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5화)
오키나와에서 구매한 전통 악기 산신을 꼬옥 안고 데려와, 홋카이도에 돌아왔다.
여전히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고, 남았던 연휴 기간 동안에는 한국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1월 5일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회사 같은 시설부 분들에게 오키나와 이시가키 (石垣) 특산 소금 센베를 나눠드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설계 프로젝트와 시공 관리 현장을 방문하여 업무를 진행해 나갔다.
제가 회사 소개를요..?
한 달이 조금 지났을까, 과장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얘기하신다.
"임군, 무로란 공업대학 (室蘭工業大学) 대학원생들이 우리 회사에 1일 인턴쉽으로 방문하는데,
그 때 회사 부서 소개 프레젠테이션을 임군에게 맡기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한 25분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여담이지만, 일본에서는 취업 활동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루 동안 회사에 직접 방문하여 회사의 소개를 듣고 실제 하는 일들을 체험해볼 수 있는 '1일 인턴쉽'이라는 프로그램을 많이들 시행하고 있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실제 직무의 이미지가 비슷한지 판단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다.
물론 회사에서 교통비, 식비 전부 다 부담해 주다보니, 취준생 입장에서도 경제적 부담은 없는 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대학교 나와 제대로 된 꿈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회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면, 학생들이 생각했던 업무와 실제 업무와의 괴리감이 어느정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코로나 입국 금지 기간동안, 학원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우리 부서 소개에 대해서 조금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셔서 나에게 맡기고 싶다고 하신다.
일본인에게 일본어로 회사 소개를 하는 것..
어떻게 보면 어려울 것 같아 보였지만, 일본어 실력도 늘 수 있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여,
과장님께 대답했다.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이 후, 시공 관리 현장에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본사 사무실에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다.
학원 강사 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며
이번 건은 어떻게 보면, 전문가가 아닌 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가 방문하여 설명 듣는 것이므로,
눈에 한번에 들어올 수 있는 직관적인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PPT 자료에는 설명을 최대한 줄이고 이해가기 쉬운 사진들, 시공 현장에서 찍었던 사진들이나,
현재 설계하고 있는 unit에 대한 설계 요점 포인트만 스크린샷 찍어 작성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전부 말로 설명할 계획으로 진행했다.
먼저 어떻게 부서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을 위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최대한 요점만 간추려 정리했다.
(① 영업, ② 설계, ③ 시공관리, ④ 고객 계약 및 전달, ⑤ 차후 대응)
이 후, 설계 도면들의 unit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그 unit을 이루는 자재들에 대하여 설명하기 위한 페이지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당시 설계하고 있던 것 중,
곡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貯留ビン (저장 빈)이라고 하는 unit이 있었는데,
이 unit은 Panel이라는 자재로 양 옆을 덮어, 곡물이 흘러 나오거나 새어 나오지 않게끔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농업 시설에 관련되어 있지 않거나, 관심 없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빠른 이해를 위해서는,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요놈이 어디에 활용되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원 강사 때 초등학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쉽게 설명할 때도 썼던 방법 중 하나였다.
이 Panel은 의외로 여러 곳에서 사용되는데, 대표적인 곳이 홋카이도 고속도로의 벽이었다.
눈이 휘몰아칠 때를 대비하거나, 방음을 위해서도 수 많은 곳에 설치되기에,
당시 삿포로에서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 찍어두었던 사진을 사용했다.
(일자로 만들어지지 않고, 저렇게 구부러진 지그재그형 구조로 만들어진 이유 역시,
바람이나 여러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의 주인공 마메스케군
혹여나 학생이 지루해하진 않을까,
PPT 전반으로는 마메스케 (豆助)라고 하는 귀여운 콩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농업 시설의 목적이 '농부가 콩과 같은 곡물을 ➀ 수확한 후, 이 곳 시설에 가지고 와서 ➁ 계량하고 ➂ 건조시키고 품질향상을 위해 ➃ 조정시키고 ➄ 포장, ➅ 출하까지 하여 우리가 실제로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콩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에,
마메스케라고 하는 주인공이 농업 시설의 각 공정에 들어가고 나오고 하는 모습을 그의 1인칭 관점에서 설명하기로 했다. (첫번째 퀘스트 수행, 두번째 퀘스트 수행 같은 셈이다.)
이 후, 설명이 끝나고 실제로 함께 10~20분 정도 unit을 설계해보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었다.
panel 한 개를 설계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준비 또 준비
대학교 시절 30분 강연을 2회 해본 경험이 있는 나였지만,
이번에는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그것도 일본인에게 부서 업무에 대한 전문 내용을 설명해야 했기에,
역시 1주일 전부터 퇴근 후 사택에 돌아와 계속 준비했다.
스피치 발표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대본을 작성하기보다는,
PPT 자료에 담긴 사진들을 보고 설명할 수 있도록 이미지화 하는 데 주력했다.
'각각의 페이지마다 다른 마메스케의 표정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3번 항목을 설명 할 차례구나'라고 기억했고,
PPT 페이지를 차례대로 넘기며 각각 페이지를 설명하는 데 소요된 시간을 측정하며,
조금 지체가 되는 페이지는 설명을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발표 당일
원래대로라면 오전에 왔어야 할 대학원생들.
하지만 당시 폭설로 인해 기차가 많이 지연되었다고 하더라.
(무로란에서 삿포로까지는 기차로 대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결국 오후에 도착하여 인사팀 차장님께서 직접 데리러 가셨다.
오전 업무가 끝나고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안되어 우리 쪽 부서에 문이 열리고, 인사팀 차장님께서 학생들을 소개시켜 주셨다.
정말 앳된 친구들이었다. 일본은 군대를 가지 않으니 대학원생들도 23~24살 정도가 많다.
과장님께서 부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해주셨고, 이 후 내가 발표하게 되었다.
과장님께서 어깨를 툭 치시며 가신다.
"임군, 화이팅. 긴장하지 말고."
다행히 학생들도 밝은 표정이었기에, 내가 준비했던 발표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 이렇게 폐사에 발걸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설부서는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으며... (중략)
저, 한국인인데 혹시 일본 사람이 듣기에 조금 어색할 표현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본격적인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도중도중 PPT자료에 등장하는 마메스케군을 보며, 설명을 쭉 이어나갈 수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학생들도 끄덕끄덕 하며 "오~소데스네 (오~ 그렇군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간에 질문이 몇 가지 있었으나, 최대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했다.
내가 답하기 어려운 전문 지식들에 대해서는 중간에 과장님께서 잠시 도와주셨다.
이 후, 발표가 끝나게 되었고, 학생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덕분에 이해하기 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메스케군 왜 이렇게 귀여운거죠?"
그 얘기를 들으니 준비했던 1주일이 정말 보람되더라.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