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본에 취업했던 이유 (1화)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2010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가봤다.
생애 첫 해외 경험이다 보니, 출발하기 1달 전부터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다.
1주일 전부터는 잠도 안왔다. 당일은 그 기대감 때문에 날밤 샌것 같다.
당시 부산에서 출발하여 시모노세키 (큐슈와 혼슈가 만나는 칸몬해협이 있는 그곳)로 향하는 부관훼리 대형 페리를 타고 갔었다.
밤 9시에 출항하여, 다음 날 아침 7시 경 도착했던 정말 큰 여객선.
(대략 승객 560명 정도를 재울 수 있는 규모였다.)
배에서 하룻밤을 자고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선내에 있는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고 갑판 쪽으로 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일본.
일본은 좌측통행이라고 들었는데, 저 멀리 도로에서 차들이 왼쪽으로 다니는 모습이 되게 신기했다.
멀리 보이는 빌딩에는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아 내가 진짜 일본에 왔구나.'
일본 세관 공무원들이 6시에 출근을 하기에, 배는 항구 근처에서 조금 기다렸다 입항했다.
배에서 내리고 항구 건물에서 나오고 처음 내가 보았던 일본의 모습은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고 깔끔했던 도로의 모습이었다. 아스팔트는 마치 방금 깐 것 같은 듯,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TV에서만 봤던 노란색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박스형 경차들이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당시는 한창 일본 경제가 부상하던 2010년.
엔화가 1400원/100엔 까지 올라갔던 시절이라 모든게 비쌌던 때였다.
하우스텐보스, 벳푸, 유후인, 하카타, 구마모토, 아소, 나가사키 등 여러 곳을 다녀보고 짧았던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해외를 한번도 나가보지 않았던 나에게 일본이란 나라는 신세계였다.
모든게 새로웠고 모든게 신기했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던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
그 이후, 일본에 대해 관심이 커졌고,
고등학교 때 예대를 포기하고 일반 대학교에 들어와서 들었던 생각은 나중에 일본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어와 어순이 같은 점과 중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배웠던 한자 덕에, 쉽게 터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새로 만난 인연, 그리고 터닝 포인트
대학교 재학 중,강남 교보문고를 갔었던 적이 있었다.
책을 보던 도중, 딱 봐도 일본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와 서점 직원과의 대화가 서로 안통하는 것이 보여,
당시 배웠던 일본어로 통역을 도와 드렸다.
나는 당시 한창 명탐정코난과 노다메 칸타빌레에 빠져있던 때라, 가방에 원서를 넣어 들고 다니곤 했었는데, 통역이 끝나고 마침 읽고 있던 원서를 할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그 할아버지께서는 도와줘서 고맙다고, 본인이 일본 돌아가면 선물을 보내주고 싶으니 자택주소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종이에 써서 그 분께 드렸고, 그냥 인사 치레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후 잊어버렸다.
그 후 1달 정도 지났을까, 아침에 어머니가 날 깨우셨다.
'국제 우편이 왔는데, 너한테 온 것 같다.'
확인해보니, 그 때 만났던 할아버지가 선물을 보내주셨다.
박스 안에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도와줘서 고마웠다고 삐뚤빼뚤한 한글로 쓰신 손편지와,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와 명탐정 코난 DVD가 들어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단순히 인사치레로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의 진심을 느꼈다.
이 후, 그 할아버지와 펜팔 같은 느낌으로 메일을 서로 주고 받았고,
할아버지께서는 메일로 내가 부족했던 일본어 표현들에 대해 고쳐주시고 알려주시곤 하셨다.
2016년 여름, 할아버지께서는 일본에 우리 가족을 초대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다.
비행기를 타고 칸사이 공항에 도착하고, 공항에서부터 마중 나와주신 할아버지와 함께 와카야마 (和歌山)의 할아버지 자택으로 향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부모님께서 처음 일본을 방문하셨기에, 오사카, 나라, 교토 등 이곳저곳 많이 보여 주시며 관광을 시켜주셨고, 초밥 (쿠라스시/くら寿司, 일본의 유명한 회전 초밥 프렌차이즈)부터 오사카 신세카이에 위치한 스모 선수들이 자주 먹었다는 챵꼬나베 (ちゃんこ鍋) 전문점, 전국 라멘대회 1등 했던 와카야마 중화라멘 요리점 등 여러 음식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일본 음식들을 소개시켜 주셨다.
밤이 되어서는 본인의 집과는 반대였지만, 호텔까지 데려다 주셨다.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한창 K-POP에 관심이 있었던 한 일본인 고등학생 친구를 만나게 해
나에게 소개 시켜 주셨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 친구와 라인을 통해 계속 연락을 하며 지냈었다.
그 친구는 2017년 한국에도 한번 놀러와 명동, 북촌 한옥마을부터 한국의 이곳 저곳을 구경 시켜 주고,
당시 좁았던 내 자취방이었지만 재웠던 기억이 난다. (복층이었지만 창문이 정말 작았고, 환기가 잘 안되었던 곳이었다.)
한국 음식이 입맛에 맞아서, 여러 한국 식당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 친구는 지금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가스 관련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나는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쩌면 할아버지 덕분에 내가 일본어 공부에 더욱 더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동남아 살았던 시절에도, 일본어를 공부하던 현지 친구들, 그리고 JICA (우리나라로 치면 KOICA)에서 일하던 일본인 선생님들과 자주 연락하고 만났었다.
정말 주에 4회는 만났던 것 같다. 어떻게든 그들에게 일본어를 더 배우고 싶었다.
(선생님 중 한분은 이번에 한국에 놀러왔던 분이다.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엔 휴무에 히로시마를 가야지. 8년지기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본격적인 일본 취업 활동 시작
이 후, 한국으로 귀국하고, 나는 영어 공부보다도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었고,
3학년 때부터는 일본 NHK 뉴스와 신문을 하루종일 봤었다.
대학교 4학년 떄는, 자취방 TV에서 NHK 뉴스만 하루종일 틀어놓고, 학교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본어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되고, 한국무역협회에서 주관하는 CIJ라고 하는 일본 기업 채용 박람회에 원서를 넣었다. 그 중 서류 합격된 곳의 면접을 보았다.
여러 기업들이 있었다. 정말 떨렸다.
코엑스에는 일본인 면접관들이 사방팔방에 있었고, 일본어로 면접을 보았다. 1차 면접을 3군데 합격했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 기업은 정말 사람을 중요시하는구나.'라고 생각되는 회사가 한 곳 있었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에 위치했던 농기계 회사였다.
1차 면접이 끝나기 직전, 이토 (伊藤)라고 하는 인사과 차장님께서, 괜찮으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었다.
면접자 2명과 직원 1명, 인사 담당자 1명과 함께 청담 이자카야 이상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맥주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알고보니 여기 저녁식사에 초대된 사람들은 '1차 합격된 사람들이다.'라더라.
5시간 동안의 저녁 식사에서 느꼈던 것은, '아! 이 회사다.'라는 생각이었다.
직원들의 가치관이 나와 맞았었다. 이 후 나는 1차 면접 때 합격한 다른 기업들에는 포기하겠다고 연락 했다.
생전 관심도 없던 농기계에 대해 공부하고, 기업 사이트에 들어가 궁금했던 부분들을 다 찾아보았다.
공부하다 보니 관심이 생기더라. 자료를 모아서, 하나의 워드 파일로 작성하고,
약 200페이지 가량 되던 파일을 제본하여 매일 학교에서 보며 공부하였다.
2차 면접은 광화문 한 호텔의 컨퍼런스 룸을 빌려 진행되었다.
1차 때 뵈었던 인사과 차장님, 그리고 처음 뵙는 시설부 부장님, 사장님 이렇게 3:1로 진행이 되었다.
면접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내가 정리하고 공부했던 회사 자료들을 면접관들께 보여 드렸다.
'솔직히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1차 면접 회식 때 느꼈던 인사담당자님을 보고, 이 회사에 관심이 생겼고,
회사에 대해 찾아보다보니 이런 자료들을 모아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2차 면접을 합격하였고, 1달 뒤 8월 말, 일본 본사에서 진행되었던 최종 면접에 초대되었다.
회사에서 왕복 항공편, 전철비, 호텔, 식사 전부 예약해주어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회사에서 홋카이도 구경좀 하라고 2일 정도 호텔을 더 끊어주셨더라.)
본사에 도착하여, 일본판 SAT (인적성검사)로 유명한 SPI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보았다.
이번에는 인사과 차장님, 인사부장님, 시설부 부장님, 영업본부장님, 정비본부장님, 사장님 이렇게 6:1 면접을 보았다. 너무 떨었던 건지 못 알아들었던 문장이 있어 어버버하니, 좀 더 쉬운 말로 다시 말씀해주더라.
인사차장님께서 '임군, 그거 가져왔냐'고 물어보셨다.
2차 면접 때 보여드렸던 회사 자료 정리본을 다시 한번 더 보여드렸다.
면접이 끝나고, 인사 차장님께서 직접 회사를 데리고 다니며 부서 소개를 해주셨다.
회사 제품인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작업기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 후 같이 면접에 온 형 한 분과 일본 명문 대학인 홋카이도대학을 비롯한 삿포로의 스팟들을 둘러 보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4학년 마지막 2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내정을 받게 되었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