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9화)
새로운 보금자리를 알아보다
3주 차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일이 나쁘지도 않고, 어려운 것도 그렇게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나쁜 것도 아니고, 다들 막내라고 잘 챙겨주시고,
일도 잘 가르쳐주시고, 운전도 재밌고.'
3주 동안 일을 하며,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본인 스스로에게 '잘 할수 있을까'라는 압박감을 느껴본 적은 있어도, 환경 자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면 할수록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일이 재밌어져 갔다. 특히 운전할 때의 수동 변속기의 쫄깃한 맛이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딱 한가지가 내 마음속에 걸렸었다.
바로 매일 왕복 4시간 가량 걸리는 출퇴근이었다.
사실 출퇴근을 하며 피곤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매번 길거리에서 시간을 쏟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까운 근처로 이사를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김포공항 근처 서울 강서구 쪽 원룸과 오피스텔로 알아보려고 인터넷을 들어가봤다.
헌데 이놈의 원룸들은 역시 서울이라 그런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월세가 훨씬 더 비쌌다.
오피스텔은 달에 70만원이 넘어가는 수준이었고, 원룸들은 매물이 없다 싶이 했었다.
나는 월세로 빠져나가는 돈을 절약하는 것이 일단 첫번째였기 때문에, 다른 동네로 눈을 돌리기로 했다.
'일단 강서구는 제외하고, 괜찮은 곳이 없을까?'
그러던 도중, 인천 계양구와 부천 쪽에 싼 방들이 꽤나 많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쪽으로 탐색했다.
인천 계양구에는 조금 시골이긴 하지만 월 35만원 대의 복층 방도 있었고, 부천 신중동역 인근 대학생들이 많이 사는 오피스텔촌 쪽에도 40만원대에 끊을 수 있는 방들이 있었다.
그래서, 발품을 팔기 위해 부동산에 이곳저곳 문의를 넣어 알아보게 되었는데,
계양구에 위치한 복층 방은 유리도 큼직큼직해서 채광도 잘되고 인테리어도 정말 깔끔했는데, 왜 35만원 대인지 그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바로 가스 보일러 난방이 아닌 전기 난방이었다.
'전기 난방이 왜 어때서?'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이 전기 난방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전기세와의 사투를 벌이던 한 대학생
때는 2017년, 대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나는 용인 상갈 쪽에서 자취를 했던 적이 있었다.
학교 기숙사에서만 살던 나는 마침 저렴한 월 30만원 정도의 오피스텔을 발견했었고,
(당시 학교 앞 원룸들이 4~50만원대 했었기에, 비교적 저렴했다.)
당시 자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곳이 전기 난방인데다가 채광조차 잘 되지 않는 조그마한 창문 하나밖에 없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창문도 밖으로 나 있는게 아니라 복도로 나 있었다.), 단순히 오피스텔에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나의 첫 자취방으로 그곳을 계약했었다.
여름에는 괜찮았다. 난방을 쓸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런데 가을이 되고 슬슬 추워지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닥 밑에 뜨거운 물이 흐를 수 있는 배관이 설치되어 있는 '가스 보일러 난방' 방식과는 다르게,
'전기 난방'의 경우에는 바닥 밑에 코일의 저항을 열로 바꾸어 주는 필름을 설치한다.
쉽게 말하면 대형 전기 장판인 셈이다. 전기 장판을 끄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열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이 방식의 경우에도 난방을 끄면 금방 바닥이 차가워지게 된다.
비열이 높은 물을 뜨겁게 데워서 사용하는 가스 보일러 배관에 비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겨울 처음에는 난방을 꽤 높게 설정했고, 첫 달에 고지서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무려 전기세로만 30만원 가량 나오게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나는 고지서에 나와 있는 전기 사용량을 다시 한번 들여다봤는데, 진짜 30만원 나온게 맞았다.
그 이후로 난방 세기를 1 (최소)로 설정하였는데, 이건 무슨 난방이 되는건지 안되는건지도 모를 정도로 방에 냉기가 도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따뜻한 이불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전기 장판을 하나 마련해둘 걸 그랬다.)
'그래도 세기를 최소로 해 놓으면 전기세는 좀 덜 나오겠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음 달이었다.
맥도날드 알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우편함에 고지서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걱정하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서, 고지서를 열어보았다.
근데 왠걸, 전기세가 25만원 정도 청구되었던 것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이럴 일이 없을텐데'라고 생각하여 관리사무소에 달려가 상황을 설명했고, 점검을 받아보니, 결과는 가관이었다.
원인은 결로 현상으로 인해 벽에 생겼던 물들이 바닥에 스며 들어가서 전선에 들어가버렸고,
그게 결국 누전으로 이어졌던 것이었다.
전기 난방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다. 싸구려 자재를 썼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겠지만.
방에는 창문 자체가 굉장히 작게 딱 한 개 있었고, 심지어 그 하나 있는 창문조차도 복도로 연결되어 있던 탓에, 창문을 열어도 환기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었고, 공기가 잘 통하지 않으니 결국 결로 현상까지 이어진게 아닐까하는 추측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이 방을 빨리 빼는게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여러 부동산에 연락을 돌려, 2주만에 겨우 세입자를 찾고 그 곳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고생을 쓰게 한 그 때부터는 전기 난방이 설치되어 있는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제2의 송탄 생활? 또 철길 옆이라니
그 때의 쓴 맛을 기억하며, 나는 인천 계양구의 방들을 미련 없이 생각에서 지워버렸고,
부천 신중동역 근처 오피스텔을 알아보러 부동산으로 향했다.
부동산에서 소개 받은 관리비 포함 월 38만원대 오피스텔을 실제로 방문해봤는데,
세입자가 집 정리를 해놓지 않아 조금 더러웠지만, 청소만 하면 깔끔한 방이었다.
창문도 정말 큼직큼직하고 한 눈에 그 인근이 보일 정도로 시티뷰가 좋은 곳이었다.
주위에는 수많은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었고, 새벽 2시까지 하는 카페도 있어 공부하기에도 최적화된 곳이었다.
'잠깐, 근데 이 집 도대체 이렇게 싼걸까?'
알고보니 이 집은 개별 냉난방이 없단다.
방에 아예 난방 스위치 자체가 없었다.
건물 내 폐열을 활용하여 난방을 하는 시스템이기에 중앙에서 제어하는 시스템이었다.
대충 감이 왔다. 겨울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 내부는 꽤나 추웠는데, 그곳의 세입자는 겉옷을 두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난방이 제대로 안되는게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더 멀리 떨어진 부천역 바로 앞으로 발품을 팔러 나갔다.
부천역 철길 바로 옆에 위치한 부동산에서 오피스텔 매물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들어가보았는데,
7년이 지난 건물이었음에도, 내부는 마치 신축인 것처럼 깔끔했다.
오피스텔이 철길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는 점 (어째 다시 송탄 생활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과 방이 좀 좁은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주위에 편의점, 음식점, 카페, 맥도날드부터 있을 것은 다 있었고, 주차장도 5층까지 있어서 수원에 살 때처럼 주차 전쟁을 할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수원 집에 방을 빼겠다고 한 날짜가 다가와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부동산에 들러 계약하겠다고 계약금을 넣었고, 수원에 살던 방을 정리했다.
역시 혼자 살다 보니, 짐도 많지 않아 총 5박스 정도 + 접이식 의자,책상 정도였고, 그 다음 날 차에 모든 짐을 다 싣고 이사를 마쳤다.
이 후, 나의 출퇴근 시간은 왕복 4시간에서 왕복 40분으로 줄어들었다.
첫 회식 그리고 환영식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나를 위한 환영식 겸 회식을 했다.
회식에는 지금까지 전혀 뵙지 못했던 주간 팀 분들도 와 계셨다.
한분 한분 인사를 드리고, 술을 한창 마시고 있는 와중에 주간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유빈이 정말 기특한 것 같다니까요. 이게 출근 2시간씩 걸려서 할 일이 사실 아니거든.
근데 책임감 있게 매일 잘 나와주고. 그래서 난 참 고마워.
일하는거 때문에 이번에 이쪽으로 이사도 했어요. 여러분"
나에게 면접 볼 생각 있냐고 연락 왔던 분이 바로 이 분이다.
주간 팀장님은 무뚝뚝해 보이는 첫 인상이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정이 많은 분이셨고,
이후에도 뒤에서 사람을 많이 챙겨주셨던 분이었다.
돈 아낀다고 편의점 도시락 사와서 창고에서 먹고 있는 나를 보시고, 있다가 배고플 때 야간 팀 사람들과 함께 먹으라고, 핫도그와 꽈배기 그리고 커피를 배달 시켜 주셨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