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3화)
저 멀리 남국으로
12월 25일부터 1월 4일까지, 장장 10일에 걸친 대연휴.
25일에는 과장님과 점심 식사, 26일에는 같은 시설부 선배, 동기와 저녁 식사를 하고,
남은 기간 동안에는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국내선 항공권이 싸게 나와, 오키나와를 가기로 했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서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의 거리는 3,000km에 달했었고,
비행기로는 장장 3시간 반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2020년 12월 28일.
출발 당일 홋카이도는 기온 -4도, 눈이 정말 많이 내렸었다.
그때는 아직 차가 없었기에, 사택에서부터 역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렸는데,
한참이 되도 오지 않길래 설마 운행 안하는건가 싶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캐리어와 함께 15분 정도 기다렸다.
택시를 알아봐야 하나 하던 찰나, 버스가 저 멀리서 왔다. 휴.. 다행이었다.
타니까 말끔한 제복을 입은 기사 아저씨가 얘기한다.
"오늘 저 쪽에 제설하느라고 돌아오다보니 운행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했어요. 죄송합니다."
삿포로 역에서 신치토세 공항 가는 쾌속 에어포트 (快速エアポート) 열차를 타고 국내선으로 향했다.
폭설임에도 시속 100km로 쏘는 기차를 타고 가며 졸다가, 옆에서 마주오는 기차가 쌩 하고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
옆에 탄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얘기한다.
"왜 이렇게 깜짝 놀래요. 하하하"
국내선에 도착하여 보딩패스를 받고, 보안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다.
당시 기내는 만석이었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나 빼곤 다 일본인인 것 같더라.
하긴 코로나 시기기도 했고, 외국인들이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놀러는 입국이 안 되었을테니까.
(여담이지만, 참고로 우리나라와 다르게 일본 국내선은 신분증 없이도 탈 수 있다.
검사조차 하지 않는다. 보안검색만 하고 버스 타듯이 탄다. 그래서 가명으로 탑승해도 무방하다.
신기하게도,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주민등록증이라는 개념의 신분증이 없었다.
당시 마이넘버 카드라는게 생기긴 했지만, 개인정보 유출 같은 걱정으로 발급율도 저조했다. 지금은 75% 정도가 발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신분 확인을 할 때에는 보통 여권, 운전면허증 같은 것으로 진행한다.)
비행기 잘 가고 있는거 맞지?
킨들로 AI 관련된 전자책을 보며, 한 1시간 반 정도를 날았을까?
기내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심하게 났었다. 항공기 특유의 등유 매연 냄새였다.
옆 자리 아저씨가 승무원을 불러 '이거 문제 있는거 아니냐'고 물어봤었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고 하더라.
아저씨가 나한테 이렇게 얘기했다.
"ふう, もう終わりかと思った。(후우, 이제 끝인가 싶었다.)"
얼마 전 항공기 시스템 쪽을 공부했었는데,
지금 그 때의 일을 되돌아 생각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원인은 다음과 같다.
당시 순항 고도에서 잘 가고 있던 비행기가
타 항공기와의 접근 때문에 TCAS가 작동한건지, 관제탑 지시에 의한 건지,
고도를 높임과 동시에 엔진 파워가 유난히 빠르게 올라갔었다.
그 이후 매연 냄새가 3~4분 정도 심하게 났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내에 들어오는 공기는 엔진에서 압축된 공기를 사용한다.
압축된 뜨거운 고온 고압의 공기를 열교환기와 터빈으로 냉각시키고, 온도를 조절시키고,
필터를 거쳐 내부로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것이 기본 원리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기종별 공조 매뉴얼이나, ATA 21 (AIR CONDITIONING AND PRESSURIZATION)을 참고.)
헌데, 급격히 엔진 추력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경우에는, 불완전 연소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필터에서 못 거르고 기내에 그대로 매연이 들어오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게 계속 지속되면 문제가 되었겠지만,
이 후, 엔진이 정상적으로 순항하며, 곧 이어 매연 냄새가 사라지게 되었던 걸로 봐서는
일시적인 불완전 연소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나라 맞아?
착륙하기 전, 저 멀리 보이는 오키나와는 마치 내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분명 홋카이도는 눈바람 몰아쳤었는데, 여긴 무슨 여름이네. 진짜 같은 나라 맞냐?'
저 멀리 보이는 건물들도 삿포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본토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 양식이었고,
오히려 대만이나 베트남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슈리성 근처 주택들을 보면, 베트남처럼 물탱크를 옥상에 전부 설치해놓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날씨가 그리 춥지 않다보니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착륙 후, 공항에 내려보니 습하고 더웠다. 여긴 정녕 12월 겨울이 맞는거니?
날씨를 찾아보니 23도이더라.
그 이질감에, 뭔가 입국 심사라도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항 출구에는 'めんそーれ (멘소레)'라고 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산신 (三線)이라고 하는 오키나와 전통 악기로 연주한 음악들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출구를 빠져나오고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를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오키나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멘소레'는 '환영합니다'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말로 따지면 '혼저옵서예'같은 느낌의 오키나와 방언이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