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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빈 Aug 02. 2024

16화 : 정 많던 시공 현장 아저씨들

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6화)

내가 다니던 시설 부서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종류는 크게 나누어 '① 기존 시설 보수, ② 신규 시설 착공, ③ 효율 향상을 위하여 기존 시설에 신규 설비 unit 추가' 이렇게 세 가지가 있었다.


우리가 설계한 도면을 가지고, 고객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문제 없다고 판단되면,

실제 공사 외주업체 측에서 시공을 진행한다.

그 때 우리도 함께 시공 현장에 가서 현장 관리 업무를 진행했다.


시설을 신규 착공하는 경우 규모에 따라 다르나,

큰 시설의 경우에는 설계 비용 + 시공 비용 등 전부 포함하여, 대략적으로 70억 원 정도이다보니,

한번 잘못 설계된 도면으로 시공을 해버리면 수정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기에 다들 주의를 기울였다.


회사에서 담당했던 한 JA 농업시설 (2021년)


당시 프로젝트는 신규 착공은 아니었고, 기존 노후된 설비를 신 설비로 보수 작업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선배를 따라 총 3명이 그곳에서 매일 시공 현장 관리를 진행했다.

현장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공사가 진행되었기에, 회사 차를 타고 사무실에서 7시 10분 정도에 출발했다. (여담이지만, 일본 회사는 사무실에서 출발한 시간부터 근로 시간이 계산된다. 이동 시간도 근로로 포함시킨다는 소리이다.)


공사 현장 주위에는 논밭 뿐이다보니, 마트는 커녕 편의점도 차로 한참 타고 가야 했었다.

그래서 아침에 사무실에서 출발하며 회사 앞 편의점에서 점심 때 먹을 도시락과 음료수를 미리 사서 가곤 했다.


당시 읽었던 시공관리 관련 서적 (2021년)



현장 아저씨들과의 첫 만남


당시 현장에는 공사 외주업체분들 4분이 계셨는데, 세 분은 40~50대가 되신 분들이셨고, 한 분은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30대 형 한분이었다.


아저씨들은 처음 보는 놈이 하나 오니까, '저놈은 누군가'하고 날 쳐다봤다.


당시에는 오전 시공 업무 시작 전 항상 20분 정도 당일 공사 계획, 현재 진척 사항 등을 현장 분들과 같이 브리핑하곤 했는데, 선배가 그 자리에서 나를 소개시켜줬다.

"이번에 시설부서에 새로 들어온 임 군이라는 친구입니다. 한국에서 왔어요."


아저씨 중 한 분이 담배를 하나 꺼내시더니 얘기를 하신다.

"한국에서 왔다고? 전혀 한국인 같이 안생겼는데?
(옆에 30대 형을 가리키며) 이거봐, 얘가 더 한국인같이 생겼잖아. 어떻게 오게 된거야?"


일본 취업 박람회를 통해 대학교 때 면접을 보고, 졸업 이후 건너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더니,

껄껄 웃으시더니, 본인은 한국인을 실제로 처음 본다고 얘기하신다.

(홋카이도 시골에는 해외를 한번도 안 나가보거나 도쿄를 안 가본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면서 항상 단골로 등장하는 말. '나 김치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나왔다.

시내에 한국 김치 맛을 똑같이 재현해놓은 김치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아저씨께 그 곳을 알려 드렸다.


오전 일과가 시작되고, 나는 아저씨들이 실제 공사하는 모습들을 유심히 보았다.

선배는 사무실에서 회사 컴퓨터로 도면을 수정하느라 바빴었고, 나는 실제 도면을 손에 쥐고 시설 설비들의 위치들을 파악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시공 현장 내부 모습 (2021년)


점심 시간이 되어 아저씨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얘기를 했다.

"홋카이도 춥지 않아? 아닌가? 한국이 더 추운가?"

아저씨들끼리 한국이 더 춥다, 홋카이도가 더 춥다 왈가왈부하신다.


나는 한국은 겨울에 홋카이도만큼 눈이 많이 오는 편은 아니지만, 그만큼 기온이 많이 낮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서 춥게 느껴진다고 말씀 드리니, 아저씨들이 '호오~ 그렇구만' 이라는 반응이다.


현장에서는 설비들도 크고 높은 곳에 위치되어 있는 것들이 많기에, (예로 곡물 건조기는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계단을 타고 밑이 그물로 뚫려 있는 통로를 통해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그물로 뚫려 있는 이유는 먼지나 분진들이 많이 쌓이는 환경 상, 밑으로 전부 떨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자칫 한눈 팔면 크게 사고를 당할 일이 많다.


우리도 가끔 현장에서 아저씨들을 도와드리다 보니,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저씨들께서는 처음 온 나를 예의주시하셨던 것인지, 보고 있다가 위험할 것 같다 싶으면 항상 말해주셨다.


당시 시공 현장의 1층 모습 (2021년)

쓰레기를 던지라구요?


아저씨들은 홋카이도 순수 토박이들이다.

그렇다보니 표준말을 공부했던 나에게는 가끔씩 못 알아듣는 표현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쓰레기를 버리다'라는 표현이 표준어로 'ごみを捨てる (고미오 스떼르, 쓰레기를 버리다)'이지만, 홋카이도 사람들은 'ごみを投げる (고미오 나게르, 쓰레기를 던지다)'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에 아저씨가 뭔가 담긴 마대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これ投げてくれる?(이거 던져줄래?)"라고 하시길래, 진짜로 던졌던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버려달라는 말이었다.


'어째서? 왜?' 라는 뜻을 가진 'どうして?(도-시떼?)'도 홋카이도에서는 'なして?(나시떼?)'라고 하고,

이건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는 표현이지만, '정말로, 꽤' 라는 뜻을 가진 'とても(토떼모)'도 'なまら(나마라)'라고 말한다.


홋카이도 특유의 억양과 표현들이 섞이고, 발음이 새는 것을 계속 듣다 보면 또 익숙해지더라.

억양이 살짝 북한스러운 토호쿠 (東北) 지방 억양이랑 우리나라 충청도 억양이 짬뽕된 느낌이다.

듣다보니 그 표현들과 억양이 재밌어서, 나중엔 나도 따라하게 되었다.



아저씨의 선물


눈이 많이 오는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현장에서 시공 전 당일 업무 사항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한 아저씨 핸드폰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고 다시 오신 아저씨는 급하게 짐을 챙기셨다.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아저씨는 무덤덤한 표정이셨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당시 시즈오카에 어머님이 계셨던 아저씨는 국내선 항공편을 예매하기 위해 바로 공항으로 가셨다.


이 후, 3일 정도 자리를 비우셨다.

다른 아저씨가 말하시기를 어머님이 원래부터 건강이 좀 좋진 않으셨다고 들었다고 하셨다.


3일 뒤 아저씨가 다시 돌아오셨다. 다행스럽게도 장례식은 잘 치루셨다고 하셨다.

장례식 치르고 마음이 많이 무거우셨을텐데, 아저씨께서는 시즈오카에 다녀오시며,

우리가 생각나셨다고 사오신 과자를 선물해주셨다.


현장 아저씨께서 장례식 치르시고 오셔서 주셨던 시즈오카산 과자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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