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자유함

우붓, 논 한가운데 열린 욕실에서 샤워하며

by 전윤혜


이 모든 자기고백적 이야기는 우붓의 숙소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비포장 논두렁을 가로질러 들어가야 보이는 그곳에서, 이국적인 대나무 창문과 모기장 침대를 지나, 문 없는 화장실의 커튼을 젖힌 때부터. 천장이 없는 욕실. 머리 위로 달이 떠 있고 통유리창 앞으로 펼쳐지는 논. 벽 너머 남의 욕실에선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고 두런두런 스패니시가 들린다.


“와…”



Dinard Scene of <One day>.


론 셰피그Lone Scherfig 감독의 영화 <원데이>에서 오랜 친구 엠마와 덱스터가 북프랑스 디나르Dinard에서 보낸 시간들을 참 좋아했다. 두 청춘은 낮엔 검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백사장에 누워 책을 읽고, 밤엔 삐걱삐걱 오래된 나무 나루 위를 걷는다. 순간 덱스터가 옷을 벗어던지고 밤바다로 뛰어든다. 풍덩. “컴온, 예-아!” 소리 지르는 그의 모습에 망설이던 엠마도 눈을 질끈 감고 옷을 벗는다. “이야아!” 풍덩. 물보라가 친다. 두 사람의 젖은 얼굴만이 빼꼼 떠 있는 밤바다. 누가 있는지, 물이 얼마나 깊은지, 어두운지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절벽가의 멋진 별장에서 어스름 새어 나오는 빛들이 보랗고 푸른 바다에 일렁이고 나루의 흐린 전굿빛이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다.


사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이 있다. 시드니 북쪽의 팜Palm 비치에서였다. 낮엔 산꼭대기 등대에 올라 피크닉을 즐기고, 밤엔 깜깜한 숲, 별빛 달빛이 쏟아지던 잔잔한 바다를 걸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본 니콜라스는 “수영할래?” 훌러덩 옷을 벗더니 물에 뛰어들었고 덱스터처럼 컴온, 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저 멀리 다리 불빛이 보이는데. 누가 보면 무슨 망신이람. 우물쭈물하는 사이 니콜라스는 저만치서 헤엄치고 있었다. 무슨 생각에선지 에라, 모르겠다 엠마처럼 “이야아아-” 똑같이 소리를 지르며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용기가 무안하게 실제는 영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물미역들이 다리를 휘감은 탓이다. 미끄덩한 그 감촉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뛰쳐나갔다. “놀랐어. 사실 네가 따라 들어올 거라고 생각 못했거든. 축하해. 드디어 너, 너를 이겼구나.” 후다닥 옷을 챙겨 입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니코, 나는 나를 이긴 게 아니야. 영화처럼 해보고 싶었다가 실패했을 뿐이야. 부끄러웠다. 괜히 했나 봐.


아무리 사람이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개방된 장소에서 나의 몸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옷과 함께 남들의 시선도 벗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럽지 않거나 즉흥이 부끄러움을 뛰어넘거나 중 하나일 텐데, 모두 ‘남사스럽게...’ 하며 쳐다보는 남의 시선에서 완전하게 자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벗은 남을 ‘남사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Highway. © Ryan McGinley, 2007


한때 유행하던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 전시회에서 옷 벗은 청춘들이 도로를 달리고 바다에 뛰어들고 하던 것을 볼 때도 나는 멋있는 것과 남사스러운 것 사이에서 조금은 헷갈렸다. 맥긴리의 나체 모델들은 그간 봐오던 화보나 작품 사진들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가 친구들과 하는 장난들을, 여행을 단지 옷을 입지 않고 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표정에 힘을 주지 않았고, 그저 자연스럽게 웃고 먹고 달렸다. 무엇이 그들을 자유하게 했을까? 이게 청춘인 걸까?(전시회 제목은 Youth였다.) 그들의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솔직하게 남의 비밀을 훔쳐본 것처럼 부끄럽기도 했다.


나는 왜 ‘부끄러움’을 먼저 생각할까. 나체에 대한 부끄러움은 사람으로선 당연한 감정이다. 평생을 옷을 입고 살아왔으니 벗을 땐 어색한 게 맞고, 언제 주로 벗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이진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일정 이상 살을 드러내는 것은 곧 부끄러운 일이었다. 남들의 눈을 지켜야 한다는 공동체적 미덕과, 상체 탈의, 짧은 치마, 끈나시 등 살이 드러나는 옷과 행동은 성과 직결된다는 암묵적 목소리, ‘성은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지만 정작 아름답게 배우지는 못한 우리 세대의 성교육들은 옷을 꽁꽁 껴입거나, 아니면 안 껴입은 사람들을 비난하게 만들었다.


Sydney Palm Beach. © Yoonhye Jeon


시드니에 살면서 마음이 점점 열렸다. ‘살색’에 대해 굉장히 자연스러운 곳. 공원이든 헬스장이든 남자들의 상체 탈의가 흔하고 해변에선 여자들은 대부분 비키니를 입었다. 여름엔 대부분이 민소매 차림이다. 더우면 짧은 걸 입고 추우면 긴 걸 입는다. 뚱뚱하든, 마르든, 어깨가 넓든, 옷을 얼마나 걸치고 벗든 별 중요치 않다. 개성을 입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시선은 입지 않았다. 넓은 어깨가 컴플렉스였던 나도 점점 자신 있게 민소매를 입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호텔 수영장에 갈 때나 멋 내려고 꺼내 입던, 해수욕장에선 한 번도 입은 적 없었던 비키니를 바다에 갈 때마다 입게 되었다. 보이려 입는 게 아니라 진짜 수영하기 편해서 입게 되었다. 손이나 바지로 늘 가리던 뱃살은 배가 좀 나오면 어때, 가 되어갔다. 꽁꽁 감싼 옷을 한 겹씩 벗을수록 내 컴플렉스도 한 겹 한 겹 벗겨져 나갔다. 평생을 입어온 남의 시선으로부터도 한 겹씩 자유해져 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는 몸은 아름다운 것이며 우리가 하는 사랑도 아름다운 것임을 알려주었다. 이런 경험들이 내게 적어도 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상쇄해 주었다. 나체에 관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혐오할 필요도 없는 것이란 걸.


숙소 Rice Padi Artha에서 보이는 논. © Yoonhye Jeon


숙소의 욕실을 처음 볼 땐 참 아름다웠지만 막상 샤워를 하려니 멈칫해진다. 맥긴리 청년들을 사진에서 볼 땐 멋있지만, 막상 내게 하라고 하면 못할 것처럼, <원데이>에서만큼이나 멋있던 밤바다에선 후다닥 다시 수영복을 걸쳤던 것처럼, 나는 통유리의 블라인드를 내린다. 누군가 있으면 어떡해. 날 보지는 않을까, 내가 씻는 소리가 들리진 않을까. 볼일 볼 때는 어쩌지. 물을 틀어놓고 변기에 앉는다. 이 멋진 풍경 앞에서 걱정거리만 늘어놓고 만다. 뒤이어 샤워하러 간 니콜라스가 블라인드를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블라인드를 내리는 나와 올리는 니콜라스는 화장실을 쓸 때마다 몇 번을 씨름한다. 나도 니콜라스처럼 쿨하고 싶다가도 안 되다가도, 한다. 나는 괜찮냐고 물어본다.


“좋잖아. 자연인이 된 기분이야. 숲 속에서 샤워하는 것 같아.”


“누가 볼까 무섭진 않아?”


“상관없어. 어차피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이랑 똑같이 생긴 몸, 하나 더 봐서 뭐가 달라지겠어.” 그러면서 내가 남자여서 이럴지도 몰라. 여자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 한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만든 곳이 아니라 안에서 밖을 보려고 만든 곳이잖아. 왜 밖을 생각해. 그냥 나는 이렇게 샤워하는 순간이 즐거워.”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그 순간을 즐겁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만을 생각하면 된다. 돌아 돌아 원점으로. 세상 복잡한 내가 1, 2, 3, 4, 5를 생각하다 1로 돌아오면, 니콜라스는 처음부터 1에 있다. 내가 생각하느라 놓친 것들을 맘껏 즐기면서.


며칠간 블라인드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바람에 애꿎은 꽃들이 힘들었다. © Yoonhye Jeon


다음날 아침 블라인드를 내리다가 다시 올린다. 햇살이 하늘로 유리로 비쳐 든다. 어젯밤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오묘하게 풋노란 논. 바람에 싸아아 흔들리는 벼들이 제법 멋지다. 우뚝 선 야자나무가 천장 대신 그늘이 되어준다. 그렇게 볼일도 보고 세수도 하고 샤워도 한다. ‘만약’으로 시작되는 걱정들을 함께 씻어 내린다. 예민한 도시 여자 행세는 멈추기로 한다. 나는 뻥 뚫린 논 한가운데, 발리에 있으니까. 내키지 않을 땐 언제라도 블라인드를 치면 되니까. 나는 잊지 못할 거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은 채로 자유롭게 샤워하고 노래를 부르고 이를 닦던 시간을. 초승달 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던 그 밤하늘을. 온갖 걱정을 떨치고 얻은 나만의 작은 자유를.


* 영화 <원데이>의 엠마와 덱스터의 밤수영은 벗어 놓은 옷가지를 몽땅 도둑맞으며 끝난다. 자유롭게 즐기되 언제나 조심은 해야 할 것.


© Yoonhye Jeon




이 에피소드는 뜨갈랄랑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몇 에피소드를 생략하다가 순서가 조금 엉켰습니다. 배너를 따라가면 차례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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