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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Nov 30. 2020

극장이여, 알아서 살아남으라

파리 공연장 2020/2021 시즌 프리뷰

* 월간객석 2020년 10월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9월 시즌 오픈을 앞두고 프랑스엔 하루 만 명에 가까운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졌다. 예상 가능하듯 여름 바캉스의 영향이다. 그러나 전국적인 통제는 없을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방 자치단체별 의견을 존중하겠다”라고 했으며, 개인적인 위생 관리를 당부했다. 14일이던 자가격리도 7일로 줄었다. 프랑스의 코로나19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각자도생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9월이 되자 파리 오페라를 제외한 극장과 콘서트홀이 조심스레 시즌을 시작했다. 이미 지난 시즌을 강제로 닫았던 터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전염이 절망적인 수준으로 확산되지 않는 한 2020/21 시즌은 계획대로 운영될 예정이다. 


오페라 가르니에 ©E.Bauer/OnP


리노베이션 들어간 파리 오페라 


지난 6월 파리 오페라는 2021년 오프 시즌에 계획한 극장 리노베이션을 당겨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페라 극장인 바스티유 오페라는 11월까지, 또 다른 오페라의 중심지 오페라 가르니에는 연말까지 문을 닫는다. 이미 작년 파업과 코로나19로 인해 2019/20 시즌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상황에서 새 시즌까지 미뤄진 것이다.  


사실 파리 오페라는 재정 문제에 극장장 퇴임과 취임까지 겹쳐 상황이 복잡하다. 전 극장장 스테판 리스너는 6월 ‘르몽드’ 지와 인터뷰에서 “2020년 말 파리 오페라는 자본이 없을 것”이라며 “파리 오페라는 정부 지원 40% 자체 수입 60%로 재정을 마련하는데, 이 구조로는 위기를 버틸 수 없다”며 비관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파리 오페라가 산소호흡기로 연 명 중이란 이야기가 돌았다. 


스테판 리스너의 조기 사임으로 내년 여름 부임 예정이던 알렉산더 니프가 9월부로 당겨 취임했다. 문화부 장관 로셀린 바슐로는 캐나다 오페라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니프를 일찍 데려오기 위해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그녀는 또한 “파리 오페라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파리 오페라에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어찌 됐든 2020/21 시즌은 당분간 난항이다. 별다른 전략도 없고 선공개된 브로슈어도 없다. 오페라 ‘예누파’, 발레 ‘적과 흑’ 등 제작 초연은 재정 문제로 일찌감치 취소됐고 대신 기존 레퍼토리를 넣었다. 기대를 모았던 바그너 링 사이클은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연기됐다. 내년 2월 전까지는 기존 작품 위주로 상연하며 초연은 그 이후에 오른다. 


시즌 운영은 니프가 상황을 얼마나 현명하게 타개하느냐에 달렸다. “지금은 혁명이 아닌 진화가 필요한 시기”라며 “파리 오페라의 정체성을 찾고 확립하려 노력하겠다”한 취임사처럼, 내실을 다지길 기대할 수밖에. 


시몬 스톤 연출의 ‘라 트라비아타’ ©Charles_Duprat/OnP


혁명 대신 진화를 


바스티유 오페라는 11월 25일 ‘라 트라비아타’로 재개관한다. 지난해 주목받은 시몬 스톤(1984~) 연출로, 당시 비올레타이자 오페라 가르니에에 오른 첫 흑인 소프라노였던 프리티 옌데(1985~)도 다시 참여한다. 이어 오르는 칼릭스토 비에이토(1963~) 연출의 ‘카르멘’(12.16~31)은 폭력·강간 등 원색적 연출로 충격을 던진 작품으로 여전히 논란이지만 한편으론 흥행도 보증한다. 파리 오페라가 사랑하는 연출가 로버트 카슨(1954~)의 모차르트 ‘마술피리’(1.12~2.22/바스티유)와 R. 슈트라우스 ‘카프리치오’(1.26~2.21/가르니에)도 다시 오른다. ‘카프리치오’의 주연은 디아나 담라우(1971~)가 맡는다. 


제작 초연은 2월 9일 네덜란드 연출가 로테 드 비어(1984~)의 ‘아이다’(2.9~3.27/ 바스티유)부터 시작된다. 이국적으로 포장되는 ‘아이다’를 “식민지를 바라보는 유럽인의 시선을 비판하는 연출”로 풀어낸다. 이어 독일 연출가 토비아스 크라처(1980~)는 ‘파우스트’(3.12~4.21/바스티유)로 젊음을 향한 현대 사회의 집착을 현실주의적으로 구성한다. 드미트리 체르냐코프(1970~)의 새 연출 ‘스페이드 여왕’(5.22~6.12/가르니에)은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와 함께 러시아 서정에 초점을 맞춘다. 


칼릭스토 비에이토의 카르멘 ©Vincent Pontet/OnP

이번 시즌 기대작은 단연 세계 초연되는 ‘비단구두’(5.29~6.26/바스티유)다. 폴 클로델의 10시간짜리 희곡을 작곡가 마크 앙드레 달바비(1961~)가 5시간 30분짜리 오페라로 변모시켰다. 유럽이 최초의 세계화를 경험한 원작의 스페인 시대를 개인주의와 우주에 대한 열망이란 우리 시대 이야기로 바꾸었다. 연출은 현대식 연출로 정평이 난 스타니슬라스 노르디(1966~)가 맡았다. 


파리 오페라 발레는 1월 27일 오프닝 갈라로 시즌을 시작한다. 새 안무작은 이스라엘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1952~)의 ‘SADEH21’(2.3~27/가르니에)다. 예측할 수 없는 템포 변화와 중력을 거스르는 강렬한 안무로 즉흥·움직임·음악이라는 춤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롤랑 프티 (1924~2011) 타계 10주기를 맞아 올리는 ‘노트르담 드 파리’(3.26~5.7/바스티유)와 롤랑 프티 회고전(5.29~6.26/가르니에)도 눈에 띈다. 


미코 프랑크와 라디오 프랑스 필 ©Christophe Abramowitz/Radio France


수장에 대한 믿음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프랑스 내셔널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메종 드 라 라디오는 지난 6월 25일 다시 열렸으며, 두 악단의 2020/21 시즌은 변동 없이 운영된다. 다만 입장은 인쇄된 티켓이나 스마트폰 티켓으로만 가능하다. 지연 관객 입장과 인터미션도 없다. 라디오 프랑스 필 측은 직접 주요 공연을 꼽아줬다. 


“올해로 미코 프랑크가 지휘봉을 잡은 지 5주년이 됩니다. 특히 그의 프랑크 교향곡 d단조와 교향시 ‘우리가 산에서 듣는 소리’(9.30)가 기대됩니다. 지난 4월 이 작품으로 음반(Alpha)을 발매했어요. 위고에게 영감받은 이 작품은 리스트의 교향시보다 10년 앞선 것으로,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을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10월 2·3일 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와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가 라벨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그것에서 영감받은 얀 로빈(1974~)의 ‘왼손을 위한 연구’를 초연합니다. 12월 4일 명예지휘자 정명훈과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만남(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11·12일 프랭크 자파(1940~ 1993) 프로그램도 준비됩니다. 자파의 탄생 80주년을 축하하며 그의 관현악과 그가 존경했던 스트라빈스키와 바레즈의 음악을 엮었습니다.” 


프랑스 내셔널 오케스트라 측은 “9월 새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크리스티안 마셀라루(1980~)에 대해 기대가 높다”고 전했다. 마셀라루의 첫 연주는 9월 24일 생상스 교향곡 2번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협연 벤자민 그로브너)이고 내년 3~4월에 스트라빈스키 작품으로 전국 투어가 펼쳐진다. 


 파리 오케스트라 © Orchestre de Paris


동시대 음악의 지도 


“2020/21 시즌 프로그램은 ‘지도’입니다. 다양한 궤도와 점선, 교차로가 있는 동시대 음악의 지도 말이죠. 자신만의 코스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콘서트홀인 필하모니 드 파리의 대표 로랑 베일(1951~)의 ‘지도’ 아이디어는 불레즈(1925~2016)의 세 번째 피아노 소나타에서 따왔다. 파리 필하모니는 1월 제2회 ‘피에르 불레즈 비엔날레’를 기획·개최한다. 마티아스 핀처/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관현악 작품을, 플로랑 보파르 등이 피아노 작품을 연주한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는 ‘노타시옹’은 그가 파리 오케스트라 수장이었을 때 불레즈에게 직접 의뢰한 곡이다. 


이번 시즌은 필하모니 드 파리가 “모든 창작을 환영하는 장소”임을 증명한다. 주말마다 월드음악 시리즈가 진행되며, 히사이시 조(1950~)와 탄둔(1957~)의 작품 초연(9월·2월), 장 미셸 자레(1948~)의 전자음악 콘서트와 워크숍(10월), 바렌보임/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베토벤 교향곡 전곡(11월), 파리 오케스트라의 필립 글래스·스티브 라이히 프로그램(11 월),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협연 다닐 트리포노프·데니스 마추예프)의 5일간의 스트라빈스키 축제(3.29~4.2) 등이다. 


한편 상주 오케스트라인 파리 오케스트라는 2022년 대니얼 하딩의 후임으로 24세의 핀란드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1996~)를 임명했다. 메켈레는 11월 18·19일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지휘한다. 올 시즌은 마린 올솝부터 블롬슈테트, 에셴바흐 등을 비롯한 지휘자 28인의 연주가 예정돼 있다. 


전윤혜(음악 칼럼니스트)


월간객석 10월호 GAEKSUK EYE from FRANCE

* 메인 사진은 바스티유 오페라입니다. ©Patrick Tourneboeuf·Tendance Floue/O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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