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공항 셔틀

파란만장한 푸껫 입성 신고식

by 전윤혜

니콜라스 여권의 전자칩은 다행히 태국 입국까지 버텨 주었다. 여권보다 왕복 항공권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였는데, 태국의 입출국 심사는 프랑스인에게 유독 까다롭기 때문이다. ‘30일 이내에 출국하는 것이 확실해야만’ 입국을 허가하는 탓에 우리는 결국 캄보디아의 숙소 예약증과 앞으로 여행 계획을 하나하나 이야기한 다음에야 겨우 수속을 끝낸다. 그의 말론 프랑스의 범죄자들이 태국에 입국한 뒤로 잠적하거나 불온한 사업을 많이 했던 탓이란다.


도착 시각 밤 9시 30분. 늦은 시간이라 공항 셔틀이 있는 숙소로 예약해 놓았다. 출국하기 전 숙소에 메시지로 도착 정보를 남겼는데 지금껏 답이 없다. 불안함을 애써 누른다. 설마, 셔틀이 없으면서 홈페이지에 Free Airport Shuttle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놓았겠어?


그러나 공항 문밖을 나설 때까지 우리 이름을 든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셔틀 타고 들어가 푹 쉬고 다음날 유심 개통도 환전도 할 생각이었는데, 숙소로 전화할 방도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공항에서 현지 가격보다 6배나 비싼 외국인용 유심을 산다. 숙소에 전화를 걸어 셔틀을 찾을 수 없다고 설명하는데 그냥 끊길래 다시 걸었더니 아예 받지 않는다. 아마도 직원이 영어를 못하는 모양이다. 다시 원점. 왜 유심을 샀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랩을 부른다. 푸껫 섬 북서쪽의 공항에서 동남쪽 구시가로 향하는 길, 왕복 4차선 도로가 시원하고 ‘깨끗하게’ 뚫려 있다.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팔라완 섬이야 말할 것도 없고, 좁고 크랙 많던 발리의 도로를 달리다 이곳을 보니 나름의 경제 대국 태국에 온 실감이 난다. 우리 사정을 들은 기사님은 자기가 다 미안하다며,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자기 번호를 알려 준다. 고맙습니다. 메일로 영수증을 부탁한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단출한 모텔급이다. 리셉션엔 직원이 두 명 있다. 예약 화면을 보여주자 직원이 체크인 종이를 내민다. 니콜라스가 인적 사항을 적으니 직원이 309호 키를 내어 주고 와이파이 쓰는 법을 알려 준다. 체크인을 한 거다. 밤 10시 40분. 니콜라스가 운을 뗀다.


“공항 셔틀이 있다고 해서 이곳을 예약했는데 오지 않았어요. 한참을 기다리다가 그랩을 타고 왔는데, 비용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저희는 공항 셔틀 서비스가 없거든요.”


처음 듣는다는 표정의 직원. 숙소를 예약한 애플리케이션을 켜 ‘프리 셔틀’이라 쓰인 것을 보여 주고, 미리 도착 정보를 알려준 애플리케이션 메시지 기록, 홈페이지의 서비스 제공 목록을 보여 줘도 번번이 “Sorry, No shuttle.”만이 돌아온다. 쩔쩔매는 직원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영어를 못하기도 하고, 셔틀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도 하고, 숙소 예약 애플리케이션 메시지 기능도 모르며, 제일 황당한 것은 자신들 숙소의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거다. 그녀도 우리가 차례로 프리 셔틀이 쓰인 메인 페이지들을 보여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자기들도 미안하다며, 구글 번역기로 겨우겨우 대답을 이어 가다 결국 자기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선 매니저에게 전화를 건다.


숙박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국인 손님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직원들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간단한 영어 의사소통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아니 그게 안 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애플리케이션은 사용할 줄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녀는 스피커 폰으로 매니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우리 캡처 화면을 카메라로 찍어 보낸다. 돌아온 답변은 “No.” 자기들은 원래 셔틀 서비스가 없었으니 우리에게 책임을 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고 문제는 애플리케이션과 우리 사이에 벌어진 것이니, 고객센터에 직접 문의해 해결하라는 것이다. 홈페이지 메인의 프리 셔틀을 이야기하니 그런 적이 없다며. 안하무인인 매니저의 태도에 조곤조곤 예의 바르게 응하는 니콜라스가 답답해진다. 밤 11시 30분. 도착한 지 1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여전히 리셉션에 서 있다.


Phuntaral hostel.jpg
© Yoonhye Jeon

강경한 매니저와 반대로 직원들은 충분히 우리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잘못 써 놓았든, 이전에 있던 셔틀 서비스를 없애고 페이지를 수정하지 않았든, 어쨌거나 문제의 출발점은 숙소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원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제가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요.” 그렇다고 속절없이 시간만 보낼 순 없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일단 체크인부터 해야겠어요. 내일 매니저가 오면 그때 얼굴 보고 직접 이야기할게요.”


“매니저님은 내일 출근 안 하세요. 모레도 그다음 날도 올지 안 올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매니저에게 직접 전화하기로 한다. 어쩌면 직원과 매니저 사이 전달에 오해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오해가 없으려고, 아니 확실히 하려고 모든 상황을 낱낱이 설명한다. 이륙 전 여러 번 메시지를 남겼으나 답이 없었고, 밤 9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해 30분을 기다렸다, 그 사이 전화를 두 번이나 거부당했으며, 택시를 불러오니 10시 30분이었고, 이유를 묻고 정당하게 환불을 요구하려는데 밤 11시 40분인 지금 그것도 못하고 방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 매니저인 당신과 얘기하려고 하니 아무도 당신이 언제 올지 모른다. 그게 우리가 환불을 요구했기 때문인지? 매니저는 사정을 다 듣고서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애플리케이션 고객센터와 해결하라고 하고 통화를 끊는다. 잠시 후 숙박 애플리케이션 알람이 울린다. 매니저가 우리가 도착 정보를 알린 메시지를 그제야 발견하고 답장을 한 거다.


the taxi fee isnt include in the hotel price. you have to pay additional charge by yourself. if you cant understand that you just cancel this booking. it not have any charge.

택시 요금은 호텔 가격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냥 예약을 취소하세요. 수수료는 없을 겁니다.


우리의 요지는 ‘너희가 셔틀이 있다고 했는데 왜 안 왔니? 우리가 대신 비용을 지불했으니 환불해 달라.’고 매니저의 요지는 ‘택시비는 호텔 가격에 포함된 게 아니다. 그걸 왜 우리에게 청구하느냐?’ 즉 택시를 타게 된 ‘원인’인 셔틀 얘기(=자신의 잘못)는 쏙 빼고, 시키지도 않은 택시를 왜 탔냐는 ‘결과’(=너희의 잘못)를 힐난한다. 자신의 잘못을 우리의 잘못으로 바꾸려는 거다. 역시 동남아의 모든 문제엔 모르쇠가 대장인 걸까. 모르쇠에게 용쓰는 사람만이 맥이 빠지고... 한 숙소의 담당하는 매니저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임감 없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 자정이 지난 이 시간에 숙소를 취소하면 어디 가서 자란 말인지? 몇 분 후 들어간 홈페이지에선 ‘free shuttle’ 아이콘이 사라져 있었다. 그럴 줄 알고 홈페이지 들어가는 동영상도 찍고 숙박 애플리케이션 캡처까지 다 해 놓았다.


새벽 12시 30분. 고객센터와 해결하겠다고 결론내고 체크인을 마저 하려니 숙박비를 현금으로 모두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단다. 모든 숙박은 체크아웃 계산이 기본인데, 무슨 말이지? 매니저가 우리가 숙박비를 안 내고 갈까 봐 현금 전액 지불 전엔 체크인을 금지시켰다는데. 밤에 도착해 바로 숙소로 와 이지경까지 오는 바람에 현금이 없다. ATM도 없는 이곳에서 어디서 현금을 구하나? 처음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쇠까지 다 주었으면서, 왜 지금은 안 된다는 거냐 물으니 다시 “제가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요.”


어디서 숙소를 구하냐는 체념에 여기서 체크인하기로 했는데, 돈 떼먹는 사기꾼 취급까지 당하자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다. 바로 랩탑을 켜고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낸다. 아까 알려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치고서. 우리의 기억이 정확하고 캡처해 놓은 것들이 100% 숙소 잘못이라는 것을 알려주기에 전혀 문제 될 게 없는데, 고객센터에 메일을 보내는 그 행위가 꼭 진상 고객이 된 것만 같다. 숙소 바깥 의자에 앉아 달려드는 모기에 종아리를 벅벅 긁는다. 태국에서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 Yoonhye Jeon

메일을 보내고 떠나는 우리에게 직원들이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우린 어디로 가야 할까? 자정이 지나 숙박 애플리케이션은 지금 당장이 아닌 돌아오는 밤 예약만 가능하다. 무작정 구글에 hostel을 치고 깜깜한 밤거리를 방황한다. 시간이 늦어 많은 곳이 닫았다. 새벽 1시 40분. 도저히 더 헤매긴 힘들다. 자정 이후엔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표시를 보았음에도 실례를 무릅쓰고 숙소 문을 두드린다. 눈을 비비며 나온 아르바이트생에게 거듭 감사 인사를 전한다.


침대에 누우니 새벽 2시다. 우울함이 밀려든다. 어떻게 이런 서비스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숙박업에, 그것도 푸껫 한가운데에서 매니저로 일할 수 있는 거지? 것보다 왜 자꾸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결론은 그냥 포기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동남아니까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관광지에 와서 돈도 많이 안 쓰는 주제에 자꾸 옳은 일 운운하니까 짜증 나겠지. 무엇이 옳은 일일까?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굴어야 하는 걸까?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나를 니콜라스가 다독인다.


“그래도 하나 알았잖아. 앞으로 부당한 일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오늘은 우리가 바보 같이 패를 먼저 보여서 그래.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정직하고 순수하게 바로 물어본 바람에 그들이 우위를 점한 거야. 체크인하기 전이라면, 환불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니까 그 사람들은 끝까지 잡아떼면 그만이거든. 어차피 우리는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고, 환불해 주는 거나 우리를 안 받는 거나 같은 비용인 셈이지. 그런데 체크아웃할 때는 모른 척할 수 없잖아. 그들도 숙박비를 받아야 하니까. 우리야말로 고객센터랑 해결하겠다 하고 떠나면 그만이거든. 그걸 생각 못했어.”


먼저 패를 내는 게 지는 거다. 때를 보다 적당할 때 터뜨려라. 다시 말해 요청할 일이 있다면, 상대방이 요청하게 될 순간을 기다리라. 각박한 여행에서 진짜 세상 사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내겐 가장 중요한 것은 처세와 타이밍이 좌우하는 각박한 세상을 ‘언제나 옳은 것이 옳은’ 세상으로 천천히 바꾸어 가는 것이다.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조금씩, 조금씩.


“그런데 니코, 나중에 말한다고 해서 옳고 그름은 변하지 않아. 어쩌면 그 사람들은 우리를 더욱 사기꾼으로 몰아갈지도 모르지. 중요한 건, 우린 오늘 옳은 일을 한 거야. 무엇이 잘못인지 일깨워 주는 거.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과장하지 않는 것, 고객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 우리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우리 같은 집요한 고객도 필요하고,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겠지. 이 경험으로 조금씩 그들도 나아질 거야. 오늘 우리는 당했지만 언젠간 고객센터에서 우리 대신 페널티를 줄 거고. 그게 제일 기대된다. 잘 자!”



* 숙박 애플리케이션과 통화 후 우리는 택시비와 그날 숙박비 일부를 적립금 형식으로 환불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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