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의 역행 (逆行)

Restoration Earth

by 아반


이제 소설은 끝났다


김치전 에세이에서 농담처럼 시작했던 그 이야기가 어느새 <증언의 세대>라는 33화 분량의 소설이라는 건물로 모두 완결되어 세워졌다.

(김치전 에세이란 : 소설이 진짜다)


처음 써보는 소설이었지만 나는 소설가가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나는 시인도 아니다.

나는 문장가도 아니고 에세이스트도 아니다.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노래하지도 않으며

내면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나의 일상과 생활을 기록하지도 않는다.

굳이 나를 분류하자면 나는 공상가(空想家)다.


이제부터 쓰려는 글은 소설이 아니지만 소설이다.

읽다 보면 이거 소설이네 아마 그럴 거다.

사실이 아니라 지독히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소설(fiction)이라는 의미에서 소설이다.


<증언의 세대>의 스핀오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증언의 세대>가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우리의 일상을 상상한 소설이라면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의 지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은 <지구의 역행 逆行>이다.

Retrograde Earth 역행하는 지구.




지구는 병들어 있다


지구의 평균기온이 1°C만 올라도 엄청난 기후변화와 자연재앙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10년 전부터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인류의 미래는 너무나도 암울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전망이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던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보여주는 우리의 미래는 어느덧 현실이 되어 태풍이 오고 홍수가 날 때마다 두려운 광경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면 올 해의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지구의 기온은 해마다 오르기만 할까?


그런데 지구에는 사실 숨겨진 응급 복구 기능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에도 보호모드(Safe Mode)라는 것이 있듯이 지구에도 보호모드 기능이 숨겨져 있다.


단지 지구에 있는 보호모드 기능은 지금까지 한 번도 작동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능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구는 더 이상 보호모드의 작동을 늦출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전조 증상은 분명히 보이고 있다.

마우스의 멈춤, 이따금씩 화면의 흔들림, 그리고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들이 모두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듯이 지구에도 이미 뚜렷한 이상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지구는 해마다 1°C씩 평균기온이 상승해 10년 내에 전 인류가 멸망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호모드 기능이 있다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컴퓨터 보호모드라는 게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남기고 나머지 모든 기능을 셧다운 시키는 기능이라는 걸 안다면 지구가 멸망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지구는 더 이상 인류라는 과부하를 견디지 않기로 했다.

시스템이 멈추기 전, 스스로를 거슬러(逆) 태초의 공장 출고 초기상태로 되돌아가기(行) 시작한 것이다.


지구는 역행(逆行)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