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 마도로스가 될 뻔 했던 나

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15화)

by 임유빈
마도로스가 될 뻔 했던 나


이전 1화에서 얘기하지 않았던 또 다른 스토리가 있었기에, 이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때는 이전 한국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 다니고 있던 시절이었던 2022년 11월이었다.


나는 인터넷을 하며 어쩌다보니 부산 영도에 위치한 오션폴리텍이라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해기사 (항해사 및 선박 기관사; 상선 사관) 국비 교육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배 (상선)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항해사와 기관사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해상 운송이 필수적인 우리나라에 없어서는 안될 인력 중 하나인데, (물론 식사를 담당하는 조리장, 갑판 전체 작업을 관리하는 갑판장, 일반 선원들 등 그 외에도 필요 인력이 많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 항해사와 기관사 인재 육성을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 두 곳에서 하며, 필수 인력이다보니 군 대체복무제도까지 도입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양대학 교육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력이 부족한 실정 때문에, 국비교육기관에서 대학 졸업자들 대상으로 1년 간 숙식하며 이론 교육을 받게 하고, 실항사 및 실기사로 실제 선박에서 실습 근무를 시켜 해기사 면허를 따고 취업하여 승선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별도로 마련해놓았다.


대학 졸업자들 대상으로는 3급이었는데, 보통 해외를 왔다갔다 다니는 (원양 항해) 큼지맣고 길다란 배를 탈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졸자들 대상으로는 별도로 국내만 돌아다니는 상선 교육과정도 있고, 어선 교육과정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그냥 막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별도로 서류 심사 및 면접을 통과해야 비로소 입교가 가능했고, 사관 교육인만큼 기숙사에서도 아침, 저녁 점호가 있었고, 교육 기간 중 외출이 통제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오션폴리텍 해양수산연수원과 상선 사진 (인터넷 발췌)


인터넷에서 실제 근무하시는 현직 분들의 이야기를 좀 더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선내에서의 근무 환경은 상사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크기 좌우된다고 했다. 하지만, 보통 열심히 하거나 배우려는 사람들이라면 왠만해서는 괜찮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배에서 생활하기에 인터넷도 느리고 사회와의 단절이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식비와 생활비, 방세 같은게 일체 나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돈이 모아지고, 또한 페이 자체도 초봉치고 꽤나 쎘었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3등 항해사 평균 연봉이 6000만원이며 5년 정도 뒤 1등 항해사를 달게 되면 1억 5천만원까지도 받는다.

언뜻 보기에는 작은 것 같지만, 해기사는 소득 중 월 500만원 이내 금액까지는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면접은 12월이라고 했었기에, 나는 원서와 이력서를 준비했고, 교보문고를 통해서 3급 항해사 이론 교재도 별도로 사서 공부하기로 했다.


항해사는 쉽게 말하면 항공쪽에 있어서 기장, 부기장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본선 항해의 전반적인 계획 수립 및 선박 운항 시의 견시, 화물 적재량 계산, 항구 정박 시의 화물 출하역 작업 관리 및 화물 위치 조정, 선내 안전 관리 등 실질적으로 배가 이동하는 동안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는 파트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오션폴리텍 상선 3급 사관 교육과정에 지원하게 되었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은 아침에 시작되었기에, 나는 전날 조그마한 캐리어 하나를 끌고 저녁 SRT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미리 알아본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미리 공부했던 3급 항해사 교재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부산 야경 (2022년)


다음 날, 추운 겨울이었지만 숙소는 난방이 잘 되었기에 따뜻하고 편하게 잠을 잤던 나는 근처에 있던 에그드랍에서 아침으로 간단히 토스트를 하나 사먹은 뒤,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양복을 입고 짐을 챙겨 영도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연수원까지는 대충 30분 정도가 걸렸는데 영도로 연결된 대교를 하나 건널 때 아침 햇살에 반사된 바다 풍경은 아름다웠다.


연수원은 꽤 규모가 컸는데 보통 흔한 전문대학 크기 정도였다.

연수원에 도착해보니 대기실에는 이미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본인들이 준비한 면접 답변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개중에는 20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들부터 30대, 그리고 40대 아저씨와 아줌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담당자가 한명씩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고, 큰 홀 안으로 들어가니 4-5개 정도의 부스로 이루어진 곳에서 다대일 면접을 진행하고 있었다.

면접관은 오션폴리텍 담당자 한 분과, 현재 상선 회사에서 근무중이신 관리직, 실무진 두 분, 이렇게 총 3분으로, 한 사람 당 20분 정도 진행되었다.


면접에서는 내가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해서 학벌도 나름 괜찮고, 해외에서 일해본 경험부터,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도 꽤 괜찮은데 왜 배를 탈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물어봤었고, 현재 회사에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지, 대학에서 배웠던 화학공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는 자리였다.

정작 공부했던 3급 항해사 지식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면접 질문 답변을 들은 면접관 분들께서 이력서를 유심히 바라보시더니 나한테 이렇게 얘기하신다.

“유빈씨, 혹시 기관쪽은 생각 없어요?
공대를 나왔으니 아무래도 항해보다는 이쪽이랑 잘 맞을 것 같거든요.”

당시, 나에게 선박 기관사라는 이미지는 기름칠 하고 닦고 조이는 그런 3D 이미지였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 이 기관사라는 직업이 언론에 나온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항해사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탓이었는지, 실무에서도 사람들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기관사’라고 하면, 철도 기관사라고 생각할 정도이고, 배에도 기관사가 있는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면접관들의 기관사 쪽 제안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항해 쪽만 보고 있습니다. 기관 쪽은 관심이 없어요.”

’기관 쪽을 가느니 안가고 말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 정말 후회된다.


상선 사관 (항해사, 기관사) 방 (인터넷 발췌)


3년이 지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선박 기관사로 근무하게 되면 발전기부터 보일러, 메인 엔진 (디젤 혹은 가스터빈 엔진), 유압 관련, 조종면 (rudder), air starter (엔진 시동 시 필요한 공압식 시동기), 공기 압축기, 공조기, 펌프 등 선내의 수많은 기계들을 다룰 수 있기에, 나중에 육지로 올라오더라도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그리고 해외 항구 정박 시 화물 상하역 작업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항해사와는 다르게, 정박 시에는 별도 업무가 없으면 배에서 쉬거나, 잠시 놀러 나갔다 올수 있고, 근무 환경도 365일 24시간 3교대 근무인 항해사와는 다르게, 교대 근무가 아닌 주간 근무인 점도 장점이었다. (물론 야간 당직을 돌아가며 서지만)


무엇보다 기술직이라는 면이 정말 컸다.

항해사는 무인 자율주행 시스템의 개발과 도입이 점차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점점 배에 태울 인력이 적어질 전망이었지만, 그 무인 자율 주행 선박에도 비상 사태를 대비해 기관사들을 의무적으로 태워야 했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계 시스템의 자동화로 인해 항공 기관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다싶이 했지만, 파일럿들은 여전히 탑승해야 하는 항공쪽과 대조된다.)




나는 예상대로 항해 쪽 면접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2-3일이 지난 뒤, 면접에 떨어진 사람에 한하여 기관부 쪽을 재모집하는 공고가 웹 사이트에 올라온게 보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어리석게도, ‘뽀대나는 직업 이미지 하나’라는 것이 나에게는 큰 직업 결정 요소였기도 했었고,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해볼 머리가 안되었던 나였기에 면접을 보러 가지 않았었다.


만약 그 때, 내가 기관부 면접을 봤었다면,

그랬다면 지금 나는 바다 위에서 3등 기관사로서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선박 기관실 내부 (인터넷 사진 발췌)



다음 화에서.


배에서 바라본 제주 인근 바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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