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5화)
바람이 많이 불던 첫 출근날
2024년 2월 6일. 겨울의 찬 바람이 많이 부는 첫 출근날이었다.
8시 30분 출근이었지만, 출근하기 전 근처 카페에서 학교에서 미리 보내준 자료를 가지고 공부하기 위해서,
수원에서 2시 경 출발했다.
다행스럽게도 낮에는 차가 막히지 않는 시간대였기에, 1시간 30분 정도만에 김포공항 근처에 도착했다.
김포공항 활주로 끝단인 인천 계양구 벌말로에 위치한 메가커피에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PDF 교재로 왕복 엔진 기본 구조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비행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엔진이 사용되는데, 하나는 경비행기에 주로 쓰이기도 하고, 우리가 흔히 자동차에서 볼 수 있는 왕복 엔진 (피스톤 엔진), 민항 여객기와 군용기에 사용되는 가스터빈 엔진이다. 구조와 원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항공정비 분야에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가르친다.)
이 왕복 피스톤 엔진 자체는 자동차 뿐만 아니라 내가 일본에서 일하며 접했던 농기계에도 사용되는 엔진이었기에,
(물론 농기계용은 높은 토크를 요구하는 특성 상, 디젤이 거의 대부분이다.)
구조 자체는 익숙했지만, 하나하나의 부품을 세부적으로 공부했던 적은 없었기에 사실 상 처음이나 다름 없는 셈이었다.
그렇게 3시간 정도의 공부가 끝나고, 바로 옆 근처의 한식집 식당에서 청국장 찌개 정식을 하나 먹은 뒤,
차에서 조금 잠을 청하고, 김포공항 화물청사로 이동했다.
두근두근 첫 출근
해가 진 밤의 김포공항 화물청사는 적막 그 자체였다.
잠든 트럭들과 항공사에서 사용하는 몇 가지 차량들이 서 있었고, 역시나 저 멀리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8시 반. 면접을 보았던 회사 창고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아직 저녁 업무가 시작되지 않았기에, 창고 내부는 조용했다.
컨테이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보니, 팀장님이 계셨고 그 외 4명이 더 있었는데,
한 분은 회사 사장님이었고, 다른 한 분은 나와 같이 일을 하게 될 40대 후반의 형님이었고, 다른 한 분은 현장에서 까대기 (전문 용어로는 조업이라고 한다.) 및 운송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세관 신고 등을 맡아줄 30대 후반의 사무직 형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현장에서 조업을 도와주셨던 아르바이트 형님이셨다.
팀장님께서, 한 명씩 차례대로 나를 소개시켜 주셨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될 유빈씨.
이 쪽은 ㅇㅇ씨인데 앞으로 현장에서 가장 많이 같이 일하게 될 분이시고,
이 분은 사무 쪽 도와주실 분. 유빈씨보다 일 주일 정도 더 일찍 왔어요."
원래 현장에는 한 분이 더 계셨었는데, 당시 몸이 좋지 않아서 조금 쉬고 계셨다고 했다.
(이 분은 차후에 2달 정도 지났을 시점에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셨다.)
그렇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본격적으로 현장 형님 한분께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따뜻한 컨테이너 사무실 밖, 현장 뒤쪽에는 수많은 노란색 항공용 파레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그 중 4개 정도가 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주간에 들어왔던 화물 박스들이 들어있는 마대자루가 차곡 차곡 테트리스 되어 쌓여 있었다.
팀장님께서 나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유빈씨, 아직 이 업무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우선 현장에서 화물 쌓는것부터 시작할거에요.
운전은 익숙해지면 서서히 시작합시다. 2주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첫 날, 나는 화물 테트리스 및 까대기부터 배웠다.
파레트에 위와 같은 사진처럼 차곡차곡 쌓으면 된다.
말이 정말 쉽지, 화물들 사이즈가 각기 다르다보니, 처음엔 굉장히 난감하고 어려웠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싶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옆에 현장 형님께서 나에게 하나하나 노하우를 알려주셨다.
"얘는 좀 둥그렇게 생겼으니까 먼저 쌓으면 나중에 다른 놈들 쌓다가 균형이 안 맞을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위쪽으로 빼놓는게 좋고.. 이런 각지고 무거운 놈들 먼저 쌓는게 가장 편해.
그리고 둥그렇고 길다란 원단들은 가장 위로 빼고."
당시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던 탓이었는지, 첫 날에는 물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평상 시의 대략 1/2도 채 안되던 물량이었다.)
덕분에 차근차근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몇 차례 거래처의 차들이 화물을 넣기 위해 창고를 들어왔다 물건을 내리고 나가고,
파레트에 그 짐들을 쌓은지 얼마 안되어, 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유빈씨, OO씨 (현장 형님)랑 같이 물건 픽업하러 다녀오세요."
내 또래인가?
보통은 우리가 운송하는 화물들은 거래처에서 다마스나 포터, 봉고 같은 차를 끌고 와서 내려서 무게를 확인하고 접수를 받는 경우가 99%인데, 우리가 직접 가서 물건들을 픽업해 오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창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서구 한 곳에 위치한 해외 운송 회사이다.
나는 현장 형님과 함께 3.5톤 마이티 트럭을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3.5톤 트럭은 정말 오래간만에 타보다 보니, 조수석에 앉았을 때의 그 높이는 어색했다.
화물청사 게이트를 지나, 대한항공 본사 앞쪽 오거리로 향했다.
낮 시간에 항상 정체가 일어나고 꼬리물기가 다반사인 대한항공 본사 앞 쪽은 밤이기 때문이었을까, 차가 한 대도 없었다.
5분도 채 안되어, 1톤 트럭이 정말 많이 주차되어 있던 한 물류 회사 앞에 차를 대놓고 들어갔다.
당시 추운 겨울이었지만 픽업 차량들이 많이 드나드는 환경이었기에, 작업장 앞 문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검은색 회사 겉옷을 입은 분들 6명 정도가 보였다.
그 중에서는 나이가 나보다 더 어려보이는 직원도 한 명 있었다.
'이쪽 업계는 저렇게 젊은 나이대를 찾기 어려운데.. 몇 살일까? 궁금하네. 내 또래인가?'
같이 간 현장 형님께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오늘 처음 온 친구에요. 앞으로 같이 일할 겁니다."
중국, 동남아 각 나라에 나가는 화물들을 파레트에 테트리스 하고, 화물이 쏟아지지 않게 랩핑을 했다.
랩핑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보니 처음에 정말 서툴렀다.
난 혹시나 중간에 가다가 화물들이 쏟아지진 않을까 내심 걱정해서, 테이핑 질을 몇 번이고 더 했는데, 그곳의 직원 분께서 이렇게 말했다.
"그만해도 돼. 이 정도면 됐어."
(이 후, 이 분이랑은 나름 친해져서, 사적인 얘기까지 주고 받았었다.)
화물 랩핑과 항공사 라벨지를 하나하나 다 붙이고 난 뒤, 현장 형님께서는 그곳에 있던 지게차로 파레트를 하나하나 떠서 트럭에 차곡차곡 실었다.
(3.5톤 윙바디 트럭은 항공사 반입용 파레트 4개가 딱 맞게 들어간다.)
물건을 싣고, 공항 화물청사 창고로 돌아왔다.
야행성 화물기들의 집합소
당시 야간에도 거래처에서 화물은 끊임없이 들어왔고, 한 번에 다 싣고 갈 수는 없었기에,
1차, 2차, 3차로 나눠서 인천공항에 반입했다.
10시 정도가 되었을 무렵, 나는 현장 형님과 함께 지금까지 쌓은 5파레트 정도를 4.5톤 메가트럭에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차량은 전부 수동이었는데, 이후에 내가 몰았었을 때 손맛이 있어 참 좋았다.
인천공항까지는 김포공항IC로 들어가서, 인천공항고속도로를 쭉 타고 영종대교를 넘은 뒤, 신불IC에서 빠지면 금방이었다.
출발하고 얼마 안되어, 무뚝뚝해보였던 현장 형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여쭤보신다.
"유빈 씨, 화물터미널 가본 적 있어요?"
나는 한번도 없다고 대답했다.
인천공항은 여행 갈때나 갔었으니 여객 터미널만 주구장창 갔었지, 정작 화물 터미널은 가본 적도 없었다.
오가는 대화가 끝나고 얼마 안되어,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영종대교에 올랐다.
하이패스 단말기에서 요금 2,750원이 정상 결제되었다는 말이 들린다.
(2.5톤~10톤 화물차량은 5,500원이 정상 금액이지만, 야간 할인이 적용되는 시간대였기 때문에 절반만 빠져나간다.)
'여행이나 출장 갈때만 탔던 영종대교였는데, 업무로 이렇게 오게 될 줄이야.'
차가 정말 커서 그런지, 일반 승용차를 타고 갈 때 못 느꼈던 진동들이 느껴졌다.
(상부도로에서 영종대교를 올라가는 구간 중에 일명 '말타기'라고 하는 흔들흔들 심한 구간이 있다.)
중간 중간 그 분께서 카메라가 있는 구간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이 쪽부터는 구간 단속이라서, 이렇게 크루즈 놓고 달리는게 좋을거야."
그렇게 그 분과 이야기를 좀 하다보니, 저 멀리 화물터미널이 보였다. 여객터미널에서는 보지 못했던 대형 2층짜리 B747 화물기들이 주기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속도로에서 나온 후에도 화물 터미널까지는 5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대한항공 자회사인 한국공항 조업사에서 담당하는 항공사의 화물이 있어 그것을 반입해야 했었기에,
대한항공 전용 터미널인 A터미널을 먼저 들어갔다.
트럭이 한대 들어갈 수 있는 데크에 차를 대고, 윙바디를 열려고 내리니, 안경을 쓰시고 머리가 흰 한 분께서 마중을 나와 계셨다.
현장 형님께서는 나를 소개시켜 주셨다.
"유빈씨, 여기 인천공항 터미널에서 AWB 작성이나, 관련 서류 준비나 반입 도와주시는 부장님이세요. 부장님, 여기는 오늘 새로온 유빈씨에요."
(* 참고로, AWB란 Air Waybill의 줄임말로, 배에 싣는 화물도 선적 서류와 비슷하게, 항공기에 싣는 해당 화물에 대한 선적 서류를 의미한다. 물품의 종류, 수량, 특이 사항, DG (Dangerous goods : 위험물) 유무, 운송 요금 등 항공사 제출용이다.)
인자해보이시는 상의 부장님은 나를 처음 보시더니 몇 살이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94년생이라고 말씀드리니 부장님께서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똑같네? 허허허"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