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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유빈 Aug 11. 2024

18화 : 저 먼 오비히로로 지원 출장을 가다.

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8화)

2021년 5월 중순,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을 향해 갈 슬슬 더워질 시즌이었지만,

당시 홋카이도는 추위가 가시고 한창 선선한 봄의 계절이 찾아올 시즌이었다.

농번기에 설비 풀 가동을 해야 했기에, 농한기 (겨울) 시즌에 대신 몰아서 일을 했던 시설 부서 선배들도 연차를 쓰고 휴가를 갈 시기였다.


어느 날, 부장님께서 나를 불렀다.

"임군, 제품 판매추진 부서 직원이랑 오비히로로 일 주일 정도 출장 다녀와야겠다. 공구 챙겨가."


오비히로,

회사 사람들로부터 이름만 들었던 곳인데 도동 (道東) 쪽은 어떤 느낌일까? 꽤 궁금했다.

동네가 하도 넓다보니, 감이 오지 않았다.


당일, 처음 회사 부서배치 후 선물 받았던, 꽤나 무거웠던 공구 세트를 챙겨 회사 차에 실었다.

(TONE는 일본에서 꽤나 유명한 브랜드이다. 공구 자체를 만질 때의 손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선물 받았던 공구 세트 (2020년)


당시 같이 갔던 제품판매추진 부서 직원은 나와 동갑이었는데, 당시 트랙터를 담당했던 직원이었다.

이 직원은 도쿄 인근의 그룹 본사에서 출향을 왔던 엘리트 사원이었는데,


(일본은 전국 각지에 그룹사 개념의 회사가 많다. 따라서 어디든지 2~3년 정도 파견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출향 사원 (出向社員)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쉽게 말하면 국내판 주재원인 셈인거다.


여담이지만, 최근 회사 후배와 통화했었는데, 이젠 북해도, 큐슈, 칸사이 등등의 회사가 전부 하나로 합병된다고 하더라.)


갈 때에는 그 친구가 운전을 해서 갔다.


고속도로를 타고 RA (Rest Area)라고 하는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달리고 달려, 3시간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톨비를 보니 5,890엔 (한화 58,900원 수준)인 걸 보고 충격에 빠졌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고,

드넓은 토카치 평야 (十勝平野)의 논밭이 펼쳐진 오비히로의 모습을 보며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도동 지점으로 향했다.


드넓은 논밭이 펼쳐진 오비히로 전경 (인터넷 사진 발췌)



처음 만났던 도동 지점 직원분들


우리가 지점에서 지원했던 업무는 트랙터 뒤에 부착하여 작업을 진행하는 '작업기 조립'이었다.

작업기는 독일제 수입품이 꽤 많았는데, 조립을 한 상태에서 일본으로 보내게 되면 운송 도중 여러 리스크들이 있기에, 부품을 하나하나 받아, 일본 현지에서 조립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그곳 부서의 사람이 꽤나 부족하여, 본사에서 몇 명씩 돌아가며 한 주씩 지원 파견을 나가곤 했었는데,

이번엔 나와 그 직원이 같이 오게 된 것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 처음 뵙는 지점 직원분들과 인사했다.

현장 반장 (당시 치프라는 명칭으로 불렀었다.)으로 보이는 분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웃으며 본인이 아는 한국어가 이거밖에 없다고 하신다.


마침 점심시간이 다 되었기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와서 사무실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남는 시간동안 항상 스도쿠 책을 펴서 풀던 한 주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임군은 평소에 농기계 쪽에 관심이 있어서 이 회사를 들어오게 된거야?"


면접 당시 느꼈던 생각과 그 때 있었던 일들을 그 분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 분은 미소를 한번 지으시고, 다시 스도쿠 풀기 삼매경에 빠지러 갔다.



본격적인 작업기 조립 시작


오후가 되어, 본격적인 작업기 조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작업기는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이다보니 내구성이 좋아야 했다. 따라서 일반적인 농업 시설에 들어가는 볼트, 너트보다 훨씬 큰 것들이 들어가다보니, (대략 직경이 2배 정도 큰 수준이었다.) 주로 에어 렌치를 사용했다.


우리가 주로 조립했던 작업기는 축산업이 크게 발달한 도동 지역에서 소에게 먹일 건초들을 만들기 위한 기종들이 대부분이었는데,

1. 트랙터의 엔진 힘으로 유압을 돌려 통에 담긴 비료를 흩부리게 하는 '비료 살포기',

2. 회전하는 디스크 칼날로 목초의 수분을 빠르게 날려버리는 역할을 하는 '디스크 모어, 모어 컨디셔너',

3. 어느 정도 건조된 목초를 다시 한번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며 건조시키는 '테더 (반전기)',

4. 테더로 흩뿌려진 건초를 다시 한 곳으로 모으는 '레키 (집초기)'

이 4가지 종류를 조립했다.


테더, 레키의 경우에는 완제품 하나 만으로도 왠만한 중형차 정도 수준의 무게였으니, 자재들 하나하나가 꽤 무거운 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르지 않은 논밭의 땅에 제대로 작업기를 지탱시켜 주기 위해서, 작업기 바퀴 하나 무게만 30~40kg는 나갔었다.


여담이지만, 테더, 레키는 작업기 한 대당 4-5천만원 정도 한다.)


당시 조립했던 자재들 (2021년)


영어로 쓰여진 매뉴얼을 보며, 하나하나 차근차근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테더에 달린 바퀴 같은 경우에는 총 8개였지만, 각각 조립 방향이 달라, 잘못 조립했다가는 나중에 재조립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그만큼 매뉴얼과 친숙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몇 일이 지났을까? 조립을 좀 하다보니, 서서히 손에 익었다. 타자 치듯이 몸이 기억하더라.

부품들을 에어 렌치로 얼마 정도 조여야 되는지, 세게 조이면 부러질 가능성이 있는 부분들이 몸에 자연스럽게 터득되다 보니, 확실히 조립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사실 두번 째 날, PTO 연결부위 (트랙터와 작업기를 유압 연결할 수 있는 부위)의 작은 볼트를 세게 조여서 한번 부러뜨려 먹은 기억이 있었기에, 더 기억에 잘 남았다.)


조립 원리와 순서, 그리고 매뉴얼 상 주의할 부분들만 금방 캐치하면 그 다음은 숙련도가 좌지우지하는 것이다보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당시 볼트 부러뜨려 먹었던 비료살포 작업기의 PTO 연결부 (2021년)

やり甲斐 (보람)


생전 해보지 않았던 1주 간의 작업기 조립 지원 업무였다.


낯선 경험이었지만 나는 업무를 하며 ’이 거대한 작업기를 완제품으로 조립해냈다.'라는 보람감과 성취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작업기 조립이 완료되면 현장 반장 (치프)님이 실제 트랙터에 작업기를 연결하여 작동 테스트를 해보곤 했는데,


저 1500kg가 넘어가는 거구가 트랙터 엔진 힘 하나에 의해 날개가 접히고 펼쳐지고,

타인 (テッダータイン, 작업기 바퀴 옆에 보이는 노란색 철 막대기. 이 막대기를 가지고 건초를 돌려버린다.) 이 유압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모습 등.


실제로 작동되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날개가 접히고 펼쳐지고, 트랙터 유압에 의해 작업기가 들어올려진 모습 (2021년)


보통 테더와 레키의 경우, 한 대 조립을 8시간 걸쳐 진행하는데,

내가 조립 재밌다고 신나서 혼자 4시간 만에 한 대씩 완성해버리니, 이 사실이 본사에 연락 갔던 모양이었다.


본사에 돌아오고 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임군, 다음주도 다녀와줘야겠다.”


그래서 그 다음주도 지원 다녀오게 되었다.


당시 지원다녀오며 사온 테더, 레키 작업기 피규어 (2021년)

다음 화에서.




내가 조립했던 작업기가 실제로 작동되는 모습. (회사 홈페이지에서 영상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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