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 (17화)
Human Error의 중요성, 그리고 에어캐나다 759편
아시아나 조업사 면접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은 나는 얼마 안되어 신체검사를 받으러 여의도에 다녀왔다.
원래대로라면 푹 쉬고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었지만, 당시 트럭 운전 대체자가 없었기에 일을 빼기가 어려웠고, 야간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곧바로 신체검사 장소로 향했다.
헌데 피곤한 상태가 이렇게 결과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맨 첫번째로 진행했던 검사가 청력 검사였는데, 현장에서 지게차 소리와 트럭 소리에 노출되어 있었다보니 검사용 헤드폰을 끼자마자 곧이어 '삐' 하는 이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이명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고, 검사관께서는 정밀 검사를 받자고 나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야간에 현장 일을 하고 바로 와서 그런것 같아요.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해봐도 될까요?"
검사관께서는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고, 나는 다행스럽게도 청력 정상을 받을 수 있었다.
곧이어 시력 검사를 진행했는데, 피곤했던 탓이었는지 평소보다 초점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잘 읽을법했던 숫자들도 잘 안보이기 시작했고, 눈이 내 눈같지 않은 느낌뿐이었다.
곧이어 말도 안되는 검사 결과를 받게 되었는데, 왼쪽 눈 0.2, 오른쪽 눈 0.9로 양쪽 눈이 짝짝이로 나와버린 것이었다. (푹 자고 일어난 뒤에는 1.0, 1.0 나왔었는데.. 정말 대조되는 결과이다.)
그렇게 X-Ray 검사, 소변검사, 혈액검사 등 모든 검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푹 뻗어 잠을 잤다.
'이래서 Human Error가 진짜 중요한거구나.'
이번 신체검사를 통해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숙면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피곤함 속에서는 상식적으로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고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예는 항공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한 공항에서는 조종사의 피곤함으로 인한 판단미숙 때문에 사상 최악의 대참사가 발생할 뻔했었던 적이 있었다.
2017년 7월 7일 밤, 이착륙하는 비행기로 붐비고 있었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에어 캐나다 759편' 항공기가 착륙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었는데, 당시 두 개의 활주로 중 왼쪽 활주로가 폐쇄된 상태였으며, 공사를 위해 유도등 또한 꺼져 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오른쪽 활주로만 사용할 수 있었고, 그 옆 ・유도로 (Taxiway)에서 이륙을 준비하기 위해 대기하던 항공기들이 4대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유도로 (Taxiway) : 공항 게이트에서 이착륙하기 위한 활주로까지 가기 위한 도로.
비행기를 타면 굉음을 내며 이륙하기 전, 비행기가 5~10분 정도 천천히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도로이다.
관제탑에서는 오른쪽 활주로로 착륙하게끔 조종사들에게 교신 지시를 내렸으며, 조종사들 역시 복명복창하며 오른쪽 활주로에 착륙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헌데 문제는, 조종사들이 유도로의 등 (light)을 오른쪽 활주로 등으로 잘못 보고 유도로에 착륙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즉 그들은 오른쪽 활주로가 당시 폐쇄된 왼쪽 활주로인줄 알았던 것이고, 유도로를 오른쪽 활주로로 알았던 것이었다.
유도로에서 대기 중이던 유나이티드 항공기 조종사는 자기 눈앞으로 날아오는 에어 캐나다 항공기를 보고 다급하게 관제탑에 "저 비행기 지금 유도로로 착륙하고 있어요"라고 교신을 보냈고, 그 뒤에 기다리고 있던 필리핀 항공의 조종사가 Landing light를 번쩍 켜줌으로 상황을 알려주었다. (쉽게 말하면 자동차 상향등을 깜빡이며 신호를 보내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그 즉시 관제탑에서 에어 캐나다 항공기에 복행 지시를 내렸고, 에어 캐나다 항공기는 두번째 대기하고 있던 항공기와 약 4m도 채 안되는 높이 차이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아파트 1층 높이가 2.6m이니, 4m면 아파트 2층도 채 안되는 높이이다. 거대한 항공기의 크기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되는 차이이다.
유도로에는 총합 1085명이 타고 있던 4대의 비행기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조금이라도 대처가 늦었다면 전례 없는 끔찍한 대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유도로 등은 파란색의 양옆 끝단 등과 초록색으로 이루어진 중앙 등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기에, 여러가지 착륙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활주로 등이랑 착각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수백시간 수천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지고 있는 민항사 조종사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일일 것이다.
* 유도로 등 : Taxiway Edge light (파란색) + Taxiway Centerline light (초록색)
* 활주로 등 : Approach light + Touch-down zone light + Threshold Identification light + Runway edge light + Runway End light + PAPI light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을까?
항공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비행기의 기술적인 결함이나 고장은 없었다.
하지만 당시 에어 캐나다 759편 기장은 19시간 연속, 부기장은 12시간 연속으로 초과 근무하여 잠을 자지 못한채 비행기를 조종했었다는 점이 원인이었다. (이는 항공법상 위법 사항이다.)
특히나 비행기 운항에 수십가지를 고려해야 하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조종실 근무 환경 특성 상, 그들에게 피로감은 더 몰려 왔을 것이다.
이는 순전히 100% 인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할 뻔한 사고였던 것이다.
대개 한국에서 동남아 편을 운행하는 조종사들이 현지 호텔에서 하룻밤 머문 후 다음날 귀국편을 몰고 다시 돌아오는 것과 비교해보면 비정상적인 근무 시간이다.
미국 보건사회복지부 소속인 CDC의 발표에 따르면, 사람이 24시간 잠을 자지 않으면 판단 및 인지 능력이 혈중 알코올농도 0.10% 수준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한국, 일본 기준으로 0.03% 이상의 경우 음주운전으로 단속된다.) 우리가 술을 먹고 취했을 때 제대로 된 사고가 안되는 것을 떠올려보면 곧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사람이 충분히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올바른 사고가 안되어 판단착오가 발생하게 되고, 평상시에는 전혀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은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예전에 다니던 일본계 회사에서도 인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들이 분기별로 한 건씩은 발표되곤 했었는데, 이것이 참 안타까운 점은 환경만 개선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었을, 혹은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고였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의 작업 환경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작업 및 업무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다음 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