해 이 새끼야"
"민간인을 상대로 한 작전은 더 이상 수행할 수 없습니다. 31번 구역이 마지막 작전입니다."
작전 소령은 작심한 듯 낮은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한다.
부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소령이 안소니 대령의 명령에 불복한 것이다.
항명이다.
"너 이 새끼야, 이거 항명이야. 대갈통에 총탄이 박히고 싶어서 환장했냐?"
안소니 대령은 '그래 너 잘 걸렸다 어디 손 좀 봐줘야겠어'라는 뉘앙스로
오히려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안소니는 주먹으로 소령의 가슴팍을 툭툭 건드리다 세 대를 연달아 세게 내리쳤다.
소령이 버티자
안소니는 뒤에서 소령의 무릎을 발로 차서 꺾어버린다.
소령이 무릎을 꿇고 땅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그리고 화가 안 풀렸는지 주위에 있는 집기들을 집어서 던져 버린다.
이성을 잃은 한 마리의 야수가 날뛰고 있다.
폭언과 폭행으로 부대원들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던 사이코가 더 이상 자신의 통제가 먹히지 않자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안소니는 씩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소령을 쏘아본다.
소령의 눈빛은 이미 굳게 결심한 듯 조금의 미동도 없다.
소령의 눈빛을 확인한 안소니는 눈을 들어 소령 너머에 서 있는 부대원들의 눈빛을 훑어보더니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어 소령의 관자놀이에 겨눈다.
그리고 거만하게 소리친다.
"대답해, 새끼야, 어서!!!"
"어서! 이 새끼야!!!"
"탕!"
방아쇠가 당겨졌다.
작전 소령 옆에서 소리치던 안소니 대령이 무릎을 꿇더니 앞으로 고꾸라진다.
부대원 중 제일 나이 많은 사병의 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노병은 안소니의 뒤에서 안소니의 머리통을 정확히 조준 사격했다.
총알은 안소니의 후두부를 뚫고 들어가 머리를 관통해 이마를 뚫고 나와 버렸다.
노병은 무릎 꿇고 있던 소령에게 다가가 소령을 부축해 일으키더니
"저를 체포하십시오."
"..."
"이것이 저의 마지막 임무입니다."
일어선 작전 소령은 휘청거리다 노병에게 기대어 노병의 가슴팍을 움켜쥐듯이 잡더니
노병의 계급장을 뜯어 버린다.
"너는 이제 군인의 신분이 아니다. 이 시간부터 너는 민간인이다."
소령이 노병에게 뚜렷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이제 너는 자유다. 귀하의 귀가를 허락한다."
그것은 사면 명령이었다.
노병을 사면한 작전 소령은 뒤돌아서서 부대원을 보고 명령한다.
"부대 지휘관 유고에 따라, 현 시각 이후로 본관이 부대 지휘권 및 전시 작전권을 승계한다."
이 말을 들은 부대 팀장이 앞으로 나오더니 구령을 외친다.
"전 부대, 차렷.... 작전 소령님께 경례."
부대원이 일제히 소령에게 경례를 한다.
작전 소령이 부대원을 향해 답례를 마치자 잠시 깊은 침묵이 흐른다.
부대원들은 소령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다.
"부대 해산, 이건 명령이다."
소령이 부대에게 해산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군복에 붙은 계급장을 떼어 내더니 고꾸라져서 쓰러져 있는 안소니의 시체 위에 던져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군복 상의를 벗어서 왼손으로 움켜쥐고
노병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노병의 귀에 대고 말한다.
"집으로 가시죠. 형님"
군인들은 하나둘씩 대열에서 이탈하더니 모두 흩어져 버렸다.
그들은 각자 자기 집으로 그리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아무도 남지 않았다.
부대 연병장에는 안소니의 시체만 엎드러져 있고 붉은 석양빛이 바닥에 고인 피에 비쳐 검붉게 반짝거린다.
어깨동무를 한 노병과 소령은 터벅터벅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군(軍)에 있어 상명하복(上命下服)은 부대의 존립 근거이자 생명이다.
전시 또는 작전 중 지휘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항명은 부대원 전체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이적 행위다.
군형법은 이를 엄격히 다스리며, 특히 전시상황에서의 항명은 즉결 처분을 포함한 최고 형벌, 즉 사형으로 그 책임을 묻는다.
그것은 바로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총살형이다.
정의의 명령을 거부한 안소니의 양심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항명이었기에
그의 이마를 관통한 총알은 뒤틀린 시대를 바로잡는 가장 정당한 법의 집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