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8년만의 재회

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10화)

by 임유빈
낯선 땅, 추억 속 친구들


내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반가운 얼굴들로부터 SNS 연락이 왔다.


예전에 캄보디아에서 살 때 알고 지내던 일본인 누나와 캄보디아인 형이 한국에 놀러오고 싶다고 했다. 캄보디아인 형은 한국을 경유할 때만 잠시 인천공항에 들러봤지, 제대로 둘러본 적은 없었다고 했었고, 일본인 누나는 한국을 꽤 오래 전에 왔었기에 다시 한번 더 여행해보고 싶다고 했다.


두 명 다, JICA에서 운영하는 CJCC (Cambodia-Japan Cooperation Center)라고 하는 '캄보디아-일본 협력 센터'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사람들인데, 일본인 누나는 당시 그곳에서 일본어 강사로 일을 했었고, 캄보디아인 형은 당시 그곳의 학생이었는데 그 때도 일본어를 꽤나 유창하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형은 지금은 수도 프놈펜에 위치한 일본 대사관에서 통번역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 JICA는 우리나라의 KOICA 같은 일본의 국제 협력 기구이다.)


좌 : CJCC 건물 전경 (인터넷 사진 발췌), 우 : CJCC가 위치한 프놈펜 왕립대학에서 바라본 전경 (2018년)


내가 2017년에 한국으로 귀국 했었고, 그 뒤로는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 만나면 근 8년만의 재회인 셈이다.

어디를 가보면 좋을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항공권 일정이 잡혔고 나도 슬슬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참고로 요새 들어 캄보디아 내에서 중국인 범죄 집단의 한국인 납치 및 살인 사건으로 인해, 언론에 거론이 되고 있으며, 국정원에서도 현재 조사에 가담하고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다.


당분간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취업이라던지 낯선 이들의 연락에 의해 캄보디아에 가는 것에 '절대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정 모르겠으면, 나에게 연락 주기 바란다. 아는 지인들 통해 알아봐줄 수 있다. 더 이상 제3의 피해자와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된다.

(이번 달에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도 캄보디아 내 3군데를 여행 금지 지역으로 지정해 놓았을 수준이다.)



아파트 공화국


2024년 4월, 일을 시작한지 2개월 되던 때였다.

전국적으로 벚꽃이 활짝 펴, 다들 벚꽃 사진을 찍으러 다니던 시즌이 한창이었다.

김포공항 화물청사 앞 도로에도 벚꽃이 활짝 펴 출퇴근할 때마다 나에게 눈요기를 해주던게 생각 난다.


당시 김포공항 화물청사 앞 벚꽃 핀 거리 풍경 (2024년 4월)


예정된 날이었던 4월 5일, 아침에 차를 끌고 두 명을 맞이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영종대교를 타고 가다보니, 저 멀리 화물터미널로 빠지는 신불IC 출구가 보였는데, 무의식 중에 그곳으로 빠질 뻔 했었다. 저 멀리 대한항공 B747 점보 화물기가 주기되어 있는 화물터미널을 뒤로 한 채, 여객 터미널로 향했다. 여객 터미널은 신불IC로부터 10분 정도 더 가면 도착한다.

'그나저나 오늘도 아침부터 화물기들 참 많네.'

예상보다 조금 빨리 도착하여, 커피를 하나 사서 1층 도착 로비에서 기다렸다.


아침 시간 대에는 동남아와 중국에서 오는 항공편들이 많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정말 많았는데, 다들 밤 비행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가득해보였다.

(국적사들은 주간 피크 타임에 수요가 많은 일본, 대만, 중국 노선을 주로 넣고, 시간이 남는 저녁 시간대에 동남아 노선으로 굴리는데, 밤에 현지 도착한 비행기가 1시간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귀국 편은 거진 새벽 시간대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도착 로비에서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저 멀리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캄보디아인 형을 만나자마자 오래간만에 서로 포옹했다.

이 형은 늙지도, 얼굴이 바뀌지도 않았다. '한국 좀 춥지 않냐'라고 물어보니 웃으면서 그렇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지금 건기 시즌일테니..
그 때의 40도까지 올라가는 더위 생각하면.. 여긴 양반이구만.'


이윽고 얼마 안되어 저 멀리 입국장으로부터 일본인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히로시마에서 온 누나는 한국에 온 것이 실감 나는 듯, 해맑은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짐들을 가지고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차에 짐을 싣고 숙소로 이동했다.


주차장으로 가면서 누나는 슬쩍 나에게 김밥 두 개를 건넸다.

"유빈, 너가 먹고 싶다던 명란 오니기리 사왔어."


일본인 누나가 사가지고 온 명란 삼각김밥과, 인천공항 주차장에서의 나 (2024년 4월)


영종대교를 타고 청라를 지나 김포공항쪽으로 향하는 길은 뻥뻥 뚫린 모습이었지만,

올림픽대로를 타자마자 이내 저 앞까지 막혀있는 극심한 정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금요일 오전이었지만, 역시 서울은 서울이다.

'이거 또 피곤한 애벌레들의 출격이 시작되었구만.'

저 멀리 한강 이북의 합정쪽 아파트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극심한 정체 속에서 뽈뽈뽈 기어가던 차 안에서 일본인 누나가 얘기를 한다.

"한국은 아파트들이 참 많아. 저 아파트를 보면 한국에 온게 실감 난다니깐."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 대다수가 놀라는게 이 수없이 많은 아파트라는데, 역시나 누나의 반응도 똑같았다. 하긴 나도 외국 생활하며 느꼈던게 한국만큼 아파트가 많은 나라는 전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치 이렇게 보고 있다보면 살짝 홍콩 같은 느낌도 들고,
한국인들 거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껄?"

일본도 맨션(マンション)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아파트 같은 개념은 있지만, 한국처럼 대규모 단지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일종의 오피스텔처럼 단독으로 지어진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일본은 만화 짱구에 나온 것처럼 단독주택이 상대적으로 많다.


우리에게는 아파트 단지가 일상이지만,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참 신기한 거주 형태인 셈이다.


한국에 아파트가 유행하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며, 숙소가 있는 강남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명카 드라이브, 냉면


간단히 호텔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 잠시 짐 정리를 했다.

일본인 누나가 히로시마에서 사온 젤리랑 맛챠 빼뺴로 (일본에서는 POCKY라 불린다.) 등등 선물을 건넸다. 일본 과자들 안 먹은지 오래되었는데 고마웠다.


우리는 차를 타고 명동으로 향했다.

미리 싸게 끊어놓은 주차장 4시간 이용권을 가지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도보로 명동 쇼핑센터 거리로 이동했다.


명동에서는 인기 있던 한 식당에 들러, 두 명이 가장 먹고 싶어했던 냉면과 갈비탕을 시켜 먹었는데,

서빙하셨던 사장님께서는 이미 많은 일본인들을 맞이하셨는지, 일본어로 주문을 받아주셨다.


음식이 나오고 냉면 맛을 보니 왜 이 집이 외국인들에게 맛집으로 소문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 로컬 냉면보다는 더 달달하면서도 조금 덜 매운 스타일이었는데, 내 입맛에도 맞았었기에 한 그릇을 금방 비울 수 있었다.

'다들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다. 입맛에 안맞으면 어쩌지 걱정했었는데.'


처음으로 먹었던 냉면과 갈비탕 (명동, 2024년 4월)

냉면을 먹다보니 옛날 중학생 당시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와 제시카가 불렀던 냉면 냉면 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명카 드라이브라는 애칭으로도 유행해서 반 친구들 모두가 따라부르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한창 더운 여름철 저 노래와 함께 냉면을 먹으면 금새 더위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식사 후, 명동 쇼핑센터 거리 주위를 조금 둘러보고, 어느 덧 저녁이 다 되어 숙소로 이동했다.

두 명은 '한국의 치맥'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나는 이후 저녁에 출근을 해야 했었기에 시원한 맥주를 뒤로 한채 아쉽게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정말 미안해.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 문제 있거나 어려운 거 있으면 바로 전화 줘."

(사실 금요일 토요일 연차를 쓰고 싶었지만, 내가 없으면 야간 팀이 돌아가지 않았던 상황이라 업무를 뺄 수 없었다.)

출근 후 SNS를 보니 전철 타고 강남역에 간 사진도 올리고, 근처에서 치킨 사서 먹은 사진도 올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내일은 경복궁과 북촌 한옥마을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하긴 서울에 왔다면 여긴 필수코스지.

이곳을 빼놓고 서울을 논할 수는 없다. 나도 예전에 북촌 한옥마을을 몇번 가본적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드는 곳이다.


그렇게 나도 안심하고, 일을 시작하기 위해 4.5톤 트럭에 올라 타 시동을 걸었다.

금요일답게 물량이 또 엄청 많다. 주말이 끼다 보니 항상 금요일은 물량이 1.5배 수준으로 들어오곤 했는데, 그 날은 거래처에서 물건이 좀 늦게 들어와 새벽 6시 정도에 일이 끝났다.



다채미의 한국, 절제미의 일본, 화려함의 캄보디아


집에 들어가 씻고 2시간 정도 대충 눈을 붙인 후, 어제 얘기했던 것처럼 경복궁으로 향하기 위해 차에 올라 탔다.

근데 가만보자, 오늘이 주말이었기에 경복궁까지 가는 길이 꽤 막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차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 전철을 타고 다니는게 더 빠르고 편할 것 같아서 김포공항 화물청사에 차를 박아 놓고 전철로 경복궁까지 이동했다.


경복궁에 도착하고 이윽고 누나와 형이 저 멀리 보였다.

호텔에서 잘 쉬었는지, 어제 치킨은 어땠는지 물어봤는데, 역시나 정말 맛있다고 한다.


우리는 경복궁 내부를 들어가보고, 경복궁의 생김새를 보고 이런 저런 깊은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의 경복궁은 초록, 빨강, 검정 등 여러 색상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채로운 미가 있다.

반대로 일본의 성은 대체적으로 흑백으로만 이루어져 절제미가 느껴지는 매력이 있고, 캄보디아의 왕궁과 절은 소승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황금색으로 이루어져 화려한 느낌이 있다.

현대의 신축 건축물들은 나라 상관없이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이러한 전통 건축물들은 각 나라마다 새삼 그 유니크한 특징들이 보인다.


당시 경복궁에는 서양인부터, 중국인, 동남아 인들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 한복을 입은 인도네시아인들이 우리 세명의 사진을 찍어줬다.


경복궁을 다 본 후 우리는 바로 옆에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곳이다보니 주위에는 '주민 거주지입니다. 소곤소곤 대화해주세요.'라는 표지판들이 걸려 있었다.

"누나 여기가 일본으로 따지면 교토 니넨자카 (京都二年坂) 같은 동네야."


당시 한옥 카페를 하는 곳도 있었기에 들어가서 차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식사를 하지 않았던 탓에, 우리는 아쉽게 주위 한옥 풍경들만 보고 다음 장소인 홍대 입구에서 간단히 보쌈 특선으로 점심을 먹었다.


당시 경복궁 (2024년 4월)

민초파


일본인 누나가 서울에 정말 유명한 민트초코 전문점이 있다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모양인듯 보였다. 가게는 경의숲 거리 근처였는데, 그곳에는 벚꽃이 예쁘게 펴, 모두가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난 처음에 민트초코 전문점이라길래 아이스크림을 파는 줄 알았는데, 왠걸 민트초코 빵에 민트초코 케익, 민트초코 까놀레까지 없는게 없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다가 민트초코 볶음밥까지 만들어 파는거 아니야?'

나도 민초파이고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다 싶이 하는 사람이지만, 찐민초파들은 어디까지 도전해봤을까 궁금해서 한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민트초코에 김치를 싸서 먹는 사람부터, 민트초코 계란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찐민트초코 애호가의 진입 장벽이 이렇게 높을 줄이야.


지금까지 민트초코는 아이스크림으로만 먹어봤던 나에게, 민트초코 빵이란 신선한 충격을 자아냈다.

버터빵의 고소함과 민트초코의 조합은 환상 그 자체였다.

"뭐야 이거 은근 맛있는데? 왜 맛집인지 알거 같아."


그렇게 민트초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던 중, 어느덧 시간을 보니 벌써 3시가 다 되어 갔다.

출근까지 얼마 남지 않은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먼저 자리를 떴다.

(토요일은 일찍 끝나는 대신 출근 시간이 5시까지였다.)

"유빈, 오늘도 화이팅! 운전 조심하고"


북촌 한옥마을 근처 거리, 민트초코 가게 (2024년 4월)

대학생 시절 추억이 떠오르던 곳, 한강 공원


다음 날, 푹 쉬고 아침에 차를 끌고 압구정 숙소로 향했다.


두 형누나들은 내일 오전 비행기로 돌아가다보니 사실 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는 일본인 누나가 프랑스에 살때 만났던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하였기에, 캄보디아인 형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형을 데리고 강남역 인근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씩 마신 후, 무엇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형에게 물어봤다.

“형 한강 공원은 아직 안가봤지?”

형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여, 동작대교 근처 한강공원으로 데리고 갔다.


날씨도 따뜻하고 일요일이기도 해서 그런지, 공원에는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노는 젊은 학생들부터,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 그리고 담소를 나누시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형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강을 보더니 그 쪽으로 가서 풍경 사진을 찍기에 정신이 없었는데, 그걸 보니 내 예전 대학생 당시 시절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 당시, 나는 수학여행을 제외하면 서울에는 생전 처음 올라와봤고 한강도 실제로 가까이서 본적이 없었다. 뉴스에서나 봤을 뿐이었다.

대학교에 올라오고 당시 대학 동기들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 놀러가서 치킨을 시켜 먹었던 때가 처음이었다.

그 때 처음 가까이서 본 한강이 참 신기해서 사진도 막 찍느라 정신 팔리고 그랬었는데..


사진을 찍고 있는 형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내 옛날 생각이 나서 간만에 추억 회상을 했다.


형과 함께 한강 한바퀴를 같이 돌아보며 풍경을 감상하다가, 내친김에 형을 데리고 동작대교 구름카페 쪽으로 올라가서 한강 풍경을 같이 바라봤다.

이 형은 역시나 풍경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어떻게 하면 풍경이 좀 더 예쁘게 담길까 여러번 시도를 하다가 갑자기 만족스러운 샷이 나오면 싱글벙글 표정이 변한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오후에 누나를 픽업하여 벚꽃 사진 찍기 좋은 스팟이었던 용산 미군 기지로 향했다.

다행히 동작대교로부터 근처에 있어서 금방 이동할 수 있었다. 사실 다리 하나 건너서 도로 따라가면 되던 수준이라 차가 막히고 자시고 할 일도 없었다.


용산 미군 기지는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되어 더 이상 기능적으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 미군들이 살던 내부 관사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그 역사적 가치가 참 높다.


군 부대가 이전된 후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하여 자유롭게 입장해 관람할 수 있게 해놓았는데, 내부 벚꽃이 관사랑 조화롭게 잘 어울려서 다들 사진 찍으러 많이 오는 곳이 되어버렸기도 하다.


들어오자마자 형누나들이 감탄사를 남발했다.

벚꽃 풍경이 참 예뻤는데, 형누나들도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지 오길 잘했다고 했다.

형누나들에게 이 건물들이 미군 관사로 쓰였던 점 등등 간단히 얘기를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으러 내부 이곳저곳을 다녔다. 어떤 스팟은 대기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아 20분을 줄 서 찍었기도 했었지만 지금 사진들을 다시 보니 그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추억으로 찍어두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당시 용산 미군 기지 관사에서 찍었던 사진들 (2024년 4월)

이 후, 밤까지 형누나들과 함께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나의 말에 대단하다며 응원해주던 두 형누나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갈 때쯤, 작별 인사를 하고 부천 오피스텔로 향했다.


다시 또 만날 날을 고대하며.



다음 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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