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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Dec 07. 2020

색과 형태 사이, 숨 쉬는 이야기

일러스트레이터 Tom Haugomat 인터뷰

회색의 도시 파리에서 나고 자란  오고마는  가지 색과 단순한 형태로 삶을 그려낸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커리어를 쌓은  꾸준히 그림책을 내다가 지금은 온라인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자연과 삶의 풍경을 실크스크린 스타일의 절제된 그림으로 표현하며,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탁월한 구성 감각은 정적인 일러스트에 영화와 같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덧붙인다.




지난 1~3월 서울에서 열린 <The Jaunt> 전시회에 참여했죠. 한국에서 드디어 당신의 작품을 실물로 볼 수 있어 기뻤어요.


저도 한국에 작품을 선보이게 돼서 기뻤습니다. <The Jaunt>는 지금껏 제가 해본 것 중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였어요. 아티스트들이 미지의 곳으로 떠나 그곳에서 얻은 영감으로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였죠. 저는 2018년 일본의 야쿠시마섬으로 갔어요. 그곳의 야생에 감명받아 아주 많은 스케치와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완성한 2개의 실크스크린 작품과 몇몇 일러스트를 서울 에브리데이몬데이 갤러리에 전시했습니다.


야쿠시마 섬에서의 스케치. ©Tom Haugomat

같은 시기에 열린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는 라가치상을 수상한 당신의 책 『À Travers』가 전시됐어요. 『À Travers』는 왼쪽 페이지에 3인칭 시점, 오른쪽 페이지에 1인칭 시점의 이미지가 배치되어 있어 굉장히 입체적이었습니다. 독자가 왼쪽 페이지 속 인물의 시선을 따라 서서히 오른쪽으로 이동하도록요.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일했다고요.


프랑스 출판사 티에리 마니에(Thierry Magnier)와 함께 아동 도서를 만들고 있어요. 애니메이션 경력이 스토리텔러의 길을 가도록 도와준 것은 사실입니다. 고블랭 영상 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일했어요. 그 시절 저와 브루노 만교쿠(Bruno Mangyoku)는 무성영화 <장 프랑수아(Jean - François)>(2009)와 <해충(Nuisible)>(2013)을 감독했습니다. 『ÀTravers』 작업을 할 때도 무성영화 같은 말 없는 내러티브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몇 페이지는 꽉 찬 스프레드인데 페이지를 넘길 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구성했죠.


『À Travers』와 파리에서 열린 원화전. ©Tom Haugomat

스토리텔러라는 표현이 잘 어울려요. 무엇이 당신을 아티스트의 길로 이끌었나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께 어린이 책 삽화가가 되겠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고등학생 때 고블랭 영상 학교에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학교 학생들이 안시 페스티벌에 출품한 단편 애니메이션들에 완전히 매료 됐거든요. (몇 년 후 운명처럼 그는 단편 <장 프랑수아>로 안시 페스티벌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다.) 입학 시험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준비가 덜 되어서 먼저 소르본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예비 학교인 세브르 아틀리에(L’Atelier de Sèvres)에서 일 년 동안 그림만 그렸어요. 그때 인생 처음으로 내가 잘하는 것이 있구나 느꼈죠.


파리 교외의 자택에서 작업 중인 톰 오고마.

당신의 일러스트에는 광활한 자연, 목가적 풍경, 삭막한 도시의 삶까지 많은 이미지가 공존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장면도 꿈꾸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어디에서 주로 영감을 얻나요?


언제나 자연과 야생에서 매력을 느껴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알프스를 전문적으로 등산하고는 했어요.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등산복을 챙겨 입고 플라스틱 등산화에 아이젠을 채우고 줄에 의지한 채 아버지를 따라 빙벽을 올랐죠. 거대한 산에 둘러싸인 야생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랄까, 이런 기억들이 제 그림의 구성 감각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아마 그래서 광대한 풍경 속의 작은 사람을 자주 그리는 게 아닐까요. 또 저는 여행하면서 영감 얻는 걸 좋아해요. 하지만 꼭 멀리 갈 필요는 없어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요세미티에서의 스케치. editorial work about Jim Harrison for 『America』, 2019 ©Tom Haugomat

빛과 그림자도 당신의 일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구름, 물결, 햇빛 등의 움직임을 단순하게 형상화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고블랭 영상 학교를 졸업할 무렵 마거릿 킬갈렌(Margaret Killgallen)이라는 미국 아티스트를 알게 됐어요. 그녀의 천진난만한 작업은 제가 학교에서 공부한 것과 무척 달랐죠. 감정을 일으키기 위해 굳이 여러 디테일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단순한 모양과 굵은 선을 쓰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시작했어요. 컬러를 겹치는 방식으로 작업하니 구성이 훨씬 단순해졌죠. 스타일이 아주 미니멀하기 때문에 깊이감을 주기 위해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요.

editorial work for 『L’OBS』, 2016. ©Tom Haugomat

색의 가짓수도 아주 적습니다. 때론 복고풍 색상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특히 3D 안경 같은 붉고 푸른 계열을요.


일곱 가지 색을 넘지 않을 것, 그게 제 규칙이에요. 실크스크린으로 색을 겹치는 과정을 통해 균일한 색면을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초기에는 바우하우스 컬러와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들의 비비드한 톤과 조화가 개인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죠. 저의 또 다른 책 『Hors Pistes』(2014)는 청홍 대비를 메인으로 사용했습니다. 두 컬러는 여백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합니다.

『Hors Pistes』(2014) 표지. ©Tom Haugomat
mountain, 2017. ©Tom Haugomat

손 그림과 디지털 작업을 병행하는데, 작업 단계가 궁금합니다.


작업은 주로 포토샵으로 합니다. 디지털 작업은 특히 많은 수정이 필요한 상업적인 프로젝트나 책 작업에 굉장히 편리하니까요. 우리는 정말 행운아예요. 전문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작업 방식을 따를 수 있는 아이패드 같은 도구가 있잖아요. 그러나 요즘에는 손으로 더 많이 그리려고 노력해요. 저는 작업할 때 선 스케치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추상적으로 평면과 색상을 구성한 다음 모양을 정리하고 디테일을 추가해요. 마치 조각 작업처럼요. 시작할 때 조금 까다롭기는 합니다.


톰 오고마의 작업실 책상 풍경과 늘 지니고 다니는 작은 스케치북. 톰 오고마는 아크릴 마커, 실크스크린 등을 이용한 손 그림과 디지털 작업을 병행한다. ©Tom Haugomat

에비앙, 넷플릭스 등 대기업을 비롯해 『뉴욕 타임스』,『르 몽드』 같은 유명 일간지와도 활발히 일하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프랑스에서 그림 작가로 살아간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에요. 생활비를 벌고 개인적인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선 기업과 작업해야 하죠. 가장 도전적인 작품은 2014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파리 프랭탕 백화점 전체를 감싸는 15개의 거대한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업이었어요. 친구들을 모두 불러 거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처럼 작업했어요.


에비앙, 넷플릭스와 작업. ©Tom Haugomat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톰 오고마의 일상이 궁금해요.


파리 교외의 작은 정원이 딸린 집에서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살아요. 작업을 제외하곤 아빠의 삶을 살고 있죠. 여가 시간에는 두 살배기와 레고를 맞추거나 공원에 갑니다. 지난봄부터 정원 가꾸기를 시작했어요. 작은 땅에서 가지와 토마토, 호박이 자라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고 만족스러워요. 여행도 종종 갑니다. 안타깝게도 여행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상한 시대가 되었지만 말이죠. 아, 이건 꼭 말해야겠어요. 저와 아내는 한국 영화 광팬이랍니다. 언젠가 한국에 꼭 가보고 싶어요!


인터뷰어 전윤혜


* <아주 좋은 날> 2020년 가을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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