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4화)
나하 공항부터 이어진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의 호텔이 있는 역으로 향했다.
모노레일 안에서는 각 역에 도착할 때마다, 안내음으로 오키나와 전통 민요 멜로디가 나왔고,
주위 건물 간판 곳곳에 쓰여 있던 오키나와 방언을 보고 이제야 새삼 실감이 났다.
역부터 호텔까지는 1km 정도였는데, 캐리어도 있고 해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본토 택시와 똑같은 차종이었는데, 색깔은 흰색에 파란색이 섞여 있던 차량이었다.
기사님께서는 캐리어를 직접 트렁크에 넣어주셨다.
당시에는 이렇게 더울 줄은 생각도 못해서, 긴팔 맨투맨을 입고 갔었는데,
출발하고 얼마 안되서, 더워서 땀을 조금 흘리는 나의 모습을 본 택시 기사님께서 여쭤보신다.
"오키나와 많이 덥죠? 하하 잠시지만 에어컨 좀 틀어드릴게요. 도쿄에서 오셨어요?"
(전혀 외국인으로 보지는 않더라..)
연말연시 휴가로 홋카이도에서 놀러 왔다고 하니까 놀라셨다.
"오~ 홋카이도! 엄청 추운데서 오셨네요. 거긴 지금 몇 도에요?"
사택에서 출발할 때, 버스를 기다리며 찍었던 사진을 보여드리니,
'어우~ 추워!' 하시면서, 자기는 지금까지 계속 오키나와에서 살았는데, 홋카이도에 가서 살라고 하면 얼어죽을 것 같아서 못 살거라 하시더라.
해태와 시사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먼저 나하의 유명 거리인 국제거리 (国際通り)에 가기로 했다.
짐이 없으니, 동네 골목 구경도 할 겸, 걸어서 갔다.
길을 걷다가 주차장에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본넷 위에서 자고 있더라.
가까이 다가가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니 요 녀석 실눈을 한번 뜨더니, 다시 쿨쿨 꿈나라로 떠났다.
잘 자게 냅두고, 다시 갈 길을 향해 갔다.
조금 걷다보니 도착한 국제거리.
딱 1마일 (1.6km)되는 쇼핑 거리인 이 곳은 원래 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던 곳이었다.
이 후 여러 개발을 통해 쇼핑 거리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경제 성장에도 큰 배경이 되었기에 '기적의 1마일'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알록달록한 색채의 건물들, 그리고 남국으로 왔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는 야자나무 거리를 거닐며,
오키나와의 특산품인 망고푸딩, 흑설탕 초콜릿을 먹어보고,
국제거리에서 유명한 크로와상 집에서 직접 빵을 직접 굽는 모습도 구경했다.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는 오키나와의 전설 동물인 '시사 (シーサー)' 모형도 팔고 있어 하나 샀다.
(일본에는 관공서, 일반 주택, 가게 할 것 없이 조금 규모가 있는 건물 문 앞에는 항상 시사 석상 두 마리가 서 있다. 아마 건물을 지켜달라는 의미에서 설치한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나라로 치면 '해태'와도 같은 셈이다.
생긴것도 둘이 비슷하게 생겼다.)
먼 곳에서 느꼈던 고향의 맛
첫째 날 점심 식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때, 오키나와의 소울 푸드인 유시토후 (ゆし豆腐)를 먹었다. 우리나라의 순두부와 비슷한데, 순두부에 가스오부시가 들어간 버젼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순두부에 가스오부시 조합이라..’
생전 처음 보는 조합에, 입맛에 맞을까 싶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한입 먹는 순간, 순두부로 유명한 내 고향이 떠오를 정도로 정겹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 사이드 메뉴로 주신 계란후라이를 밥에 얹고, 국물과 함께 먹으면 그게 또 맛돌이였다.
(왜 계란후라이를 주나 의문이었는데, 다 이유가 있더라.)
가게는 좁지만 아늑했고, 한 곳에는 일본 여러 종류의 사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기도 오토바이 천국이냐
당시 날씨는 구름이 많이 꼈기에, 햇살을 직접적으로 받지는 않았지만, 덥고 습한 공기는 오키나와 전역을 가득 메웠다.
12월 한 겨울에도 반팔 혹은 가디건 걸치고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다보니, 오토바이는 사시사철 이곳의 많은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곤 한다.
기후가 비슷한 옆 동네 대만도 오토바이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곳도 그랬다.
조그마한 동네나 골목은 보통 전기 오토바이로 택배를 배달하는 경우가 많았고, 시장 골목에도 별도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을 정도였다.
차종들을 보니 고배기량은 거의 없고, 스쿠터가 많았는데, 출퇴근이나 동네 마실용으로 많이 타고 다니는게 아닌가 싶었다.
(반대로 홋카이도는 오토바이가 많지 않다. 4월 말까지 추위가 계속 되다보니 다들 자가용을 끌고 다니고, 여름철에는 스쿠터보다는 라이딩을 할 수 있는 고배기량 스포츠 바이크들이 자주 돌아다녔다.)
오키나와만의 특유 산호커피
오키나와 제도의 바다에는 수많은 산호가 있는데,
그 중, 죽은 산호들이 정말 많다고 한다.
얘네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생각한 한 기업이 이 죽은 산호들을 모아서 커피를 로스팅하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고 하는데,
죽은 산호들을 태워 그 열로 커피를 로스팅하고,
커피를 판매한 수익의 3.5%는 새로운 산호를 심는데 기부한다고 한다.
산호를 재활용하는 셈이니, 커피값도 정말 쌌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150엔 (당시 한화 1,500원)였다.
그렇다면 왜 이름이 35커피일까?
일본어로 さんご (산고) 라고 하는 35의 발음이 산호와 같다고 하여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국제거리에 가면 큰 빌딩 안에 매장이 있었는데, 맛도 꽤 괜찮아서 여행 당시 매일 들러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류큐 왕국 시절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슈리성
오키나와는 원래 1879년까지는 류큐 왕국 (琉球王国)이라고 하는 독립적인 국가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가 예전 '탐라국'이었던과 같은 느낌. 다만 탐라국과 다른 것은 독자적 외교를 할 수 있었던 점.)
이 후, 일본제국에 흡수되어 지금의 오키나와 현으로 일본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오키나와의 국립대학 중 류큐대학도 있고, 지역 은행 이름도 류큐은행, 방송 이름도 류큐방송이 있다.
당시 나하 모노레일을 타고 마지막 종착역까지 달리다보면, 슈리(首里)라고 하는 역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5-10분 정도를 올라가면, 류큐왕국이 일본에 합병되기 이전, 독자적인 건축 양식으로 지었던 슈리성을 볼 수 있다.
확실히 내가 지금까지 알던 일본의 성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오히려 중국이나 대만에서 볼 법한 느낌에 가까웠다.
보통의 일본의 성은 검정과 하양이 주 배경 색이 되어, 성 내부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 일본 특유의 절제된 미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 곳 슈리 성은 내부가 중국 성처럼 화려했고, 외부도 빨강 색이 주를 이루었다.
위에 올린 사진은 2018년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찍었던 사진인데, 2020년 겨울에 다시 가보니 화재로 인해 궁이 전소되어 더 이상 볼 수 없었기에 2018년 사진으로 대체했다.
별관에는 전시관이 있었는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엘리베이터가 눈에 띄었다.
조금의 높이이지만 경사로 대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던 것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는 아직도 기억에 인상 깊게 남는다.
슈리성에서 조금 내려가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토라세공원 (虎瀬公園)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나하 시내 전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일반 가정집도 보이고, 저 멀리 라오스나 태국에서 볼 법한 느낌의 빨간 지붕으로 된 곳도 있었다.
찾아보니 미술 대학이었다.
습하고 더운 기후때문일까. 동남아 건물들처럼 바람이 잘 통하라고 벽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건물들이 많았다.
아하렌? 생전 처음 봤던 성씨들
오키나와가 일본에 흡수된 지 상대적으로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독자적인 성씨들도 많다.
편의점이나 서점에 있는 직원 이름표를 한번씩 보면, 본토에서는 한번도 못 봤던 토속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예를 들어 '시마부쿠로 (島袋)', '아하렌 (阿波連)’, ‘코쟈 (古謝)’ 등등..
직원 이름표에 가타카나로 쓰여있다보니, ‘아하렌’의 경우에는 외국인 직원인줄 알았다.
(일본에서 가타카나는 외국인 이름을 표기할 때 주로 사용했기에)
찾아보니 오키나와 토속 성씨라더라.
돌아와서 회사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사토(佐藤)나 이토(伊藤), 하야시 (林) 와 같이 흔한 성씨가 아닌 토속 성씨라면 ‘이 사람은 오키나와 출신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더라.
미국과 일본 사이 그
어딘가. 오키나와
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한 이후, 오키나와에는 미군이 주둔했고, 1945년부터 1972년까지 27년 간 미군에 의해 통치되었다.
(여담이지만, 오키나와는 미군정 이후부터 일본에 다시 반환되기 전까지는 미국을 따라 자동차가 좌핸들 우측통행으로 다녔었다. 본토는 우핸들 좌측통행. 같은 나라인데 서로 반대였던 것이다.
이 후,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에 반환되고 1978년 7월 30일부터 우핸들 좌측통행으로 전환되었다. 이를 730체계라고도 한다.)
그렇다보니, 오키나와 섬 곳곳 미국 영향을 받은 곳들을 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아메리칸 빌리지’라는 곳이다.
미군정 이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은 비행장 부지를 미국스럽게 꾸며놓은 곳인데, 피자, 햄버거, 파스타부터 여러 서양 음식들을 많이 팔고 있는 관광 명소이다.
나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 가면 보이는 곳인데, 버스비는 대략 편도 800엔 정도 했던 것 같다.
매력적인 음색의 오키나와 전통 악기 ‘산신’
오키나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하나 있었다.
바로 국제거리, 쇼핑몰에서 쉴 새 없이 나오던 오키나와 전통 민요.
산신(三線)이라고 하는 악기로 연주한 민요들이 정말 많이 흘러나왔었는데, 오키나와 전통 음악들은 일본 전통 음계 (요나누키 음계)와는 다르게 좀 더 흥이 나고 독특한 음계를 사용하더라. (도레미파솔라시도에서 ‘라’를 뺀 음계라고 보면 된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전통 음계와도 비슷하다.)
이 산신은 본토 악기 샤미센과 많이 닮았는데, 크기는 샤미센보단 좀 더 아담한 사이즈고, 음색은 우클렐레와 비슷하지만 좀 더 쫄깃한 맛이다.
여행 종종 어딜 가도 듣게 되다보니 그새 음색에 매료되어 버렸고, 결국 참지 못하고 국제거리에 있는 유명 악기점에 가서 삼신을 하나 데리고, 홋카이도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씩 오키나와 전통 음계로 노래를 만드는 유명 밴드 ‘Begin’ 아저씨들의 곡을 듣곤 하는데, 들을수록 자꾸 듣고싶어지는 매력은 덤이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