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의 팔라완 섬 고속도로
“니코, 여기 고속도로 확실해?”
“이상하다, 분명 ‘내셔널 하이웨이National Highway’로 들어왔는데…”
시작은 자갈 도로였다. 아마 도로를 닦으려 다져놓은 모양이다. 중앙선도 표지판도 가드레일도 없지만 산이나 터널 없는 길을 직진만 하면 돼 크게 위험하거나 어렵지는 않다. 우리도 길만큼이나 그다지 준수한 통행자 같진 않다. 꽁꽁 묶은 배낭 사이사이 티셔츠와 양말을 끼워 놓은 것 하며, 꼬질꼬질한 에코백과 덜 마른 바지를 손에 들고 휘날리는 모양이 영 폼 안 나지만, 빨래 말리기엔 달리는 모터바이크보다 좋은 게 없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뭘. 며칠 밤을 새운 히피들처럼 룰루랄라, 윤상의 <달리기>, 핑클의 <영원한 사랑> 생각나는 대로 목청껏 부른다. 이따금 나타나는 개들과 염소 떼 덕에 니콜라스는 곤혹이지만, 나는 언제 또 느껴볼지 모르는 새로운 장면들을 즐긴다.
삼십 분쯤 달렸을까. 첫 IC를 만난다. 작은 마을의 삼거리. 톨게이트와 톨비는 당연히 없다. 그래도 나름 고속도로라고 시멘트 도로가 계속된다. 조금 나아지겠지 기대해 본다. 지금은 오후 1시, 현재까지 속도대로라면 목적지인 푸에르토 프린세사에는 한밤중에 도착할 테다. 내일 아침 국내선으로 마닐라에 갔다가 발리로 출국해야 하는 일정상으론 얼른 도로가 좋아져서 쌩쌩 달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고, 얼른 씻고 잠이 들어야 한다.
기대가 무색하게 시멘트 도로는 몇 분 새 끊어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다 다시 비포장 도로가 되고 만다. 덜컹덜컹, 돌길에 둘만 남겨진다. 여기도 초벌로 도로를 다진 모양인데 미처 다 고르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긴, 이 섬에선 기계보다 속도를 줄이라는 작은 표지판을 세워 놓고 사람이 손으로 공사하는 모습이 흔하다. 아마 이 도로도 트럭이 흙을 실어오고 트랙터가 바위를 밀어내면 사람들이 곡괭이로 고르고 다졌을 것만 같다. 마른 도로 곳곳에 웅덩이들이 나타난다. 얼마 전에 큰 비가 내렸나 보다. 몇 날 며칠을 애썼을 도로가 움푹 패 있다. 흙이 질다. 바퀴가 들릴 정도로 큰 크랙을 두어 개 지나자 엉덩이가 뻐근해 온다. 결국 도로가 끊어진다.
“내비게이션도 끊겼는지 말이 없네.”
에어팟으로 음성 안내를 받던 니콜라스가 말한다. 약한 시그널 탓에 왕왕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땐 ‘길’이라도 있었지. 진흙탕에 동그마니 떨어진 우리. 다행히 조금 더 가다 오두막에 앉아 있던 현지인을 발견하고 물어본다. 손짓 발짓으로 가리키는 곳은 아래쪽. 살라맛 뽀(감사합니다)! 어찌 됐든 믿어보자, 조심조심 경사를 내려가자 눈을 의심할 만한 풍경이 나타난다. 뗏목. 비에 불어난 물 때문에 도로(흙길)가 잠긴 건지, 다리가 무너진 건지 알 턱이 없다. 다만 네 명의 인부가 뗏목을 끌어주고 돈을 받는 걸로 보아 자주 있는 일인 것 같다. 얼떨결에 인생 처음으로 뗏목을 탄다. 인생 처음 모터바이크 여행에서, 모터바이크와 함께 뗏목을 타다니.
“니코, 여기 고속도로 아닌 거 같아. 아니야. 무슨 도로에서 뗏목을 타.”
“하하, 그게 포인트야. 웰컴 투 타이타이Taytay 내셔널 하이웨이!”
물을 건너자 고대하던 시멘트 도로가 나타난다. 곧 전기도 깔 모양인지 콘크리트 전봇대들이 풀숲에 쌓여 있다. 세워진 전봇대들이 규칙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깃줄이 채 걸리지 않은 모습이 너무 새하얀 새것이라 낯설다. 가다 보니 인부들이 전깃줄을 연결한다. 어떤 구간은 전깃줄이 한 줄이고, 어떤 구간은 두 줄로 늘어난다. 도로도 전봇대도 그 모양이 남쪽으로 갈수록 정연해진다. 마침내 우리는 시멘트 까는 기계를 마주친다. 사람들은 여유롭고 한낮의 태양 아래 빨간 라이트가 번쩍번쩍 돌아간다. 그렇다. 타이타이 내셔널 하이웨이는 덜 지어진 채로 ‘하이웨이’로 등록된 거다. 남쪽부터 시작해 북쪽으로 지어지고 있다.
우리는 느낀다. 곧 문명이 들어올 테다. 우리에겐 당연하던 전기와 도로가 이곳에 불을 밝히고 세상의 소식들을 전할 거다. 엘 니도가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오기 위해 큰 호텔을 짓고 여행자 거리를 만들고 있다면, 한 시간 반 남짓 떨어진 이곳에선 삶을 위해 전기를 들이고 도로를 닦는다.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 세상에서 하나의 섬에 전기를 들이고 도로를 까는 것을, 열대 섬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삶을 사는 섬이 되는 것을 목격한 이가 얼마나 될까? 지금은 고전이 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Helena Norberg Hodge의 책 『오래된 미래』처럼 팔라완 섬이 황폐화될지, 개의치 않고 멋진 부자 휴양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여행한 사람으로서 황폐화될 것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지지만. 그렇다고 주민들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편리해질 테니까 아마 기뻐할 이들이 다수일 거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친다. 나까짓 게 뭐라고. 나는 평생을 이미 갖추어진 도시에서 산, 잠시 지나치는 이방인일 뿐인데 내가 그들이 기쁠지 슬플지 어떻게 알까? 그리고 무엇이 그들에게 좋은 것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니콜라스와 마닐라의 지하철 옆 쪽방에 사는 사람들을 보고 나누던 대화들이 다시 떠오른다. 생각이 강렬할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이 감정, 인상 이 파편들이 훗날 나의 무엇을 바꿀 것이라고.
중간 지점인 록사스Roxas를 넘어 남으로 향한다. 잠시 빵집에 멈춰 빵과 콜라를 사고, 주인집 화장실에 다녀온다. 꼬마 숙녀가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선 쑥스럽게 인사한다. 구름이 심상찮더니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진다. 곧 그치겠지, 이십 분 정도 가는데 점점 거세어진다. 우리가 갈 방향 산머리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몸이 점점 젖어온다.
“윤혜, 기다릴까?”
“그냥 가. 이미 다 젖은 걸. 지금 멈추면 저녁에 너무 위험할 거야. ”
며칠 모터바이크를 탔다고, 나도 이제 조금은 안다. 비를 맞더라도 지금 가는 것이 최선이다. 초행길, 비, 이런 도로 상태에 어둠까지 겹친다면 내일 발리는커녕 저세상으로 갈지도 모른다. 니콜라스도 알고 있지만 내 컨디션을 걱정해 물어봤을 거다. 난 괜찮아. 어느 순간부터 반대편에서 오던 스쿠터들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쉰다는 신호니 지금부턴 더 심각해 질거란 뜻이다. 80km로 들이치는 빗방울이 턱턱 헬멧을 때린다. 헬멧마저 없는 니콜라스는 비를 온 얼굴로 다 맞고 있다. 그런 그를 혼자 빗속에 두기 안쓰러워 나도 헬멧 실드를 올린다. 그에게 힘을 주고 싶어. “아 유 오케이?” 간간이 그에게 묻는다.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다도 산도 바람도 없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그저 비를 헤치며 앞으로 나갈 뿐이다. 3시간을 내리 달린다.
머릿속에서 앞으로 내고 싶은 책의 서문이 저절로 써진다. 생각지도 않게 이야기가 줄줄줄줄 이어진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겪는 해방감. 내가 겪은 경험들이 늘어나며, 책상 위를 떠나 모니터 앞을 떠나 세계를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알게 모르게 이어지는 것만 같다.
오늘 달린 팔라완 고속도로가 마치 인생 같다. 시작은 울퉁불퉁하고 삐죽삐죽 서툰 모습. 불안정해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하는, ‘고속’도로지만 절대 ‘고속’할 수 없는 길. 인내심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며 반들반들 닦이는 곳이 늘어나지만 도로는 여전히 끊어지다 이어졌다를 반복한다. 때론 큰 상처도 만들면서. 나아갈수록 점점 다듬어지고 편리한 것을 받아들이며 효율적이고 세련되어져 간다. 멀리볼 수 있고 속도낼 수 있게 된다. 불도 밝히고 곁도로도 만든다. 아마 자신감이 생길 거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때론 예기치 목한 폭우가 내려 다져놓은 길들을 허무하게 잃고 작디 작은 뗏목에 의지해야 할 수도 있다. 마치 우리 아빠가 한창이던 40대, IMF가 덮쳐 젊음으로 피땀으로 일구어 놓은 사업을 한순간 잃었던 것처럼. 그러나 언젠가 털고 일어서겠지. 그 또한 우리 아빠처럼. 끊긴 도로 뒤에 만난 도로들이 새롭게 다져지던 모습처럼 더 단단하게 무장하고서 또다른 불을 밝히겠지.
나는 그래서 이 고속도로가 좋았다. 빠르게 달리기만 했다면 이 아름다운 것들을 놓쳐 버렸을 거다. 산불로 녹아 버린 나무와 오래된 길, 풀숲에 숨은 염소와 다 낡은 가드레일 틈으로 솟아 오른 새싹들을 보았다. 때론 멈추어 이 길이 옳은 길인지 반문하기도 하면서. 내 인생도 그래 왔다. 직진하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일 년, 이 년을 보내고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살았다. 커리어가 늦어질 때면 마음이 급해졌던 게 사실이다. 나도 빨리 시멘트를 깔아야지, 조바심나는 생각들. 이젠 그러지 않기로 한다. 서른을 넘어서면서부터 말로 할 수 없는 무언가, 성급하게 굴었던 모든 것들에 조금은 초연해진 느낌이다. 한국을 떠나면서 홀가분해진 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쯤 되면’ ‘이 정돈 해야지’ 사람들이 정해놓은 보편적인 관념 안에서 직진하는 것보다 천천히 이것저것 다 해 보며 둘러가는 삶, 나는 아직 자갈 도로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시멘트를 깔고 화려해질 때 나는 옆에서 꼬질꼬질하고 꼬불꼬불한 나만의 길을 새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동안 조금씩 어깨너머 배운 것들이 천천히 모이고 있다. 폭우 속, 모터바이크 위에서 글이 저절로 써진 것처럼, 어느 순간 나타날 테다.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그렇게 되고 있음을 믿는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결국 해가 지고 도착한다. 헬멧 없는 니콜라스 눈이 모터바이크 불빛에 달려든 벌레와 몇 차례 부딪혀 빨갛다. 어제 한 밤을 잔, 전기 없던 시발탄엔 곧 전기가 들어올 것이다. 내 인생엔 전기가 들어올지, 염소가 들어올지 모르겠다. 아, 어쩌면 눈이 빨간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