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뭐길래

우붓 인생샷 명소 뜨갈랄랑

by 전윤혜


니콜라스는 왜 발리에 오고 싶었을까? 얼마 전 발리를 다녀간 친구들이 ‘그렇게 좋았다’는 거다. 니콜라스 눈에도 정글 같은 계단식 논에서 찍은 친구들의 사진과 스쿠터를 타고 논두렁을 달리는 영상이 ‘그렇게 좋아 보였나’ 보다. 그들은 우붓에 오래 머물렀고 자연히 우리도 오래 머물 것이다.


고대하던 뜨갈랄랑Tegalalang에 먼저 들린다.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뜨갈랄랑은 우붓 중심가에서도 북쪽으로 20분 정도 스쿠터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방향도 올라가지만 고도도 올라간다. 우붓의 큰 도로는 대개가 남북 방향인데, 북쪽의 바투르Batur 산으로부터 몇몇 골짜기를 따라 완만히 내려오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왕복 2차선인 도로 주변은 주로 논이나 숲이고, 이따금 예술품을 파는 상점들이 나온다. 나무 공예, 그림부터 램프, 가구 등을 판다. 날은 흐리지만 바람이 상쾌하고 점점 자연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 Yoonhye Jeon


좁은 계곡에 빡빡하게 일군 논 사이로 하늘 높이 자란 야자수들이 하나둘 보인다. 입구엔 비건 식당. 다 왔단 뜻이다. 겨울이라 그런지 추수가 끝나 논은 조금 메마르다. 날이 흐리기도 하고. 스쿠터를 대고 울타리에 기대 잠시 감상한다. 니콜라스를 보다 문득 든 생각. 아, 프랑스엔 논이 없구나. 이미 숙소에서 ‘논’이라는 인생 최초의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계단식 논은 한 단계 더 이국적 향취가 묻어나는 장소일 거다. 아마 그래서 친구의 사진이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일 수도. (필리핀 섬의 논은 자급자족을 위한 경작지 정도의 느낌이었다.)


도로가로 상점과 레스토랑이 꽤 길게 이어진다. 논 쪽 언덕으로는 경치를 볼 수 있는 레스토랑들이 저마다 발코니를 내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린다. I ♥ BALI 나 나무로 엮은 둥지 같은 포토 스폿은 필수, 마사지 체어가 있는 곳도 있다. 논에 내려가려면 레스토랑 사이사이의 길들을 잘 살펴보아야 하는데, 편하고 가까운 길은 돈을 얼마간 내야 하기도 한다. 레스토랑 음식들은 현지 가격의 몇 배쯤 되어서 고민하다 저렴해 보이는 가장 아랫집까지 내려가 나시고랭과 미고랭을 시킨다. 끄억끄억, 아래층에서 손님들이 야자나무에 묶은 그네를 탄다. 가련하게 흔들리는 나무들.


레스토랑에서. © Yoonhye Jeo


논 입구를 찾아 기념품 집들을 주욱 지난다. 이참에 니콜라스가 엄마와 친구들을 위한 팔찌를 사고 싶다며 둘러본다. 이 모양은 별로, 가격이 너무 비싸네, 이것저것 내가 참견하는 바람에 시간은 점점 흐르고, 들어가는 상점 수가 늘어난다. 결국 못 참은 그가 폭발하고 만다.


“동그란 것도 별로고 네모난 것도 별로고, 이래서 별로 저래서 별로.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이러다 우리 논은 언제 갈 거야?”


나도 모르겠다. 그저 니콜라스가 고른 검은 염주 같은 팔찌보다, 그걸 2달러를 넘게 주고 사야 한다는 것보다, 조금만 더 둘러보면 만족할 만한 선물들을 고를 것만 같았다. 항상 더 좋은 것이 있을 거란 믿음 때문에 무언갈 할 때 곤혹인 나는 이렇게 이것저것 따지느라 특히 뭘 사는 데 오래 걸린다.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기사를 쓰고 책을 만들었는지.) 니콜라스는 몇 차례 겪은 탓에 결과를 안다. 결국은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어서 안 살 거고, 안 사면 또 ‘샀어야 했는데...’ 후회할 거란 걸. 그래서 더 화가 난 거다. 엘 니도에서 지나친 레드 호스 티셔츠가 그렇고, 마닐라에서 사지 않은 동전 지갑이 그랬다. 선물은 필요한 거니까 작정하고 사기로 한 건데, 니콜라스 입장에서는 뭐가 이렇게 까탈스럽냐는 거다. 관광지 한가운데에서 기념품에 무슨 가격이고 합리를 따지는 거야. 기회는 놓치면 지나가는 거야.


“좋은 걸 찾으려고 그랬어. 선물은 예쁜 걸 찾아서 마음에 들어할 만한 걸 해야 하는 거잖아.”


“대체 그럼 얼마에 뭘 사야 한단 거야? 내가 예뻐서 주면 그 마음이 고마운 거지, 그게 안 예쁘다고 아무도 비난하지 않아. 왜 이 좋은 곳에 와서 우리 이까짓 기념품 때문에 시간 다 보내고 기분 상해야 하는 거야?”


“내겐 기념품은 이까짓 게 아니야. 받는 사람이 ‘좋아하겠지?’하며 고르는 마음, 주는 순간 즐거울 마음도 함께 사는 거야.”


성격 차이다. 빨리 살 수 있으니 지나가는 길에 들린 그와 안 예쁜 걸 살 순 없는 나.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팔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도저히 이 풍경이 눈에 담기지 않을 것 같다. 이 더위에 이런 마음으로 같이 다녀봤자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니콜라스에게 더 둘러볼 테니 혼자 가라고 한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혼자 가란 말에 니콜라스는 기분이 상해 돌아서고 만다. 나도 흥,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뜨갈랄랑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기념품 집집마다 들어가 팔찌를 본다. 오기가 생긴다. ‘내가 분명히 더 좋은 가격에 누가 봐도 예쁜 팔찌로 찾고 만다.’ 세 번째 집에서 독특한 가죽 팔찌를 발견한다. 나름 히피스럽고 마음에 든다. 몇 가지 다른 팔찌와 끼워 12개 사는 걸로 후려쳐 60,000루피아로 딜한다. 니콜라스와 커플로 차면 되겠다. 검은색이 잘 어울리겠네, 그제야 아차, 니콜라스 유심이 없는데. 어디로 간 걸까.... 길가 울타리에 기대 멀리 그네 타는 사람들을 뻔히 바라보다 그가 간 길을 따라가 본다. 멀리서 되돌아오는 그가 보인다. 영화처럼, 차와 스쿠터와 사람이 붐비는 도로 가운데서.


“나 처음에는 화가 나서 논 깊숙한 곳까지 혼자 들어갔어. 그런데 하나도 즐겁지 않더라. 예쁜 풍경을 나타날 때마다 네가 있으면 좋아할 텐데, 같이 볼 텐데, 네 생각이 자꾸 나서 풍경이 하나도 아름답지 않았어. 그래서 다시 왔어. 미안해. 같이 가자. 내가 성급하게 화낸 것 같아.”


“니코, 미안해할 필요 없어. 다 내가 나만 생각해서 일어난 일이야. 여기 이거, 팔찌. 네가 떠나자마자 눈에 들어왔어. 나도 이거 사면서 네 생각, 너라면 이거 좋아할 텐데, 같이 끼면 좋겠다 계속 생각이 들더라. 네 생각이 많이 났어. 미안해. 네 성격 알면서도 난 아직도 너무 이기적이게만 행동하고 있었어.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


니콜라스 가이드의 정글 탐험. © Yoonhye Jeon


괜찮다며, 서로 미안해하지 말자고 따뜻하게 안는다. 그 많은 계단을 되올라온 니콜라스의 등이 흥건하다. “고마워.” 그를 따라 구불구불 다시 내려간다. 알고 보니 니콜라스는 레스토랑 옆에 앉은 어린 프랑스 여자애들이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고 불평하는 모습에, 배가 고파 밥을 두 개나 시켜놓곤 다 먹지 못하는 내 행동에, 팔찌 때문에 시간이 늦어지는 다급함이 겹쳐 짜증이 난 것이었다. 작은 것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짜증이 제일 무서운 법. 나도 갑자기 트집을 잡는 니콜라스에 황당해 더 격앙했고. 논두렁을 걸으며, 널빤지 다리를 건너며, 한 걸음 한 걸음 오해를 푼다. ‘여기가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데야!’ ‘이 나뭇잎 봐 진짜 아름답지? 아까 혼자 보고선 꼭 같이 구경하고 싶었어.’ 고마운 니콜라스. 뜨갈랄랑 숨은 모습들을 소개하는 일일 가이드가 되어 준다.


오르락내리락 논 사이를 헤집다 거대한 그네를 마주한다. 마르고 긴 야자나무에 매인 그네. 뜨갈랄랑은 논만 유명한 게 아니라, 그 논과 나무숲을 배경으로 타는 ‘발리 스윙’이 인기가 많다. 얼마나 유명하냐면 발리 스윙을 위한 원피스까지 따로 판매할 정도다. 그래서 레스토랑에도 그네가 있었던 거다. 우린 그네 뒤 벤치에 앉아 좀 쉰다. “너도 탈래?” 묻는 니콜라스에게 괜찮다며,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마침 인도 청년이 타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번 미는구나. 뒤따라오던 가족들도 더워서 벤치 옆에 앉는다. 스윙 직원(이랄까 그네를 밀어주는 사람이랄까)이 탈 거냐고 묻는다.


“하우 머치 이즈 댓?(How much is that, 얼마예요?)”


“투 헌드렛 따우전, 맴.(200,000루피아입니다.)”


투 헌드렛 따우전(약 17,000원)을 반복하는 아저씨에게 엄마는 “예아, 오케이.”하고 아이들을 태운다. 지친 모습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나 둘 셋 넷 다섯. 안 타도 될 것 같아. 다시 길을 나선다. 질척한 두렁에 발이 빠지기도 하고, 폐업한 스윙집에 막혀 길을 잃기도 하다 논 중턱에서 작은 레스토랑을 만난다. 까만 강아지가 재롱을 부리는 곳. 테라스에서 레몬맛 빈땅을 딴다. 서로 팔찌를 채워 준다. 간간이 ‘꺄-’ 그네 타는 사람들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리고 논 곳곳에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보성 차밭 같은 진짜 경작지의 느낌을 기대했는데 것보다는 테마 파크에 온 기분이다. 어쩌면,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논을 관리하는 진짜 테마 파크일지도.


© Yoonhye Jeon


“윤혜. 조금 이상한 게, 여긴 분명 논인데 왜 쌀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지 궁금해. 기념품 집에도 그런 게 없고. 프랑스엔 프로방스가 라벤더 밭으로 유명하거든. 가면 라벤더가 어떻게 자라는지 구경하고, 샵엔 진짜 라벤더 제품들을 팔고. 여긴 논인 줄 알고 왔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못 봤네. 다들 그네를 타러 오는 것 같아.”


니콜라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보성을 떠올린 것처럼 그도 프로방스를 떠올렸나 보다. 아니, 니콜라스가 조금 더 순수한 것 같다. 어떤 길목에서 전통 모자와 바구니를 든 할머니가 “한번 들어보라.”며 권할 때도 진짜 순수한 농부 할머니인 줄 알고 즐겁게 들고 쓰고 하더니 돈을 달라는 말에 “미리 말씀하셨어야죠! 나빠요!” 하면서 모종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하긴, 빈땅 티셔츠, 니트 비키니, 팔찌, 라탄 가방, 야한 병따개...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관광지임에 어쩌면 순수한 쓰임새를 논하는 우리가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뜨갈랄랑의 추억. 귀여운 강아지와 니.. 니콜라스. © Yoonhye Jeon


우리가 향하는 길이 아마도 인기 많은 입구인가 보다. 배경이 좋은 목이겠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 찍기를 기다린다. 반대편에선 인생샷을 위해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펄럭 펄럭 그네를 탄다. 또 다른 전통 모자 할머니를 만난다. 우린 사람 덜한 꼭대기에 올라가 논보다 사람을 구경한다. 한 가족이 돌아가며 오래 사진 찍자 뒤에 선 유튜버들이 “저기 좀 나와 주세요.” 하더니 자리 잡고 앉아 유튜브를 시작한다. 드론을 올리고 한참을 사진과 영상을 찍는다. 뒷모습 찰칵, 사선으로 내린 시선 찰칵, 풀메이크업 즉 허리까지 오는 금발, 속눈썹, 입술선 넘어 그린 도톰한 누드 립 찰칵. 계단식 논에 긴 휴양 원피스를 입고 온 그녀를 모두가 지켜본다.


그만, 그만. 사진이 뭐길래. 사람들은 풍경을 보기 위해 여기에 왔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 왔을까. 과연 풍경을 보기 위해 그네를 탈까, 사진을 찍기 위해 그네를 탈까. 좋은 풍경을 보아서 기쁠까 사진이 잘 나와서 기쁠까. 물론 사람마다 사진에 대한 목적도 다르고 찍는 방법도 다르고 담는 피사체도 다를 것이다. 우리도 사진 덕에 이곳까지 왔고 나도 아름다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러나 각자의 사진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사진일까.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가파른 계곡 계곡 논을 일구어 온, 태초 생존 투쟁의 흔적 뜨갈랄랑. 더 이상 식량에 구애받지 않는 이 시대, 이곳은 사진이라는 현대적 생존 방식을 덧입었다. 우붓이 예나 지금이나 살아남은 이유. 그러나 적어도 우리에게 뜨갈랄랑은 남의 멋진 사진을 보고 찾아와 남이 멋진 사진 찍으려는 모습을 구경하던 곳으로나 기억될 것이다. 풍경과 팔찌는 덤.


멋진 풍경이 있으니 멋진 사진이 나올 테고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기도.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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