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프랑스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땅,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피아노 콩쿠르가 4월 3~10일 열렸다.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는 1900년 이후 작곡된 작품들로만 겨루는 특별한 위상의 콩쿠르다. 1989년 피아니스트 프랑수아즈 티나(1934~)가 설립한 뒤 2년에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올해는 14개국 26명이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 진출자들에 의해 초연된 작품을 통해 작곡 부문 수상자도 뽑는다. 총상금은 120,000 유로(한화 약 1억 6,000만 원)이다.
“올해의 콩쿠르 키워드는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와 ‘필리프 마누리 (1952~)’입니다. 오를레앙에 머물렀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서거 100 주기를 기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가 직접 ‘프루스트의 살롱’이라는 주제로 본선 경연곡 리스트를 선정했어요. 작곡가 필리프 마누리는 올해의 심사위원장이자 콩쿠르 지정곡의 작곡가로도 위촉돼 의미가 있죠. 프랑스 현대음악의 거장인 그와 영감을 나눌 수 있어 기쁩니다.” 예술감독 이자벨라 바질로타가 말했다.
올해 심사위원은 마누리를 비롯해 부소니 콩쿠르 예술감독·국제콩쿠르연맹 의장인 페테르 파울 카인라트, 도쿄음대 교수이자 작곡가·피아니스트인 이치로 노다이라 등 7명이다. 심사위원장 마누리는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젊은 음악가들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듣는 것이다. 내게 훌륭한 연주자는 작품을 완벽하게 숙달한 사람이 아니라 청중과 작곡가를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라고 전했다.
이번에 연주된 마누리의 작품은 준결선을 위한 두 에튀드 ‘연결망(Rèseuax)’, ‘불균형(Dégèlements)’과 결선곡인 피아노 협주곡 ‘도쿄 파사칼리아’. 특히 ‘도쿄 파사칼리아’는 심사위원인 노다이라가 1990년 초연한 곡이다. 노다이라는 이 작품에 대해 “리듬의 ‘정확성’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솔로이면서 앙상블 일원으로 기능해야 하는 ‘동시적 역할’이 중요한 곡”이라고 말했다. 마누리 역시 “같은 구조를 조금씩 변형하면서 반복하는 파사칼리아의 구성을 따르면서, 피아니스트가 한 음을 연주하면 오케 스트라에서 그에 상응하는 반향이 나오는 독주와 협주의 복합체다. 때문 에 한 음이라도 틀리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정확도가 요구된다.”라고 설명했다.
7일 준결선은 진출자 7명의 리사이틀(각 60분)로 이뤄졌다. 프로그램은 자유로이 구성하되 적어도 한 곡 이상 특별상과 관련된 작곡가의 작품을 포함해야 한다. 특별상은 앙리 뒤티외(1916~2013), 알베르 루셀(1869~1937) 등 기라성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재단에서 후원해 제정됐다. 그 가운데 진은숙의 후원으로 제정된 ‘윤이상 상’도 있다.
“윤이상 상은 2012년 진은숙 작곡가의 후원으로 제정됐습니다. 상이 제정되던 해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죠. 진은 우리 콩쿠르의 작곡 부문 최초 우승자라 더욱 각별합니다. 다양한 특별상은 오를레앙 콩쿠르의 아주 중요한 지점입니다. 작곡가의 작품 연주 기회를 늘리고 피아니스트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계기죠. 각국의 참여자들이 윤이상 상을 통해 그의 다양한 작품을 접하게 되듯이요.” 이자벨라가 말했다.
삼인삼색, 개성이 뚜렷했던 결선
10일 결선에는 한지호(한국), 치사토 다니구치(일본), 로렌조 술레즈(프랑스)가 올랐다. 쥘리앵 르로이/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과 ‘도쿄 파사칼리아’를 공통으로 협연한 뒤, 독주로 1915~1930년 사이 작곡된 작품 두 곡을 연주했다.
첫 순서이자 유일한 한국인 진출자 한지호(1992~)는 독주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와 아르보 패르트의 ‘퓌르 알리나’를 선택했다. 뛰어난 건반 장악력으로 알려진 만큼, 건조한 피아노 컨디션을 뚫고 나오는 힘이 인상적이었다. 소수의 음으로 작곡된 ‘퓌르 알리나’는 독특한 여운을 남겼다. 한지호는 본선에서도 구조감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으로 눈길을 끈 바 있다.
치사토 다니구치는 음 하나하나에 생기가 있었다. ‘도쿄 파사칼리아’에서는 중심음 리듬이 불안해 구조적으로 흔들렸지만, 독주는 훌륭했다. 쇤베르크에 이어 장갑 낀 손으로 끊임없이 글리산도를 연주하는 곤다이 아츠히코의 ‘카이로스’(2011)는 그녀의 다채로운 음색을 잘 드러냈다. 연주 후 현장에서 만난 한 기자는 그녀의 음감 조절 능력을 두고 “그녀의 베베른 연주가 궁금해진다”라고 평했다.
로렌조 술레즈는 차분하게 파야의 ‘판타지아 배티카’(1919), 메시앙 ‘아기 예수를 향한 20가지 시선’ 중 5번을 연주했다. 그의 섬세한 메시앙 해석은 이미 준결선에서도 확인된 터였다. ‘도쿄 파사칼리아’에서는 타고난 리듬감이 돋보였으며 이미 완성된 현대음악 연주자로 보아도 될 정도로, 세 사람 중 가장 여유 있게 앙상블에 녹아들었다.
우승은 로렌조 술레즈에게 돌아갔다. 술레즈는 에디슨 데니조프 특별상과 인기상인 청중상·오를레앙 음악원 학생상도 수상했다(그는 2012년 제네바 콩쿠르에서도 우승 및 특별상을 휩쓴 바 있다). 2위와 앙리 디튀외 상을 수상한 치사토에게는 디튀외 자택에서 한 달 동안 머물 수 있는 영예가 주어졌다. 한지호는 3위와 윤이상 상을 수상했다.
마누리는 “각자의 개성이 아주 뚜렷했던 결선이었다”며 “한지호는 힘 있고 단단한 연주가 장점이지만 조금 더 본인의 색깔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다니구치는 음색이 다양하나 리듬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 술레즈는 이미 자신의 스타일이 구축된 연주자다. 미래의 현대음악 연주자로서 가능성이 보여 그를 우승자로 선정했다.”라고 ‘객석’에 직접 심사평을 전했다. 3인은 다음날 파리의 테아트르 드 부프에서 수상자 연주회를 가졌다.
오를레앙 콩쿠르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현대음악계로 진출하는 발판이다. 2020년 3위 수상자이자, 결선 전날 오를레앙에 초청되어 연주한 한국 피아니스트 김채움은 현재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 객원 피아니스트로 있으며 지난해에는 불레즈 비엔날레와 파리 오페라의 이슈였던 초연작 ‘비단구두’에 참여했다. 5월에 파리 오페라에 오를 죄르지 쿠르탁의 오페라 ‘엔드 게임’에도 참여한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오를레앙 피아노 콩쿠르
* 이 글은 월간객석 2022년 5월호에 실린 기사 ‘프랑스 현대음악의 오늘’ 초고 원문입니다. 다음 글에 3위 입상자 한지호 인터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