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7화)
백설기가 내리던 설 연휴, 그리고 다시 출근
2024년 2월, 백설기 같이 하얀 눈이 오던 설 연휴가 지나고 다시 출근일이 되었다.
아직은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생체 리듬이 적응되지 않아, 비몽사몽한 상황에서 수원에서 차를 몰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오늘은 좀 차가 덜 막힐까 내심 기대해보며 내비게이션을 틀었지만, 역시 김포공항까지는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는 무심한 안내를 받고, 정체가 극심한 수원광명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그럼 그렇지.. 연휴도 끝났고 또 다시 도로 위 굼벵이들의 출격이다.'
스마트 크루즈를 맞춰 놓고 앞차를 졸졸졸 따라갔다.
'좋아, 여기만 지나면 이제 슬슬 정체 풀릴거고..'
지옥의 구간을 벗어나고 몇 분을 더 달리니, 이번엔 서부간선도로가 난리다.
내가 당시 탔던 구간은 금천구청과 가산구청 근처를 지나는 구간이었는데, 여기는 새벽 3~4시에도 차가 막힐만큼 교통량이 많은 이름하여 풀방 구간이었다.
더 좋은 루트가 없을까 생각해봤지만, 내비게이션의 말이 옳았던 것을 몇 번 느낀 뒤로, 더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덧 신월동을 지나, 강서구에 들어왔고,
나는 회사로 향하기 전,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며 공부를 하고 출근했다.
카페는 빈티지스러운 감성과 세련된 현대식 느낌을 섞어 놓은 곳이었는데, 그곳은 빵을 직접 굽는 베이커리 카페이다보니 군침도는 버터 빵 냄새가 내부를 뒤덮었다.
이 후, 해가 지고 출근 시간이 다가왔기에, 나는 회사가 있는 김포공항 화물청사로 향했다.
쉴 새 없이 이착륙하는 국내선 비행기들의 행렬이 보였다.
(국내선 항공편이라 보통 조그마한 737, A320F 기종들을 주로 만날 수 있다.)
아직은 좀 낯선, 저 멀리 보이는 창고를 들어가니, 내부에는 그간의 연휴 동안 처리되지 못했던 물량들이 저만치 쌓여 있던 턱에, 출근하자마자 다들 분주하게 화물들을 정리하기 바빴다.
기존 물량의 1.5~2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물량이었기에, 그 날 막차는 야간 팀장님까지 동원하여 두 대의 차로 물건을 실어날랐다. 거래처에서도 역시나 해외로 들어가는 물량을 빼내기에 꽤나 바빴기에, 대충 인사만 드리고 쌓여 있는 화물들을 호다닥 작업한 후 돌아왔다.
어느 정도 짐 정리가 된 후, 선배 분과 함께 첫 차로 인천공항을 향했다.
그 날 영종대교는 4.5톤 트럭조차도 차가 휘청휘청 할 정도로 바람이 강했는데, 공항 화물터미널에 들어가서 내려보니 살을 찌르는 듯한 칼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버티는거지?'
(그도 그럴게 일반 패딩을 껴 입어도 안으로 추위가 슬금슬금 들어오는 수준이다.)
공항 현장 사람들은 전부 두꺼운 방한점퍼와 방한모로 추위를 버티고 있었고,
나 역시 공항에 들어갈 때에는 항상 패딩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선배 분께서 손 언다고 주셨던 따뜻한 장갑을 꼭 끼고 들어갔다.
사람을 味치게 만드는 라면 냄새
보통 우리가 마지막으로 반입을 하러 갈 새벽 3~4시 정도에는, 들어오는 화물들이 거의 없다 싶이 했었기 때문에, (화물 반입 마감은 항공사 별로 다르지만, 보통 못해도 비행기 출발 4시간 전까지는 넣어야 한다.) 공항 현장 사람들은 간이로 마련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따뜻한 한강 라면을 먹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이 '한강 라면'을 도대체 어디서 가져온거고 하고 살펴보니, 바로 공항 화물청사 중간 중간마다 있는 이마트24 편의점에서 제조를 해서 오더라.
새벽 3~4시가 되면 나도 슬슬 배가 고파질 때라 항상 저 한강 라면의 냄새에 참지 못하고 언젠가는 꼭 먹어봐야겠다 다짐했었다.
당시에는 저걸 사먹고 싶었지만, 내가 저걸 사먹고 가자니 김포공항에 돌아가서 정리하는 시간이 너무 빠듯했었기에, 항상 군침만 흘리고 돌아왔다.
(저녁 8시 반 경 출근하여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하다 보면, 저 라면 냄새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 내가 혼자 운전해서 가는 때부터는 편의점에 들러 일부러 배를 채우고 갔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지 마라
이 야간 반입 당시에 한가지 주의할 점이 있었다.
특히 마지막 반입 때에 결코 해서는 안되는게 있었다.
바로 사무실에서 라면 먹고 있는 현장 직원들을 재촉하는 것.
밥 먹을 때에는 그 누구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을 재촉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한 순간에 적군이 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부장님께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빨리 화물 반입 넣고 나머지 서류 작업을 하러 가기 위해서, 이 사람들을 재촉하기 바빴었다. 그들이 빨리 처리해주어야 우리의 퇴근 시간도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재촉하면 화를 내거나, 대꾸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뭐야? 일하기 싫은건가? 화물이 왔는데 왜 쳐다도 안보지?'
'아니 저 사람은 쳐다보고도 대꾸도 안하네. 말이라도 좀 해주지.'
처음에는 그냥 '사람을 무시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때가 그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화물 터미널은 쉴 새 없이 몰려오는 화물들로 인해 주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야간에도 트럭들이 물밀듯 들어온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고, 수 없이 많은 화물들이 들어온다.
심지어 비행기 엔진도 화물로 들어온다. 비행기를 통해 운반되는 비행기 엔진이라니.
보통 한 트럭 당 적으면 4파레트, 많으면 8파레트 혹은 그 이상도 되는데, 그게 거의 하루 종일, 한가한 시간대를 제외하고 20시간 가량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화물 반입 수량 받아주랴, 무게 측정하랴, 지게차로 화물 내려서 X-RAY 검사기에 넣으랴.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해서 지게발로 화물을 부숴먹기라도 한다면 최악이다.)
이 모든 것을 보통 야간에는 두 사람이, 그나마 한가한 새벽 시간대에는 한 사람이 다 한다.
거기다 시프트 근무 (주야교대)에 생활 패턴때문에 충분히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렇다보니 그들은 새벽 3~4시 경, 항공사별 화물 반입 마감도 거의 끝난 상태이고 더 들어올 물량도 없을 때 긴장을 풀고 잠시나마 쉴 수 있던 것이었다.
새벽 5시 경 해가 슬슬 뜨기 시작하면, 낮 시간대 비행편에 들어갈 화물들을 싣고 오는 트럭들을 상대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또 분주히 움직인다.
그 잠시 동안의 휴식 시간조차 우리가 침범할 권리는 없었다.
옆에서 반입 서류를 들고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우리가 불쌍했는지, 1분도 채 안되어 나와서 지게차로 짐을 내려주곤 했었다.
나는 이후에 항상 이렇게 얘기했다.
"쉬는 시간에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그들은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지게차에 올라타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새벽에 고생 많아요. 금방 해드릴게요."
일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인간 관계로부터 진행되는 것이다.
'인간 관계'라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