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페라 2020/2021 시즌 새 프로덕션 <파우스트>
초음파 검진하며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를 본 적이 있는가?
프랑스의 레스토랑과 카페, 문화 공간이 지난해 10월 30일부로 모두 문을 닫았다.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닫혀 있다. 맛난 음식도, 카페의 커피와 디저트도, 심지어 미술관과 공연장도 없는 프랑스라니. 프랑스에 대한 꿈과 환상을 심어주던 이 산업들이 멈췄다는 말은 프랑스의 매력이 8할 이상 사라졌단 말과 같다. 그런 것들을 꿈꾸며 건너온 나는 이쯤 되니 회의가 들 수밖에.
특히나 파리 오페라는 지난해 3월 첫 봉쇄가 시작된 이후 단 한 작품도 무대에 올리지 못했다. 실제 무대에서 말이다. 문화 시설을 열 수 있었던 여름에는 다음 시즌을 준비하느라, 초가을에는 극장 리노베이션을 하느라 시즌 개막이 조금 늦어졌는데, 그만 첫 작품을 올리기도 전인 늦가을 다시 재봉쇄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그대로 침묵하게 된 것이다. 준비했던 2020/2021 시즌의 새 프로덕션은 이대로 묻히는 걸까?
요즘 오페라의 사실주의적 연출
지난해 파리 오페라 새 시즌 프리뷰를 쓰며 대부분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길 고대했다. 시몬 스톤 연출의 ‘라 트라비아타’, 토비아스 크라처의 '파우스트', 로테 드 비어의 '아이다'... 고전 중의 고전. 각 연출가들의 연출 포인트들이 보기만 해도 흥미로웠다. 19세기 사교계의 꽃이었던 여주인공을 현대 SNS 속 인플루언서로 표현한 '라 트라비아타'에는 왓츠앱 메시지, 셀피 등 모든 순간에 휴대폰이 등장하고, '파우스트'는 젊음에 집착하는 노인을 현대 파리의 젊은 세대 문화에 집어넣으며, 이집트 노예가 된 에티오피아 공주의 이야기인 '아이다'는 서양 왕실의 공주의 이야기로 치환하며 유럽인들의 백인 우월주의를 비꼰다. 또다른 기대작 '비단 구두'는 스페인 신대륙 개척 시대의 이야기를 우리 시대의 우주 개척 이야기로 바꿔 버린다. 구세대의 뼈대는 취하되, 그 안에 저도 모르게 들어 있는- 우리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보수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떨쳐내며, 우리가 관심을 가질 만한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살을 붙이는 것이다.
이렇듯 요즘 새롭게 연출되는 오페라들은 사실주의적인 연출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 '오페라' 하면 떠올릴 화려한 드레스와 샹들리에, 무도회와 귀족 이야기가 펼쳐질 고전적인 해석이야 이네들이 몇백 년을 해온 것이니 그 지루함이 말로 할 수 없고, 초현실주의적인 혹은 SF와 상상력에 기반한 극적 해석은 호기심에 몇 번 반짝하고 마는 것이니, 결국 우리 시대의 모습으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뒤탈 없고 롱런하는 프로덕션일 것이고, 몇 번이고 비틀어 해석할 여지가 없는 직설적인 묘사는 어쩌면 가장 예리하고도 단도직입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고발할 수(짚어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게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프랑스는 프랑스구나
토비아스 크라처의 '파우스트'가 TV에서 방영된다는 광고를 보았다. 프랑스5 채널에서 금요일 밤 9시 반부터. 공중파라니! 황금 같은 금요일 밤에 공중파 채널이 2시간 반을 오페라에 할애하는 것이다. 시들한 시금치 같이 살던 나는 광고를 보고 아, 그래도 내가 프랑스에 살고 있구나 느꼈다. 시대가 이러할지언정 여전히 오페라는 그들의 예술 산업을 이루는 강력한 기반이며, 그만큼의 향유층이 있으며, 공중파 채널 또한 이를 수용할 배포가 되는구나, 하고 말이다. 광고는 대략 이러했다- 빼곡한 철제 우편함 앞에서 번호키 달린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파우스트.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며 초음파로 아기를 확인하는 마르그리트. 초음파 검진하며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를 본 적이 있는가? 이 정도면 오페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솔깃할 만하다.
파리 오페라는 2021시즌 새 프로덕션 공개에 앞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오페라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새 프로덕션을 만들긴 만들어야 하는데, 보여줄 관객이 없지 않나. 스트리밍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큰 화면에서 온전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파급을 미칠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대부분의 스트리밍은 무료가 아니다.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현장성에 큰 의미를 두고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소파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는 방식은 그만큼 결제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미 넷플릭스가 아닌 파리 오페라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큰 의지가 필요한데, 프로덕션이 새로 나온 것인지 재탕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내야 하는지 하나하나 클릭해서 확인해야 한다니. 웬만한 오페라 마니아 아니고서야 재생에 이르기 힘들다. 수준 높은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파리 오페라의 존재 이유 한 축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중파 송신이라는 방법은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TV는 늘 그렇듯 틀어놓는 것이니까. 문화부는 쓰러져가는 파리 오페라를 위해 공중파 송신을 위한 자금을 지원했다. 극장이 문이 닫은 지 6개월. 이런 접근은 파리 오페라의 존재를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아, 저런 곳도 있었지 상기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파리 오페라의 프리뷰까지 써놓고 그 사실도 잊었던 내가 그랬듯 말이다.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메인 사진 © Monika Rittershaus/O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