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사 두아 비치의 프랑스인과 한국인

두런두런 발리에서부터 니스, 태안까지

by 전윤혜

꾸따에서 이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몇 이야기를 생략하고 넘어갔는데, 그러자니 또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이 아쉬워서 늦게나마 써 올립니다. 배너를 따라가면 시간 순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꾸따에 다녀온 뒤 발리 비치에 대한 감흥이 사라졌다. 첫 비치에서 아줌마와 대판 싸우고 나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호텔 주인장이 누사 두아Nusa Dua 비치에 가 보라며 거긴 조금 다를 거라고 한다. 오늘은 체크아웃을 하는 날. 어떡할까? 우붓엔 좀 늦게 가지 뭐. 짐을 맡겨 놓고 비치 타월을 챙겨 스쿠터에 오른다.


© Yoonhye Jeon


누사 두아 비치는 클럽메드, 소피텔, 하얏트 등 큰 리조트들이 조금씩 나눠 가진 비치다. 바다로 바로 가려면 거대한 차단기가 있는 입구를 거쳐야 해서 언뜻 투숙객만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구든 갈 수 있다. 입구 직원은 비치에 간다고 하니 웃으며 차단기를 내려주고 위치까지 친절히 알려 준다. 깨끗하고 넓은 도로에 야자나무들이 잘 가꿔져 있다. 골프장과 곳곳의 분수, 큰 리조트 단지 사이 어디로 갈지는 자기 마음이다. 우리는 그랜드 하얏트 리조트 앞에 도착한다. 2,000루피아(약 170원)의 주차비를 내고 스쿠터를 세운다.


앞으로 나간 모래섬 덕에 작은 만과 같은 모습. 분위기가 조금 더 가족적이고 아늑하다. 아, 행상이 없어서 그렇구나. 모래사장과 리조트는 좁고 긴 잔디 턱으로 분리돼 있다. 리조트 투숙객들은(혹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이들은) 고급스러운 베이지색 파라솔과 라탄 선베드에서 쉴 수 있다. 그 앞으론 으레 그렇듯, 커튼 달린 허니문 식탁이 몇 개 놓여 있다.


© Nicolas Riou


새파란 하늘. 7월 한겨울 발리. 바람이 거세고 물은 푸르고 차다. 적도 나라의 바닷물이 차갑다니. 기온은 내내 온화하지만 겨울엔 인도양에서 흘러온 한류로 인해 수온이 내려간다고 한다. 물론 동해보다야 따뜻하다마는 필리핀이나 태국에 비하면 수온이 한참 낮다. 늦여름 시드니의 느낌. 해나 쬐겠다는 니콜라스를 뒤로 하고 바다로 달려간다. 첨벙첨벙 들어가려 했지만 발을 담그자마자 쭈뼛 닭살이 돋는다. 목욕탕 냉탕 들어갈 때처럼 살금살금 조금씩 내려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니콜라스가 웃는다.


한 가족이 서핑 레슨을 받는다. 나이 지긋한 아빠는 서핑을 처음 하는지 연신 물에 빠진다. 하하 웃던 10대 아들 딸들이 앞다투어 보드 위에서 일어선다. 아들이 해변 끝까지 보드를 타고 오자 다들 박수를 쳐 준다. “웰 던!(Well done, 잘했어!)” 물이 얕아서 사람들이 멀리까지 나간다. 나는 물 가는 대로 그저 둥둥. 물가 파도는 거의 없다시피 찰싹찰싹, 진짜 파도는 저만치 뒤에 있다. 양옆 모래톱 근처에서부터 육안으로 느껴질 정도의 큰 파도가 인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며 만드는 파도. 저렇게 거대한 걸 보니 바다 밑에 무언가 있나 보다.


한참을 헤엄치다 보니 뒤쪽의 파도는 점점 더 거세어지고 물이 급격하게 빠지기 시작한다. 썰물이다. 우리는 바다 쪽으로 조금 당겨 앉아 파도를 본다.


© Nicolas Riou


“윤혜. 태평양이 참 멋있다. 거대한 바다... 난 평생을 지중해에서 살았잖아. 바다라면 칸Cannes이나 니스Nice 해변 정도밖에 몰랐어. 사람들이 남프랑스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사실 전통적인 여름 휴양지일 뿐 해변은 굉장히 작거든. 백사장도 아니고, 검은 자갈로 이뤄진 그 좁은 땅에 파라솔이며 비치타월이며 사람들이 바글바글. 당연히 깨끗하지도 않고. 그래서인지 그 전까진 딱히 바닷가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 호주에 오고서야 깨달았지. 대양(大洋, ocean)이 이토록 멋지다는 걸...”


프랑스 사람들이 여름이면 내려간다는 아름다운 남프랑스. 칸과 니스, 모나코를 따라 늘어선 희고 반짝이는 호텔. 해를 즐기는 사람들과 야자수와 관목이 어우러진, 한 번쯤 꿈꿔오던 풍경들. 멋지게만 느꼈던 ‘지중해’란 말이 사는 사람에겐 답답한 구석이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여름마다 동해 바다로 가던 나는 딱히 그런 기분을 못 느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태평양의 은혜를 입고 있구나. 일본에 막혀 있다 하더라도 어느 간은 뚫린 것이니. 그럼에도 호주에 왔을 때 거대한 비치들을 보고, 끝없는 파도들을 보고 대양의 스케일에 어찌나 놀랐던지. 잔잔한 지중해 사람이 와서 느낄 거대함은 좀 더 다르긴 하겠구나.


“내가 바다와 가깝지 않았던 이유 또 하나는 물이 깨끗하지 않아서야. 지중해는 바닷물이 지브롤터 해협으로만 들어오니까 거의 큰 호수나 다름없어. 그런데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지중해에 면해 있니. 그 모든 나라들에서 내려올 하수들을 생각해 봐. 아무리 하수 처리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다 거를 순 없거든. 결국 사람이 쓰는 물은 어디론가 가야 하는 건데... 니스 칸 시민들이 쓴 물은 다 어디로 흘러들어 갈까? 해변으로부터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 긴 하수도관이 바다 한가운데로 그 물들을 내보내. 생각해 봐.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바다 지척이 온갖 하수란 걸. 사람 똥이나 오줌은 물고기들이 먹을 수 있어. 자연적으로 정화가 되겠지. 그런데 나는 면봉, 빨대, 화학물질... 이런 것들도 나는 걱정되더라고. 어찌 되었든 영양이 과하니 해조류도 많이 자라고. 모든 면으로 꽉 찬 바다야. 그래서 그냥 가지 않았어.”


“그래도 도시에서 쓰는 정도는 다 정화될 것 같은데?” 나는 지극히 한국적인 마인드에 입각해 대답한다.


“니코, 난 이해가 잘 안 돼. 한국은 상수, 빗물부터 하수 종말 처리까지 정화 시스템이 참 잘 돼 있거든. 아무래도 단기간에 도시가 커지거나 새 도시가 생겨났으니 상하수도도 새로 닦고, 시스템도 새로 짜고, 처리장도 프랑스보다는 쉽게 확장할 수 있었을 거야. 우리나라는 공업이 급격하게 발전한 케이스잖아. 그 전에, 1960년대 우리 엄마가 살던 시골에선 하수는 그냥 돼지를 주고 그랬대. 그런데 사람들이 도시로 오고 새로 공장들이 생기면서 도시마다 하수 처리장을 새로 만든 거지. 상수도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안전사고에 민감한 것도 있어. 엄마가 내 동생을 임신했던 1991년, 대구 옆 큰 강에 페놀이 유출된 일이 있었어. 온 강이 마비가 되고, 임산부들은 그때 기형아 검사를 받고 난리도 아니었대. 그 이후로 우린 더 단단히 신경 쓴 거야. 한 사건이 크게 터진 다음에 다시 그 일이 일어난다거나, 대처가 미흡하다면 엄청난 규탄을 받거든. 작은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고, 예방하고.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너한테 한국 이야기를 들을수록 한국이 점점 더 궁금해져. 부럽기도 하고. 프랑스 시스템은 조금 올드하거든. 마인드도 그렇고. 이미 만들어진지 너무나 오래된 파이프들을 쓰는데도 문제가 발견된다고 해서 즉시 고치지 않아. 불편하지 않으면 그냥 살거나, 혹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바꾸거나. 장점도 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엔 단점이 많지. 바다도 그래. 평생 살면서 바다가 깨끗해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어. 그래서 바다에 점점 안 갔던 거야. 그런데 태평양은 정말 크잖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지도 않고. 내가 진짜 바다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투명한 바닷물.”


외국에서 살다 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말 편리하고 살기 좋은 나라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며. 나 역시 니콜라스와 대화할 때마다 우리나라가 그 단기간에 얼마나 많은 질적 성장을 이룩했는지 깨닫는다. 재해가 일어나면 빠른 복구에 굉장한 신경을 쓰고, 일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나서서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태안에서 유조선 기름이 유출됐을 때 5시간을 버스 타고 가서 돌의 기름을 닦아 냈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야, 그땐 우리 모두가 그랬어. 유례 없는 국민성이다. ‘빨리빨리’ ‘완벽하게’ ‘안전하게’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함께’. 하고픈 대로 천천히 흘러가는 프랑스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을 비교해 볼 때 때론 숨 막히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기도 하다.


Nusa Dua beach. © Yoonhye Jeon


이어 선진국이 선도해야 할 환경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그새 바닷물이 성큼 뒤로 물러서 있다. 우리는 파도가 치는 곳까지 나가보기로 한다. 물의 속도는 생각보다 많이 빨라서 조금만 서 있어도 파도가 쓸어온 모래에 발이 덮여 버린다. 우린 쪼그려 앉아 투명한 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라본다. 물은 뒤로 빠지지 않고 옆으로(비치가 남북으로 뻗어 있으니, 곧 북쪽으로) 흐른다. 인도양에서 올라온다는 해류의 방향이다. 너희도 태평양으로 가고 싶구나. 바다 가운데 바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파도가 치던 그 자리, 푸른 물아래 거대한 바위가 숨어 있었다. 끝없는 우리의 이야깃거리처럼.


“니코, 너는 네가 진짜 바다에 ‘왔구나’, 느낀다 했지. 나는 너랑 있으면 내가 진짜 바다를 ‘알아가는구나’, 느낌이 들어. 오늘의 바다는 참 차갑고 푸르고 빠르다. 우린 그런 바다에 앉아 니스도 다녀오고 태안도 다녀왔네.”


유속이 너무 빨라 결국 파도 앞까지 나가진 못한다. 먼발치서 바라보다 다시 찰박찰박, 모래사장으로 돌아온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만든 물길이 어느새 지그재그를 그려 놓았다. 지는 해가 반짝반짝 물길마다 빛을 나누어 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 차갑고 푸르고 빠른 발리의 바다를 바라본다. 오래도록.


숨어 있던 또 하나의 해안선. © Yoonhye Jeon




우붓 에피소드로 이어집니다. (몇 에피소드를 생략하다가 순서가 조금 엉켰습니다. 배너를 따라가면 차례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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