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7화)
우리 회사에는 외국인이 딱 두 명이었다. 나와 한국인 친구 한명.
나머지 500명의 사람들은 전부 일본인이었다.
나는 함께 일하던 이 한국인 친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이 친구는 나랑 동갑이지만 빠른 년생이었기에 나보다 1년 더 일찍 회사에 입사한 친구였다.
그를 처음 만났던 때는 1차 면접 때였다.
일본 사람 아니었어요?
2019년 6월 말, 4학년 여름 방학. 코엑스에 첫 1차 면접을 보러 갔었을 때였다.
5개 기업의 면접을 봐야 했었기에, 스케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아침 9시부터 면접을 보았다.
각각의 기업들이 서로 다른 호실에서 면접을 진행했었기에, 이곳저곳 돌아다녀야 했다.
가장 첫번째로 보았던 기업이 P&G재팬이었는데, 그 타임에만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는 다우니로 유명한 그 피앤지가 맞다.)
지원자들이 많다 보니, 6명의 면접관들이 각각의 부스에서 공장형으로 면접을 보았다.
그 후, 정신 없이 2개 회사의 면접을 보고, 내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당시 이 회사의 면접은 딱 중간 타임이었다. 14시.
면접은 한 조그만 컨퍼런스 룸 호실 안에서 인사부 차장님과 면접자 간 1:1로 진행되었는데,
그 룸 앞에 젊은 일본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 직원이 양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고,
일본어로 면접자들을 안내했다.
'오~ 젊은 직원이네. 나랑 나이대는 비슷해보이는데.. 일본 사람인가본데, 키도 크고 훤칠하구만.'
당시 그 타임에 대기했던 인원은 나 포함 4명 정도였고, 호명되면 들어갔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면접은 30분 정도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면접관님께서 괜찮으면 있다가 저녁식사 같이 하자고 하셨다.
면접이 끝나고, 호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나에게 갑자기 누군가 한국말로 말을 걸며, 쪽지를 건넨다.
"유빈 씨죠? 있다가 저녁 식사 장소 알려드릴게요. 혹시 길을 못 찾을 것 같으면 이 연락처로 전화 주세요."
아까 그 안내하던 직원이었다.
일본 사람 헤어스타일에, 일본어 말할 때 전혀 한국인 악센트나 억양이 없었기에, 완전히 일본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헉, 일본 사람 아니었어요?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길래 일본 사람인줄 알았어요."
그 직원은 나의 말을 듣더니, 하핫 하고 수줍은 웃음과 함께, 있다 저녁 식사 때 뵙자고 하더라.
이 후, 2차 면접 때는 그 직원이 함께 오지 않아, 볼 수 없었다. 출장이라고 했다.
최종 면접때도 그는 지방 영업소 출장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재회
내가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된건, 1년 4개월 만이었다.
코로나 입국 금지가 풀리고, 자가격리 후 사택에 입주하는 그 날이었다.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니 참 반가웠다. 나는 그 친구에게 궁금한게 정말 많았다.
어떤 계기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되었는지, 도대체 어떻게 일본인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었던건지, 일본 취업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알고 보니, 이 친구는 옛날부터 일본 애니에 관심이 많아서 애니를 보며 일본어를 공부했고, 공부하다보니 일본어를 파고 들게 되었다고 했다.
취업 시즌이 다가오자, 처음에 본인은 금융권 쪽으로 생각을 했었지만, 이왕 일할 거 지금까지 공부한 일본어를 써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처럼 일본 취업 박람회를 찾아보고 여기 붙어 오게 된 케이스였다.
당시 이 친구는 회사에서 영어로 된 수입 농기계 관련 매뉴얼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업무도 맡았었는데,
영어에도 능통하여, 회사에서 꽤나 신임을 받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와 주말 저녁에 자주 갔던 시내의 한 바가 있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바 사장님도 처음엔 이 친구가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현지 사람들이 듣기에도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했던 것이다.
못 알아듣는 표현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이 친구 자취방에 가보니, 수많은 일본어 소설 원서가 있었는데,
이거 다 읽은거냐고 하니까 한 80%는 다 읽은 책들이라고 하더라.
이 친구는 일본에 와서 외국인으로 차별 받고 싶지 않아,
일본인들이 말하는 억양들을 최대한 따라하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차별과 독기
나 역시 똑같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당시 한창 강제징용 문제로 인해,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시즌이었다.
주말에 혼자 기차를 타고 아이스하키와 스케이트로 유명한 토마코마이 (苫小牧)를 놀러 갔었던 때가 있었다. 돌아오는 열차를 타기 전 잠시 다이소에 들렀었는데, 그 곳에서 모자를 쓴 한 할아버지한테 차별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점원과 말하는 모습을 듣더니,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범죄 국가에서 왔으면 돌아가. 그 일본어는 어디서 배운거야. 조센징"
아직도 그 때의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말씨가 기억난다.
저 말을 듣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독기가 품어지더라.
나 역시 한국인으로 차별 받고 싶지 않았었기에. 그래서 최대한 현지인들처럼 얘기하려고 노력했었다.
저 일이 있은 뒤로 사택과 회사에서 한국어를 쓸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없애버렸고,
핸드폰에는 한국어 자판을 지우고 일본어 자판만 남겼다. 그 땐 카톡도 잠시 삭제했었던 기억이 난다.
유튜브를 볼 때에도 일본 유튜버 컨텐츠만 보고, 검색을 할 때에도 일본어로 검색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일본어는 자연스러운 일본어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현지인들이 쓰는 말투 하나하나 다 귀기울여 들으려고 노력했다.
듣다 보니 발음에서 미묘하게 차이나는 부분들을 깨달았고,
(예를 들어 양고기를 뜻하는 '징기스칸 (ジンギスカン)'의 징기의 발음을 할 때,
현지인들은 '진기'와 '징기'의 중간, 애매한 발음을 내곤 한다.)
내 원래 발음과의 갭을 줄이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서서히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나와 한국인 친구는 회사에서 만날 때던, 개인적으로 만날 때던, 항상 서로 일본어로 대화했다.
가끔 내가 잘못된 표현을 썼을 때는 이 친구가 수정해주기도 했다.
롤모델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나의 일본어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일본어에 관해서는 그 친구를 롤모델로 삼았었으니까.
그 친구는 일본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친구이기도 했다.
휴대폰 개통을 도와주러 데리고 가고, 이곳저곳 맛집들 소개도 많이 해주고, 같이 여행도 다녀오고.
외국 생활에서의 애로 사항이나, 고민거리도 자주 들어주고.
내가 일본 생활을 마치고 짐 정리 할 때에 차를 빌려주기도 하고, 한국 귀국하던 날에는 공항까지 배웅해줬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친구랑 술을 한잔 했었는데, 친구가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엔 혼자 한국인이다보니 많이 외로웠는데, 너 온뒤로 많이 의지됐다. 아플 때 약 사다줘서 고마웠다."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본인 한국인 혼자였고,
코로나로 연휴 때도 한국에 돌아가질 못했으니, 많이 외로웠을테지.
서로 의지하며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 때문인지, 정이 많이 든 친구였다.
지금은 그 친구도 한국에 돌아왔다.
뭐하고 지낼까 궁금하네. 잘 지내겠지.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