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6화)
1년에 성인 4300만명을 비행기로 나르는 곳
부장님께서 인자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주시고, 잠시 동안의 인사가 끝났다.
창고 내부에는 수많은 지게차들이 움직이고 있었고, 어마어마한 양의 파레트 짐과 항공 컨테이너가 보관되어 있었다.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2024년 1년 간의 총 실적은 약 300만톤 정도로, 이는 기아자동차 모닝 약 315만 대 분량 혹은 성인 남성 4300만명에 해당하는 무게이다.)
이윽고 얼마 안되어 윙바디를 연 트럭 앞으로 지게차 한 대가 서서히 오기 시작했다.
당시 항공사 화물 처리를 담당하는 지상조업사 직원이었다. 삼촌 정도 뻘로 보이는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이거 전부 다에요?"
부장님과 현장 선배 형님께서는 해당 항공사에 반입하는 화물들이 무엇인지 대신 대답해주셨고, 지게차 담당 직원분께서는 해당 파레트들을 능숙하게 지게발로 끼워 가져갔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야간 팀장님께서도 지게차를 손발 움직이듯 능숙하게 몰았었기에, 첫 날부터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한번에 딱 맞춰서 끼워가지? 저거 한번 실수라도 하면 화물 파손인데..'
당시 탔던 4.5톤 메가트럭에는 총 8개의 항공화물 파레트를 적재할 수 있었고, 당시 첫 출근 날에는 설날 연휴 전이어서 그런지, 물량이 많지 않아 트럭에는 5파레트 정도만 실려 있었다.
현장 선배분께서는 반입 담당 직원과 업무를 진행하느라고 잠시 자리를 비웠고, 부장님께서는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시면서 항공사에 화물을 반입할 때의 절차와 장소 등을 알려주셨다.
첫 화물의 반입을 마치고 다음 항공사로 이동하기 위해, 현장 선배분과 함께 다시 트럭에 올라타 자리를 옮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은 A터미널에 있었고, 다음으로 큰 아시아나항공은 B터미널에 있었는데,
터미널 간 이동을 위해서는 내부 도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부 도로는 거의 90도 각도로 꺾이는 급커브 구간이 많았기에 시속 20km 정도로 제한되었다.
"유빈씨, 여기는 갑자기 꺾이는 커브구간이 많으니까 꼭 천천히 다녀야되요."
내부 도로를 통해 5분 정도를 더 가서 B터미널에 도착한 후, 아시아나항공 반입 장소 앞에 차를 멈추었다.
그곳은 대한항공과는 다르게도, 도크가 없었고 그냥 평지로 된 곳이었기에 적당히 차를 세우고 윙바디를 열면 끝이었다.
무사히, 첫번째 항공사 반입을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돌아갔다.
당시 화물 터미널 창고는 모든 곳이 다 똑같이 생겼었기에 어디에 차를 대야하고 어디에 들어가서 반입 서류를 내야 하는지 얘기를 들어도 너무 헷갈렸었다.
김포공항 화물청사에서 남은 화물들을 작업하고, 두번째 화물 반입을 다녀오고, 새벽 2시 정도가 되어 마지막 세번째 화물 반입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이동했다.
당시 대한항공 화물터미널은 밤 11시까지만 화물 반입을 받았었기에, 세번째 화물 반입은 B터미널에서만 진행되었다.
세 번째 반입도 무사히 마치고, 나는 부장님을 따라 반입 장소 근처에 위치한 회사 사무실로 이동하였다.
사무실은 당시 화물터미널에 있는 외항사운송대리점 사무실에 위치해있었는데, 내부에 들어가보니 컴퓨터 2대와 타자기 한 대, 그리고 냉장고가 있는 조그마한 곳이었다.
당시 겨울이었기에 정말 추웠지만, 건물 내부에는 히터가 돌아갔었고 그대로 계속 있으면 잠이 들 정도로 정말 따뜻했다.
현장 선배분께서는 4.5톤 트럭을 내부 주차장에 주차하고 1톤 포터 트럭을 가지고 따라 오셨다.
(당시 회사에서는 주야간 팀이 차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야간팀이었던 우리는 마지막 화물 반입을 마치고, 주차장에 4.5톤 트럭을 세워놓고, 1톤 포터 트럭으로 김포공항에 내려갔다. 이 후 주간팀이 아침에 출근하면 우리가 가지고 내려간 1톤 트럭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주차된 4.5톤 트럭에 수입 물품 짐을 싣고 다시 김포공항으로 돌아간다.)
3차례의 화물 반입을 전부 마치게 되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화물의 운송 조건이나 비용 등의 정보가 담긴 AWB (항공 선적 서류, AWB)를 항공사에 제출해야 하는데, 한 파레트에서 두 파레트 정도 당 1건의 AWB를 제출해야 했었기에 평균적으로 8-10건 정도의 서류를 제출했다.
이 AWB 서류는 사무직 담당 직원이 작성한 서류를 우리가 가져와서 부장님께 넘겨드리면,
당시 부장님께서는 사무실에서 타자기로 비어 있는 란 (운송 조건, 비용 등)에 대해서 타자기로 치셨는데,
타자기를 실제로 치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었고, 칠 때의 타닥타닥 소리도 처음 들었기에, 정말 신기했다.
나는 옆에서 잠자코 부장님께서 타자기로 치시는 모습을 보았는데, 비용 부분을 보고 꽤나 충격먹었다.
구체적인 비용은 회사 보안 상 이야기할 수 없으나, 대개 전기차 두 대를 미국으로 보내는데 보내는 운송 비용만 대략 5천만원 정도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비행기로 보내는게 이렇게 비싸다니.. 배랑은 천지 차이네..'
싼 가격의 배편은 미국까지 1-2달이 걸리지만, 비싼 가격의 비행기는 2-3일이면 된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10-20분 정도 지났을까.
부장님께서는 타자기로 작성을 마친 서류들을 현장 선배분께 전달해주셨고, 따뜻한 사무실 밖을 나와 항공사 사무실에 서류를 제출하였다.
항공사 사무실은 각각의 창고 건물 옆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2-3층으로 올라가 제출하였는데,
분주한 낮 시간과 다르게 새벽 시간 대에는 직원들이 없었기에 그냥 서류만 올려놓고 돌아오면 됐다.
우리는 B,C터미널 (아시아나항공, AACT 등)의 서류들만 제출했었는데, A터미널에 위치한 대한항공은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는 사람이 근무하지 않아 접수를 받지 않았기에, 부장님께서 5시까지 대기하고 계셨다가 서류를 대신 제출해주셨다.
첫 날 업무가 무사히 끝나다
서류 제출이 끝나고 인천공항에서 1톤 트럭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영종대교의 겨울 바람은 큰 트럭들조차도 휘청휘청하게 만들 정도로 매우 강했기에, 현장 선배분께서는 영종대교를 지나갈때면 항상 정신을 집중하고 계셨다.
김포공항에 돌아오니 새벽 2-3시 정도였다.
첫 날은 물량이 많이 없었기에 조금 빨리 끝났었고, 나는 배가 고팠었기에 수원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었던 신월동 맥도날드로 향했다.
새벽 3시의 맥도날드는 정말 고요했다. 종업원들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손님은 나 말고 아저씨 한명이 더 있었는데, 당시 맥도날드 앱에서는 항상 할인 쿠폰을 뿌리던 시기였기에, 단돈 7000원 정도에 빅맥 세트와 불고기버거 단품을 시켜 먹은 후 졸린 정신을 깨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서, 수원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으로 찍어보니 수원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걸릴 것으로 나왔었다.
평소 낮 시간대에 2시간 이상 걸리는 것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었다.
'차도 많고 막히고 개판이던 이 거리가 이렇게 조용하다니..'
신월동을 빠져나와 광명쪽으로 넘어와서, 수원 광명 고속도로를 타고 쭉 내려 갔다.
역시 새벽에는 시티팝 감성인건지, 나는 당시 내가 자주 듣던 일본 80년대 시티팝 음악을 틀어놓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낮과 밤 생활패턴 적응이 되지 않던 출근 첫 날이었기에, 피곤함에 쌓여 운전을 하고 돌아왔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씻을 기운도 없이 바로 침대에 누워 꿈나라로 향했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