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원조 관광지에서

꾸따 해변, 발리 아줌마와 대판 싸우다

by 전윤혜


발리에서 한 달 살기 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추천하고 싶은 데 있어?” 돌아온 대답은 “언니, 꾸따는 가지 마. 별로야.” 왜? 발리 하면 먼저 뜨는 이름 중 하나가 꾸따였는데.


발리 국제공항 옆에 자리한 해변 마을이자 10km에 달하는 모래사장이 인상적인 꾸따Kuta. 발리를 관광지로 개발할 때 처음으로 염두한 곳인 만큼, 한때는 ‘발리’하면 ‘꾸따’였을 정도의 필수 코스로 군림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펍과 서핑 샵들은 이곳을 저렴한 서핑의 메카로 만들었다. 수영도 하고 서핑도 싸게 하고 맥주도 마시고 기념품도 사고. 그러나 친구가 대번 '별로'라는 걸 보니, 머릿속으로 전형적인 이야기가 그려졌다. 몰락한 원조 관광지. 시간이 지날수록 으레 그러하듯 장사가 잘 되는 상점들만 남아 다들 비슷한 물건, 비슷한 업종을 취급해 독특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여전히 과도한 호객이 사람들을 귀찮게 만들면서 점점 매력을 잃어가는 것.




우린 조만간 북쪽의 우붓Ubud으로 숙소를 옮길 예정이다. 지금 숙소가 있는 남쪽 끝 누사 두아에서 우붓까지 거리가 꽤 되어 택시를 타기엔 부담스럽다. 겸사겸사 스쿠터로 이동하려는데, 니콜라스가 꾸따에서 빌리는 게 좋겠다고 한다. 친구들이 주로 그곳에서 빌렸단다. 내키지 않지만 스쿠터는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기로 했기 때문에 별말 않는다. 출국하기 전날 꾸따로 돌아와 반납하고 공항까진 걸어가기로. 나쁘지 않은 동선이다. 다만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실망하지마, 니콜라스. 고젝을 불러 꾸따로 간다. 혹시 수영할지도 몰라 속옷 대신 수영복을 챙겨 입었다. 시간이 남으면 보드 빌려서 서핑도 하자.


Kuta beach. © Yoonhye Jeon


사람이 많다. 여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긴 모래사장이 트인 느낌을 준다. 파도는 얕지만 길게 뻗는다. 주로 밖에서 바다를 바라보거나 발을 적시는 사람들이 많다. 몇몇 그룹이 서핑 레슨을 받는다. 라이프가드 옷을 입은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서핑 레슨을 받으라고 권한다. 한 사람당 200,000루피아, 우리 돈으로 17,000원 정도. 와이 낫Why not? 고민을 하는 사이 조금 깎아 주겠단다. 그런데 파도가 없다. 파도가 없는데... 어떻게 서핑을 한담? 다른 사람들을 보니 골반까지 오는 얕은 바다에서 첨벙첨벙. 이건 아니지. “파도가 이렇게 없는데 어떻게 서핑을 해요?” 사실 여긴 아침 파도가 좋고 오후엔 밀물이 들어와서 별로란다. 예약을 잡아 주겠다며 내일 아침에 오는 건 어떠냐 묻는다.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해 주지.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서핑할 뻔하겠다.




깨끗하고 조용한 필리핀 바다만 보다 와서 그런가, 생각보다 물이 깨끗하지 않아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덤덤한 나완 달리 니콜라스는 역시나 실망한 모습이다. 타월을 깔고 앉아 카드를 친다. 신혼여행 왔냐며 둘이 잘 어울린다는 아이스크림 아저씨에게 망고맛 하드를 사 먹는다. 수영을 안 하니 좀 심심하군. 맥주나 마시고 가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별이 그려진 발리 맥주 빈땅Bintang을 시킨다. 몇 모금 마실 무렵 한 아줌마가 다가와 신혼여행 왔냐고 묻는다. 너무 잘 어울린다며. 손톱을 보더니 네일 해야겠네, 하면서 말을 꺼낸다. 와이프한테 손톱 선물해 주는 거 어떻냐고. 며칠 전부터 다 떨어진 내 네일을 바꿔주고 싶다던 니콜라스는 짐짓 솔깃한 모양이다. 이미 숙소 근처의 샵들을 둘러봤기 때문에 대략 가격을 알고 있다. 매니큐어는 100,000루피아, 패디큐어는 150,000루피아, 컬러 추가는 50,000~100,000루피아 선이다. 손톱 발톱 케어와 컬러를 합치면 350,000~450,000루피아(약 30,000~40,000원) 정도 되겠다.


“케어도 하고 컬러도 바르고 관리까지 다 해 줘요. 믿고 맡겨요. 이래 봬도 경력이 몇 년이야.”


고민하는 사이 아줌마가 매니큐어 박스를 들고 바닥에 척 앉는다. 다음에 하겠다고 하니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어머, 하는 줄 알고 도구들 다 꺼내 놨는데 어쩌지.”


어쩌긴요. 이렇게 된 거 하고 말죠 뭐. 우리는 말빨도 좋고 재미난 아줌마에 넘어간다. 흥정을 하길래 매니큐어와 패디큐어, 네일 폴리시까지 합쳐 180,000루피아로 딜한다. 싼 게 비지떡이겠지마는 저렇게 자신 있어하니 일단은 맡겨 보자. 골라보라며 꺼내는 매니큐어가 동네 화장품 집에서 산 싸구려 제품들이지만, 알아서 잘하시겠지. 실버 골드 퍼플... 펄 가득한 올드한 색깔 중에 그나마 남색과 에메랄드색을 고른다. 아줌마가 굳은 매니큐어를 흔들 때, 그때 멈췄어야 했다. 오랜만에 당한 호객에 마음이 약해져서일까. 오늘따라 무르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니콜라스가 선물해 주기로 한 거라 더 싫은 소리를 못한다.


패디부터 시작한다. 아줌마는 손톱깎이로 발톱을 깎고(경악) 발톱마다 큐티클 푸셔로 세 번씩 밀더니 눈썹 가위로 두 번씩 휙 휙 큐티클을 자른다. 굉장히 날렵해 보이지만 정작 정리는 안 되는 마법. 베이스코트를 바르고 후 후 불고 남색 매니큐어를 한 번 바르고 후 후, 두 번째 덧바르고 후 후 분다. 이어 탑코트를 바르며 하는 말.


“걱정 마요. 이렇게 베이스코트 탑코트까지 다 챙겨 바른다고.”


© Yoonhye Jeon


앞으로 해가 지고 있다. 선셋이라도 낭만적으로 보려던 찰나, 네일 아줌마와 친분 있는 또 다른 아줌마가 온다. 이것저것 어깨에 냉장고 바지며 스카프를 얹은 아줌마. 우리 필요 없다는데 집요하게 이건 어떻냐 저건 어떻냐 옷가지를 펼친다. 처음엔 괜찮다고 대꾸하다가 “아니 이것 좀 봐봐요. 이 정도면 거저지.” 묻지도 않고 우리 머리에 모자를 씌우고 발에 조리를 신기는 아줌마에 질려 버린다. 우리 선셋 볼 거니까 제발 비켜 주세요. 그사이 패디가 끝나고 네일이 시작된다. 아오 정신없어. 아줌마는 발톱을 깎은 손톱깎이로 다시 손톱을 깎고(경악) 똑같이 큐티클 푸셔로 세 번 밀더니 눈썹 가위로 두 번 큐티클을 자른다. 점점 굳어지는 내 표정을 보고 니콜라스가 안절부절. 아니, 아주머니, 발톱은 그냥 바른다 치더라도 손톱만큼은 다듬고 발라야죠. 참다가 한 마디 한다.


“죄송한데 손톱은 좀 더 다듬어 주시겠어요?”


그런데 아줌마에겐 손톱을 다듬을 파일이 없다.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기 시작한다. 한 번, 두 번. 하필 내가 고른 에메랄드 색이 조금 굳은 데다 묽은 젤 같은 질감이라 얼룩덜룩하다. 살으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색깔이며 울퉁불퉁 손톱이 비치는 끝부분이며.. 어떡하지? “죄송한데 튀어나온 부분 좀 정리해 주세요.” 당연한 걸 예민한 사람처럼 요구하고 있다. 후 후 불고 탑코트까지 바르고선 어머 너무 예쁘네, 하는 아줌마.


니콜라스는 맥주값을 계산하러 가고, 아줌마도 나의 계산을 기다린다. 손톱을 한참을 바라보다 마음을 굳혔다. 웬만하면 참으려 했는데 뭐라도 한마디 해야겠어.


“저기, 이건 돈을 받기엔 너무 심각한 수준인데요.”


“이게? 아가씨, 내가 봤을 땐 너무 예쁜데.”


자꾸 예쁘다고 하는 아줌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뻔뻔한 태도, 내가 극성인 마냥 뭐가 문제냐는 말투. 나는 결심한다. 아줌마,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지쳐서 돈 줬을진 몰라도 나는 아닙니다. 사람 잘못 봤어요.


“아줌마, 눈이 있으면 보세요. (손가락 하나하나 들며) 튀어나오고, 뭉쳐 있고, 삐뚤빼뚤하고. 발톱도 똑같아요. 제가 발톱까진 참다가 손톱에선 도저히 안 되겠어서, 튀어나온 것 지워달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했는데도 이 정도잖아요. 퀄리티가 기대 한참 이하인데, 어떻게 약속한 돈을 다 드릴 수 있겠어요?”


“내 눈에는 전혀 문제없는데요. 그래서 어쩌자고? 돈 못 주겠다고?” 아줌마의 눈빛과 말투가 변하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조금 무섭다. 그래. 아줌마도 이 바닥 경력자겠지. 쫄지 말자. 여기서 쫄면 지는 거야. 아줌마한테 눌릴 것 같으면 니 손톱을 다시 봐.


“아줌마, 아줌마가 예쁘다고 우기면 제가 귀찮아서 돈 주고 말 것 같아요? 나는 아줌마의 솜씨보다 아줌마의 태도 때문에 마음이 더 상했어요. 100,000루피아 이상은 절대 못 줘요. 그 값어치가 아니야. 차라리 내가 아줌마 손톱 발톱 발라 주고 끝내고 말지. ”


거래라는 건 엄연한 ‘물물교환’이다. 기술을 마땅한 가치의 돈과 바꾸는 것. 그러나 상대의 기술이 좋지 않다면, 내가 주기로 한 만큼의 돈을 줄 수 없다.


“100,000루피아? 아가씨 장난해요? 지금 내 보스가 어딨는지 알아? 보스 덴파사르 살아. 따라와. 지금 전화해서 부를 거야.”


엉겁결에 아줌마를 따라간다. 아줌마는 핸드폰으로 어딜 전화해서 한참 씩씩거리다 끊는다. 오케이 아줌마가 협박한다면 나도 마음의 준비.


“아줌마. 보스가 80,000루피아 때문에 여기까지 온다고요? 오라고 하세요. 내가 이 손톱 다 보여주고 너 같으면 이 돈 받겠냐고, 너희 직원들 교육 다시 시키라고 할 거예요. 100,000루피아. 여기요.”


“이 아가씨 봐! 내가 손톱도 발톱도 서비스까지 다 해줬는데, 이럴 수가 있나, 이럴 수가 있나.”


동네 사람들 여기 보소, 하며 고래고래 목소리 높이는 아줌마. 진짜로 동네 사람들이 구경난 것처럼 몰려와서 보고 있다. 때마침 니콜라스가 돌아온다. 격앙한 나도 니콜라스에게 손톱을 보여주며 얘기한다. 이거 절대 약속한 돈 못 줘, 양심적으로 100,000루피아까지는 줄 수 있는데 아줌마 태도에 나 너무 화가 나.


“아줌마. 보스 부르세요. 덴파사르 어디 사는데요?”


니콜라스도 합세해서 추궁한다. 우리가 둘이 되어서인지 할 말이 떨어져서인지 아줌마는 몇 마디 더 하다가 꼬리를 내린다. 알았다며, 깎아 주겠다며. 근데 못해도 150,000루피아는 줘야 한단다. 구질구질 길어지는 다툼에 지쳐간다. 천하의 꾸따 아줌마가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밥도 안 먹어서 배고파 죽겠는데. 이제 우리 그만합시다.


“알겠어요, 아줌마. 됐어요. 20,000루피아 더 줄 테니 이걸로 덴파사르 가세요.”


아줌마에게 20,000루피아를 주고 돌아선다. 아줌마도 더 이상 붙잡지 않고 뭐라 뭐라 하며 가 버린다. 아마 더럽고 치사하다, 아니면 나쁜 년이 걸렸다며 욕하겠지.


© Yoonhye Jeon


안녕히 계세요 아줌마. 사실 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릴 적, 인도에 혼자 한 달 다니면서 이런 거 많이 당했어요. 그땐 마음이 약하기도 하고, 부당해도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여러 번 호갱 되었는데요. 그 후로는 조금 더 매정해졌어요. 이제는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요. 오늘 아줌마가 하나 더 가르쳐 줬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짐했어요. 누구든 약속한 것과 다르게 행동하면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우물쭈물하며 여지 주는 건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요.




관광지가 망하고 나니 남은 건 호객꾼들뿐이구나. 빈땅을 마시며 보았던, 꾸따의 드센 아줌마들 사이에서 본 그 선셋은 무너져 버린 왕조의 그림자를 보는 것만큼이나 쓸쓸했다. 허무하여라. 허무하여라.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 <황성옛터>(1928) 중



네일 시켜 준 니콜라스도 고맙습니다. 덕분에 귀한 경험. © Nicolas Riou




누사 두아 비치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누사 두아 이야기 몇몇을 생략하고 우붓으로 넘어갔는데, 그러자니 또 우리가 나눈 생각들이 아쉬워서 늦게나마 써 올렸습니다. 배너를 따라가면 순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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