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
프랑스에 접해있는, 약 2㎢ 면적의 작은 나라. 그곳의 봄은 예술과 함께 왔다
부활절 휴가 기간의 모나코는 그랑프리(F1) 준비가 한창이었다. 호화 요트들이 정박한 모나코항 앞으로 거대한 경주용 도로와 계단식 관중석이 설치됐고, 정비 중인 도로 위로 페라리의 최신 모델들이 달렸다. 식당가는 주말 점심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리에는 ‘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이하 몬테카를로의 봄) 현수막이 펄럭였다.
페스티벌이라니. 모든 식당과 상점, 문화 시설이 닫힌 산 너머 프랑스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프랑스는 지난 10월 두 번째 봉쇄 이후로 대면 공연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같은 시기 프랑스의 음악 축제인 ‘엑상프로방스 부활절 축제’가 전면 비대면 중계된 것과 대조적으로, ‘몬테카를로의 봄’은 3월 13일부터 4월 11일까지 매 주말 관객을 맞았다.
“‘몬테카를로의 봄’은 모나코 곳곳을 순회하는 페스티벌이지만, 올해는 전통적인 형식으로 돌아와 질 높은 연주회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주말에만 공연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마저도 야간 통금 시간(7시) 전에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했죠. 다행히 모나코 정부는 티켓 소지자에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마르크 모네)
올해는 19년간 축제 예술감독이었던 마르크 모네(1947~)의 임기 마지막 해다.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한 모네는 그동안 ‘고전과 현대’ ‘아르스 노바와 아르스 안티콰’ ‘몬테베르디와 아르투시’ 등의 주제로 충돌과 절충의 프로그램을 구성해왔다. 올해 레퍼토리는 리스트와 하프시코드, 그리고 현대음악 세 축으로 구성됐다.
축제는 3월 14일 마티아스 핀처/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이 열었으며, 페스티벌 동안 세바스티안 리바의 감각주의 음악극 ‘그녀의 입술에 눈이…(Snow on her lips…)’를 포함한 네 작품이 초연됐다.
필자는 예술감독이 ‘전통적인 형식’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을 3월 21일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1981~)의 리스트 ‘순례의 해’ 전곡 연주, 4월 10일 하프시코디스트 올리비에 보몽(1960~)과 피에르 앙타이(1964~)의 리사이틀에 다녀왔다.
샤마유, 한나절 이어진 마라톤
베르트랑 샤마유의 연주 당일, 프랑스 정부는 대도시 및 남프랑스를 봉쇄했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역에서는 경찰들이 프랑스에서 넘어온 이들의 신분증과 코로나 PCR 음성 증명서를 검사했다. 연주회는 프랑스 야간 통금을 지키기 위해 오전 11시에 시작됐다. 샤마유는 리허설을 포함해 오전 9시 30분부터 연주가 끝나는 오후 5시까지 피아노를 쳐야 했다.
아침의 가르니에 홀. 황금 장식들이 햇살에 빛났고 커다란 창 너머로 바다가 푸르렀다. 거리두기한 좌석은 가득 찼다. 공연 관계자는 “생각보다 봉쇄가 객석 점유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전했다.
커튼이 닫히고 남색 정장을 입은 샤마유가 걸어 나왔다. 베르트랑 샤마유는 리스트 ‘순례의 해’ 전곡 리코딩(2011, Naïve)으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테크닉으로 무장한 30세의 청년이 3시간 동안 펼친 영적인 여정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40세가 된 샤마유의 연주는 보다 섬세하고 여유로웠다. 초반부는 그간 쌓인 유명세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느낌이었지만, ‘순례의 해 2년’ 중 ‘단테를 읽고’에서 완전히 만회했다. ‘단테를 읽고’의 상징적인 옥타브 겹타로 시작해 모티브가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혼란의 장에서 샤마유는 온 힘을 쏟아부으며 17분의 대장정을 완벽하게 마쳤다. 숨죽이던 관객은 3곡이 남았음에도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박수를 터뜨렸고, 박수가 멈추지 않아 샤마유는 짧은 커튼콜을 해야만 했다. ‘순례의 해 3년’에서는 에스테 별장의 전경을 묘사한 반짝이는 전(前)인상주의적 터치가 빛났다.
인문학이 된, 하프시코드의 매력
하프시코드 리사이틀은 해양박물관 콘퍼런스홀에서 열렸다. 2시의 연주를 맡은 올리비에 보몽은 삐걱대는 나무 바닥을 밟으며 객석 뒤편에서부터 걸어 나왔다. 회색 정장을 입고 낱장 악보들을 품은 모습이 흡사 단상에 오르는 학자 같기도 했다.
“1601년에 태어난 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부터 1799년 죽은 클로드 발바스트르까지, 50분 안에 약 2세기에 걸친 프랑스 음악을 연주하는 여정”이라는 보몽의 설명대로, 프로그램은 바로크(자크 샹피옹 드 샹보니에르, 루이·프랑수아 쿠프랭)에서 로코코(라모)로, 초창기 고전음악(발바스트르)으로 진화했다.
정직한 자세, 큰 움직임 없는 단단한 타건에선 재빠른 꾸밈음들이 흘러나왔다. 페달이 없는 하프시코드였지만 보몽은 리듬을 쥐락펴락하며 휴지를 확실히 장악하여 마치 잔향이 오래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특히 전조될 때마다 한 템포 느린 도입으로 프레이즈를 정리하고 노련하게 주제의 구획을 나누는 모습에서 연구자의 면모가 엿보였다.
4시 리사이틀은 원래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의 프랑스 레퍼토리로 예정됐으나 독일의 제재로 40시간 전에 취소되어, 급히 피에르 앙타이가 독일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연주자는 바뀌었어도 프랑스-독일 간 교류를 보여준다는 아이디어는 유지됐다. 프로그램북에 작품 설명을 실을 시간이 없었던 탓에 앙타이는 모든 곡을 직접 설명하며 연주했다.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앙타이의 연주는 보몽과 확연히 대조적이었다. 그는 왼손이 쉴 때면 지휘를 하듯 허공에 제스처를 그리며 오른손의 멜로디를 보조했고, 자유자재로 스톱을 사용하며 두 단의 건반을 바쁘게 오갔다. 압권은 바흐의 ‘g단조 모음곡,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d단조 BWV1004에 부쳐’(레온하르트 편곡)였다. 앙타이는 가벼운 건반을 강하게 내리꽂으며 거대한 화음들을 소화했다. 작은 몸집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놀라웠다. 루이 쿠프랭의 ‘프로베르거 모방 프렐류드’는 쿠프랭이 독일의 정격을 모방한 당대의 크로스오버 작품으로, 반대로 독일 작곡가가 프랑스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었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몬테카를로 예술의 봄 페스티벌
* 월간객석 2021년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