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연금술사, 진짜 예쁜 쓰레기를 만들 거야
밤이 언제 흉흉했냐는 듯 하늘에 해가 반짝인다. 파란 하늘엔 솜을 떼어낸 것 같은 구름이 한가득. 스쿠터를 빌려 뗀석기처럼 길쭉하게 생긴 푸껫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오늘은 남동쪽의 구시가에 묵었으니 내일은 최남단 야누이Yanui, 모레는 푸껫의 기본 빠똥Patong 비치가 있는 중서부에 숙소를 구했다. ‘구시가’하면 떠올릴 유명한 파스텔톤 건물 맞은편 렌트 샵에서 스쿠터를 빌린다. 하루 200밧(약 7,500원).
푸껫 구시가는 우리나라 90년대 한참 유행하던 근교의 작은 관광 도시 같은 기분이다. 휑하게 넓은 도로에 두꺼운 느낌의 흰색 건물들, 낮은 상가엔 엄마 세대 의상실에 있었을 법한 마네킹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건물 전면을 덮은 간판들과 가지런하게 정렬된 엄청난 전깃줄들. 그 거대함이 이곳이 소비하는 도시임을 짐작케 한다. 화장실이 급한 니콜라스를 따라 들어간 오래된 호텔은 향수를 자극한다. 체리색 몰딩과 금색 기둥, 그 사이로 비치는 어항과 묵직한 테이블들. 너도나도 국내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던 80년대 말 90년대, 물 좋다는 곳에 들어선 잘 나가는 온천 호텔 건물 같은 느낌이랄까.
푸껫의 도로는 주로 해안선을 따라 나 있다. 특히나 이름난 비치가 몰려 있는 중서~남서쪽 해안가 중심으로. 동쪽 구시가에서 일몰로 유명하다는 최남단 프롬텝Promtep 곶까지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도로엔 야마하의 대형 스쿠터인 티맥스T-MAX가 여러 대 달린다. 다들 뒤에 여자 친구를 태운 걸 보니 이 동네 멋쟁이들에겐 티맥스가 유행인가 보다. 여행을 시작하고 대형 스쿠터를 처음 본 니콜라스는 곧 큰 모터바이크(500cc 이상)도 볼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을 가진다. 신이 한가득 난 그는 125cc짜리 형광 노랑 스쿠터 주제에 티맥스를 따라잡으려 안달이다. 고개 넘어 도착한 숙소 이름은 야누이 하이드어웨이Yanui Hideaway. ‘은신처’란 이름답게 산속 한적한 곳, 소가 뛰노는 풀밭 옆 옥빛 하늘빛 덧칠한 나무집에는 오후 4시 전엔 전기도 와이파이도 없다. 오랜만에 인터넷 없는 한가로운 시간들을 보낸다.
야누이 비치는 푸껫에서 가장 작은 비치다. 푸껫의 3대 비치인 빠똥, 까론Caron, 까따Cata 비치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바로 위쪽의 조그만 나이한Nah Harn 비치에 가려서도 정말 빛을 못 보는 곳이다. 모랫길로 연결되는 조그만 바위산이 바다를 둘로 나누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인데. 위아래로는 튀어나온 곶이, 앞으로는 만Man 섬이 물살을 막아 바다가 잔잔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인지 어린이들과 스노클링 하러 많이 찾는다. 태국에서의 첫 수영. 물은 따뜻하고 몽글한 자갈이 밟힌다.
아기자기한 기분을 즐기던 찰나 떠다니는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전에 코에 빨대가 낀 바다거북 영상을 본 후로 빨대를 쓰지 않기로 한 나인데, 버젓이 바다에 둥둥 뜬 핑크색 빨대와 비닐봉지들을 보니 이 물을 즐길 기분이 사라진다. 우리는 물에서 놀기보다 미적미적 쓰레기를 걷는 데 열중한다.
“니코, 생각보다 바다가 더러워서 수영할 맛이 안 나.”
“나도 그래. 그런데 그럴 수밖에. 태국은 지금(7월)이 비수기잖아. 큰 비치는 워낙 유명하니까 비수기여도 근처 리조트나 관공서가 쓰레기를 수거할 가능성도... 미약하게나마 있겠지만, 여기는 아닐 것 같아. 바다에 입장료 내고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고용해서 쓰레기를 치우고 월급을 주겠어.”
그 말이 맞다. 누가 상을 주지도 않고, 이익을 볼 수도 없는 일이기에 선뜻 나설 수가 없겠지. 자원봉사도 하루 이틀이지, 마음으로 하는 덴 한계가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싶은 일으로 바꾸는 건 결국 이익일 텐데, 일절 손해만 나는 바다의 쓰레기들을 이익으로 바꾸는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그나저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환경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나 모르겠다. 물론 태생의 여린 마음도 한몫하겠지만 팔 할이 여행 때문이다. GDP가 낮은 나라들을 다니다 보면 한 번씩 뜬금없는 곳에 자리 잡은 오가닉 레스토랑들을 보게 된다. 테이크아웃도 꼭 유리병에 담아 주는 그런 곳들. 오는 사람 역시 작은 천가방 안에 자기 텀블러나 빨대를 들고 다닌다던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다. 왜 그럴까? 자꾸만 눈으로 보기 때문이겠지. 여행을 하다 보면, 멋지고 고마운 자연을 즐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로 비롯되는 일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넋 놓다가 너무나도 무심하게 그 자연이 더럽혀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방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바다에 뜨고 산에 묻힌 쓰레기들을 보며 혼자라도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겠지.
나도 필리핀에서 큰 경험을 했다. 팔라완 섬에서 혼자 수영할 때였다. 맑고 넓고 잔잔한 바다에서 혼자 수영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질 것 같지만 실제론 선크림이 만든 기름띠에 둥둥 둘러싸인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작은 유조선이나 다름없었던 나란 존재... 이후로 물에 들어가기 전엔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정말 필요할 때 아주 소량 바른다. 덕분에 기미를 조금 얻었지만 자연스러운 내 얼굴이 좋다.
니콜라스와 나는 빨대 안 쓰기, 선크림 덜 바르기, 일회용품 줄이기 같은 작은 노력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이고 취지가 좋다 하더라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내가 경험했다고 어떻게 바다에서 선크림을 쓰지 말라고 하겠는가? 자연보호는 경험으로부터,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거다. 마음이 필요한 일들을 ‘누구나 꾸준히’ 동참하고 싶게 만들 만한 동력은 무얼까? 결국 ‘이익’이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 다시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로 돌아온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맥주만큼 좋은 게 없지. 에잇, 물도 아껴야 하니 물 대신 맥주를 마셔야겠다!
프롬텝 곶 근처의 허름한 펍으로 들어선다. 얼기설기 들여놓은 중고 소파와 당구대, 칠하다 만 인테리어가 이채롭다. 동네 고양이들과 애교 많은 강아지들, 꼭꼭꼭꼬 우는 수탉까지 거두는 요상한 펍. 안에는 폴란드 인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술만 팔다가 이제는 레스토랑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단다. 호주로 이민 왔다가 잠시 들린 푸껫에 반해 눌러앉게 된 사장님은 그렇게 7년이 흘렀다며, 이렇게 하고픈 대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삶이 자유롭고 좋다고 한다. 사장님은 우리를 좋게 보셨는지, 배고픈 우리를 위해 자기 단골집 메뉴판을 가져다주고 스쿠터로 음식을 픽업해 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덕분에 한 병이 될 맥주는 두 병이 되고. 강아지들과 한참을 놀다 보니 일몰 시간이 가까워진다. 일어서는 우리에게 사장님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기에 이상히 여겼는데, 글쎄 잠시 후 우리 손에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려진 돌멩이를 꼭 쥐어주시는 것 아닌가. 우리에게서 사이좋은 물고기 한 쌍의 모습을 보았단다. 완성이 덜 됐지만 예쁘게 봐 달라며.
프롬텝 곶 언덕배기에 앉아 지는 해를 본다. 구름에 가린 해는 바다까지 내려앉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구름을 머금은 빛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7월 중순. 태국의 우기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어둠이 내려도 줄곧 자리에 앉아 바다를 본다. 할아버지가 준 돌멩이를 만지작만지작, 굴려 본다. 니콜라스가 말한다.
“그저 바다를 굴렀을 돌멩이가 이제는 아름다운 작품이 됐네.”
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설치 예술가 최정화의 작품들. 일상적인 소재, 때론 하찮게 여기던 작은 소재에서 형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 시장 플라스틱 바구니를 색칠하고 쌓아 올려 만든 <숲>, 플라스틱 용기들을 매단 아름다운 샹들리에 <연금술>. 이름 <연금술>의 의미는 그의 말마따나 “나의 작품에선 플라스틱이 보석이 되기 때문”이다. 헌 빨래판을 모아 만든 <늙은 꽃>은 또 어떻고. 허름한 것을 허름하지 않게 만드는 그의 아이디어와 방식을 사랑한다. 실제로 <연금술> 시리즈는 누구나 보아도 아름다울 객관적인 미를 만들어 냈다.
환경보호를 선뜻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함’이다. 물리적인 불편함은 물론, 환경보다 편리를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들추고 싶지 않은 데서 오는 심리적인 불편함도 포함한다. 나조차도 그런 걸. 쓰고 잊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면, 버려지는 쓰레기에 어떤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 그들을 동참하게 만들 수는 있겠다 싶다. 우리가 아름답기만 하고 별 실용성 없는 제품들을 쉬이 예쁜 쓰레기, 예쁜 쓰레기 부르지 않나. 나는 진짜 쓰레기로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거다. 어차피 함께 사는 세상 완벽한 예방은 없으니 처방이라도 아름답게 하는 것.
날 때부터 미술 하는 큰 재능은 없지만 나름대로 예술을 하며 살아왔고 내 꿈도 항상 예술적으로 사는 것이다.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그때그때 발견하는 아이디어들로, 기회들로, 경험들로 삶이 이렇게 이어져 왔다. 예기치 않게 시작한 우리의 여행도 삶에 대한 또 다른 아이디어를 던져준다. 다니다 보면 어느 날 오늘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고, 구체화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살고 싶은 마을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폴란드 할아버지가 그림 그리듯 나는 거기서 얻은 재료들로 뭔가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쓰레기로 만드는 작품. 이미 여러 이들이 생각한 방향이겠다만 감정에만 호소하는 실력 없는 작품을 만들거나 쓰레기를 키치하다고 포장 해석하게 하고 싶지 않다. 어떤 객관적인 수공手工이 깔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 최정화만큼 뛰어나지 못하고 바다 위에 최정화가 쓰던 바구니나 플라스틱들이 둥둥 떠 다니지는 않겠지만, 여러 곳을 보고 듣고 쓰는 만큼 쌓이는 나의 기억들이 연금술사가 되기에 충분하고 튼튼한 거름을 만들 테다. 앞으로의 꿈을 예술적인 삶을 사는 연금술사로 정해 본다. 아, 먼 훗날의 이야기다. 나 정말 추상의 극치구나. 그러나 시작은 나에게서 나오는 쓰레기를 줄이는 구체적인 행동으로부터. 자연보호라는 간단한 명제로부터.
존 노우드John Norwood라는 뉴욕의 아티스트가 이 간단한 명제를 간단하게 이야기해 줬다. “(쓰레기 수집) 중독자가 아닙니다. 이 쓰레기들이 매립지나 물로 들어가 물고기들을 질식시킬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