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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Dec 09. 2020

뜨거운 충돌의 현장

마르세유, 제20회 엑토랄 페스티벌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마르세유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활기차고 자유로운 도시, ‘인터-액티브’한 도시이지만 한편으론 ‘하이퍼-액티브’해 시끄럽기도 한 곳. 프랑스식 세계화로 진통을 앓는 곳이자 그로 인해 새로운 예술이 꽃피는 도시, 마르세유. 하지만 그곳의 모습은 우리가 ‘프랑스’하면 떠올릴 이미지와 대척점을 이룬다. 이민자 문화가 주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마르세유의 상징인 올드 포트(Vieux  Port)와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

지중해 최대 규모의 항구를 가진 마르세유는 지리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문화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마르세유 항은 로마 제국의 교역 거점이었고 십자군 원정과 아프리카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일찍이 타 문화와 섞였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 무역과 공업의 전진 기지로 많은 북아프리카인들이 정착했다. 이민은 1세대, 2세대를 지나 현재까지 이어진다. 현재 마르세유는 올드 포트를 중심으로 한 관광지 및 부촌을 제외하고는 아라비아 도시의 모습에 가깝다. 800km 떨어진 파리의 영향은 이곳에서 미미하다.


마르세유 구시가의 그래피티들. © Yoonhye Jeon

이질적인 문화가 부딪히는 긴장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동했다. 그래피티와 춤과 음악, 동시대 창조적인 작업들이 거리와 빈 공장에서 일어났다. 전통적인 오페라 극장보다 거리가 선호됐다. 안무가 롤랑 프티(1924~2011)에 의해 1972년 설립된 마르세유 발레의 첫 작품도 32,000명 군 중 앞에 선보인 ‘핑크 플로이드 발레’였다.


슬럼가가 현대예술의 집결지로


이러한 동시대의 산발적인 움직임이 정책적으로 후원받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다. 마르세유는 낡은 항구와 슬럼가 이미지를 벗고 현대예술의 도시가 되고자 했다. 유로메디테라네 사업을 통해 옛 도심에 현대적 건축의 박물관(MuCem)을 짓고, 버려진 공장을 문화 기지로 바꾸는 등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으며, 현대예술 지역기금을 만들어 예술가들을 후원해 왔다. 그 결과 2013년 유럽문화수도로 지정되며 새로운 문화적 이미지를 입었다. 마르세유에서는 매년 ‘현대예술의 봄’이 열리며 가을에는 다원예술 ‘아트페어 아트오라마’와 컨템퍼러리 공연예술 ‘페스티벌 엑토랄(Festival actoral)’이 열린다. 올해는 2년마다 개최지를 바꿔가며 열리는 유럽 현대예술 비엔날레 ‘마니페스타’(8.28~11.29)도 함께 열리고 있다.


루이 14세 때 지어진 생장 요새와 2013년 유럽문화수도에 맞춰 개장한 지중해문명박물관 뮤셈. 400년 시차의 건물을 미니멀한 다리가 잇고 있다.

엑토랄 페스티벌은 2001년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위베르 콜라스가 설립했다. 연극·무용·시각예술·음악·영화·문학 등 모든 영역에 걸쳐 혼합된 작품들이 공유 공간 몬테비데오와 크리에 극장 등 여러 문화 장소에서 펼쳐진다. 엑토랄 페스티벌은 예술 공유와 후원 부분에 있어 파트너십이 약했던 마르세유에 지역 공동체들의 공유, 협력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 페스티벌은 9월 11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렸고 필자는 10월 3·4일 방문했다. 마르세유로 가기 며칠 전 코로나 19로 인해 프랑스 정부가 마르세유 지역 레스토랑의 영업을 금지했다. 레스토랑 셰프들은 마르세유만 통제되는 것에 대해 형평성 의문을 제기하며 거리에서 그릇을 부수었다. 도시 곳곳이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진행 중이던 엑토랄 페스티벌은 끝까지 열렸다. 축제는 검열을 거부하며 프랑스 정책, 페미니즘, 성소수 자, 빅데이터, 누드 등 현대적 이슈에 대한 강한 수위의 실험과 비판적 시각의 ‘충돌적’ 작품을 이어갔다.


 공유 공간 몬테비데오(Montevideo). © Yoonhye Jeon

주체적 여성들의 현대 서사시


3일 저녁의 무용극 ‘빅 시스터스’는 비주얼 아티스트 테오 메르시에(1984~)와 안무가 스티븐 미셸(1986~)의 두 번째 협업으로, 올 페스티벌을 위해 지난해 몬테비데오에 상주하며 만든 작품이다. “몬테비데오는 저희 작업의 거점 같은 곳이에요. 아티스트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공유하기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2017년 첫 협업인 ‘더 나은 삶을 위한 솔루션(Affordable Solution for Better Living)’ 도 여기서 만들었죠.”(스티븐 미셸)


두 사람은 이곳을 비롯해 에르메스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케아 가구를 현대인의 토템으로 묘사하며 아름다움의 일반화와 소비주의적 삶을 비판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솔루션’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았다.


막이 오르면 '레 게리에르'의 줄거리가 투사된다. 주어는 언제나 3인칭 여성 복수형(Elles)이 사용됨을 알 수 있다. Big Sisters. ©Erwan Fichou

‘빅 시스터스’는 20세기 후반 활동했던 프랑스 작가 모니크 위티그(1935~2003)의 소설 ‘레 게리에르(여전사들)’를 바탕으로 한다. ‘레 게리에르’는 남성적 시스템에 대한 여성의 무력 반란을 다룬 신화적 이야기다. 이전까지의 페미니즘 소설들이 억압된 여성과 불평등을 풍자했다면, ‘레 게리에르’는 여성의 직접적인 공격을 그려 ‘여성 해방의 첫 소설’이라고 불린다.


“‘레 게리에르’에는 페미니스트 이론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있습니다. 고대 서사시들이 남성적 미덕을 그리며 여성을 전리품으로 여겨온 데 비해 이 책은 한 편의 현대적인 서사시입니다. 여성들은 ‘연합’ 하지만 주체를 여성만으로 고립하지 않습니다. 뜻있는 남성들과 함께 가부장제에 맞서 싸우고 시스템을 붕괴시키죠.”(스티븐 미셸)


원작은 사건에 따른 내러티브보다 멀티미디어 설치물처럼 작동한다. 처음에는 평범한 문장을 쓰다 이후에는 규칙과 단어를 버리고 추상적인 표현을 쓴다. 남성적 사고가 언어로부터 비롯된다고 보고 언어의 형태를 바꾼 것이다. 주체는 언제나 3인칭의 집단 ‘여전사들’로 표현된다. (단어에 성별이 있는 프랑스어에서는 3인칭 표현에서 남성형을 여성형에 우선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보지 않기 위해 ‘보편’을 재정의한다. 이러한 문학적 시도들이 어떻게 행위로 녹아날까 기대가 됐다.


스타호크의 나선무를 추는 소녀들, 치마를 벗고 거듭난 여전사들. Big Sisters. ©Erwan Fichou

극은 암전 가운데 지도자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애도하던 소녀들은 회색 옷을 입고 원 안을 맴돌다 밖으로 나오고, 곧 여성으로서 성적 정체성을 발견하고 즐기며, 복수를 위한 훈련을 받고 전사로 거듭난다. “여성에 대한 표현이 만화경처럼 펼쳐지며” “공상 과학과 역사적 재구성이 번갈아 나온다”는 연출 노트에 비해 실제 연출은 ‘소라’로 여성성을 상징하거나 전쟁을 피 묻은 카펫 위의 격렬한 안무로 구성하는 등 신선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코페미니스트 스타호크(Starhawk, 1951~)의 ‘나선무’를 차용하거나, 스크린 속 커다란 등장인물의 얼굴이 스스로를 지켜보는 주체이자 감시자로서 모호하면서도 엄격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몇몇 방식은 흥미로웠다.


증강된 초상화. Big Sisters. ©Erwan Fichou

“여전사들은 의식적으로 보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 대가로 자신을 보도록 허용합니다. 화면은 ‘증강된’ 초상화, 바로 여성의 시선입니다.”(스티븐 미셸)


데이터에 따라 춤추는 시대


4일 저녁의 ‘스테레오’ 속 리즈는 혼자 춤추고 있었다. 그러나 작품은 묻는다. ‘그녀는 혼자일까?’


Stereo. © Antoine Billet

‘스테레오’는 뉴욕의 언어공학자 피에르 고다르가 실시간으로 텍스트를 구성하면 안무가 리즈 산토로가 마르세유에서 춤을 추는, 독특한 방식의 현대무용이었다. 반대로 리즈의 움직임에 따라 그때그때 단어나 아이디어가 텍스트가 전송되기도 했다. 벽과 바닥의 하얀 스크린으로 커서가 움직이고 그 위로 독무가 유연하게 흘렀다.


타이핑 소리는 곧 리듬이 되었다. 텍스트는 점점 도상적인 형태를 띠며 무보(舞譜)화 됐다. 이제 텍스트와 데이터에 따라 춤을 추는 시대가 온 것일까? 그동안 개인은 다중적인 사회적 관계로 얽혀 있었다. 이제는 텍스트도 움직이는 하나의 개체로서 다중적 관계의 일부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유대가 어떻게 실제에 영향을 미치고 상호 작용을 이끌어내는지, 새로운 생각을 던져주는 작품이었다.


© Yoonhye Jeon

공연이 끝나고 프리슈 라 벨 드 메(Friche la Belle de Mai)를 들렸다. 19세기에 세워진 이 담배 공장은 현재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이 되었고 그래피티 가득한 곳곳에서 십 대들이 농구를 하거나 춤 연습을 했다. 전날 공연이 끝나고 만난 한 파리 출신 아티스트의 말이 떠올랐다.


“마르세유는 자유롭습니다. 파리 역시 문화에 관대하고 많은 부분이 열려 있지만, 강력한 전통 위에 세워진 도시라 그 위에 보이지 않는 규율이 많습니다. 예술적으로 포화된 도시죠. 반면 마르세유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열려 있어요. 뼛속부터 오픈마인드랄까요.”

프리슈 라 벨 드 메. Marseille. © Yoonhye Jeon

글 전윤혜(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엑토랄 페스티벌



*월간객석 2020년 11월호에 실렸던 기사입니다. 이 글에는 직접 찍은 사진과 새 캡션을 넣어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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