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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윤혜 Dec 23. 2022

오를레앙 콩쿠르 입상자 한지호와 만나다

현대음악의 미래, 제15회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2022년 4월 3~10일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열렸다. 오를레앙 콩쿠르는 타 콩쿠르들과 달리 1900년대 이후 작품으로만 겨루는 독특한 위상의 콩쿠르이자 현대음악계의 미래 연주자들을 발굴하는 장이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는 유일하게 한지호가 결선에 올랐다. 한지호는 콩쿠르 3위에 입상했고 특별상으로 윤이상 상을 수상했다. 


*한지호(1992~) 독일 에센폴크방 예술대,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1위,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 2위, ARD 콩쿠르 1위 없는 2위·청중상·현대음악특별상,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4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오를레앙 콩쿠르 결선 중 ‘도쿄 파사칼리아’ 협연. 연주는 쥘리앵 르로이(Julien Leroy)/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이 함께 했다. 한지호 뒤로 바이올리니스트 강혜선도 보인다. 


2016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음악과 현대음악을 공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5년 뒤 프랑스의 현대음악 콩쿠르에서 당신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그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에서 클로드 르두(1960~)의 ‘나비의 꿈’을 초연한 것이 계기였다. 부담은 컸지만 음악적으로 굉장히 새로워진 느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모르는 음악을 발견해 나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이후 레퍼토리를 창의적으로 넓히려 노력해 왔고, 현대음악을 더욱 깊게 보고 배우기 위해 오를레앙 콩쿠르에 참여했다. 


볼프강 림의 작품을 중심에 놓고 대칭 구조로 구성한 준결선 프로그램이 굉장히 짜임새 있었다. 마누리의 두 에튀드를 붙여서 연주한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두 작품을 띄운 것도 흥미롭다. 

요즘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선처럼 흘러가는 것일까, 원처럼 순환하는 것일까? 그러한 고민 속에 ‘라인 앤 서클(Line and Circle)’이라는 주제를 잡았다. 레퍼토리들은 선으로 출발해 원으로 끝난다. 선율 한 줄이 겹치는 음 없이 연주되는 엘리엇 카터의 ‘연이어 일어나는 (Caténaires)’(2006)으로 시작해 스크랴빈 소나타 9번 ‘검은 미사’(1913), 마누리의 ‘불균형(Dégèlements)’, 볼프강 림의 피아노 소품 5번(1975), 마누리 ‘연결망(Rèseuax)’, 윤이상 ‘간주곡 A’, 스크랴빈 소나타 7번 ‘하얀 미사’(1911)를 거쳐 원을 상징하는 죄르지 리게티의 연습곡 5번 ‘무지개’(1985)에 이른다. 최대한 현대음악의 다양한 사조를 보여주자는 의도도 있었다. 청중이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콩쿠르는 경쟁이지만 연주이기도 하니까. 

*오를레앙 콩쿠르의 준결선은 직접 프로그램한 60분 가량의 리사이틀로 이뤄진다. 심사위원장 필리프 마누리가 작곡한 지정곡 두 곡과, 특별상 목록의 20세기 작곡가의 작품을 필수로 포함한 1990~2021년 작품들로 구성해야 한다. 


스크랴빈의 대비되는 두 후기 소나타를 배치했다. 

스크리아빈 후기 작품들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듯 느껴진다. 말년의 궤적 역시 그렇지 않았나. 프로그램 주제인 ‘인생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어울렸다. 음악적으로는, ‘검은 미사’는 선율적인 진행감이 있다. 그에 비해 ‘하얀 미사’는 진행감이 덜하고 부유하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마지막 곡인 리게티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마누리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뤄본 소감은. 

불규칙성이 논리를 지배한다. 감정적이거나 선율적으로 따라가는 것 없이 불특정한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신기하게도 방향이 있다. 악보만 볼 때는 ‘어떻게 이렇게 엇나가게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실제로 연주해 보면 어떠한 큰 세계가 펼쳐지면서 내가 모르는 곳이 있구나, 겸손해진다. ‘도쿄 파사칼리아’는 본선 진출자로 결정된 2월에야 악보를 받을 수 있었다.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에튀드보다는 선율적이었지만, 박자를 세는 것이 정말 까다로웠다. 사실 이 곡 때문에 콩쿠르 참가를 망설였다. 그런데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께서 “새로운 것 을 배우고 그것을 연주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말라”고 하셨다. 그 격려에 용기를 얻어서 도전했다. 


오를레앙 콩쿠르 결선의 솔로 리사이틀, 한지호 ⓒ CIO

‘페트루슈카’에서 ‘퓌르 알리나’로 이어지는 결선 프로그램은 꽤나 퍼포먼스적이었다. ‘퓌르 알리나’는 결선곡이라는 기대감과는 거리가 있을 법도 한데.

‘페트루슈카’와 같은 화려한 러시아 곡을 칠 때면 언제나 열광적인 반응이 나온다. 그렇지만 그 시끄러운 음표 뒤에 슬픔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청중이 각자의 ‘페트루슈카’를 느낄 여운을 마련해 주고 싶어 다음 곡으로 ‘퓌르 알리나(Für Alina)’를 선택했다. 몇 음으로 아주 천천히 연주되는 ‘퓌르 알리나’는 아르보 패르트가 냉전 속에 떨어져 살아야만 했던 친구 부부와 그 딸을 보며 쓴 곡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 특히 전쟁과 같은 휴머니즘에 반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지금을 위해서 말이다. 

* 결선은 총 50분 내외다. 필리프 마누리의 피아노 협주곡 ‘도쿄 파사칼리아’ 협연 후(20분), 결선곡 리스트에 있는 1915~1930년 작품 중 하나, 앙코르 개념의 1920년~2022년 작품으로 구성한 30분 가량의 리사이틀을 연다. 


오랫동안 독일에 살고 있다. 프랑스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해 볼 생각은 있는지.

프랑스는 확실히 현대음악의 나라인 것 같다. 볼프강 림의 작품만 보아도 C로 시작해 C로 끝나고, 종결구가 다가오면 그것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그에 비해 프랑스 작품들은 떠다니는 느낌이다. 불규칙성의 규칙성이랄까. 언어적인 습관에서도 비롯하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을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 흥미롭다. 이곳에 살지는 못할 것 같다. 나는 10시만 되면 잠드는 타입인데,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을 너무 늦게까지 먹더라.(웃음) 



글 전윤혜 사진 오를레앙 콩쿠르 

* 이 글은 월간객석 2022년 5월호에 실린 기사 ‘프랑스 현대음악의 오늘’ 속 인터뷰 원문입니다.


한지호,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준결선
한지호,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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