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건 당신 덕분이에요

푸껫 산골 작은 학교, 예스 스쿨

by 전윤혜


눈 비비고 일어난 내게 니콜라스가 오늘 꼭 가고 싶은 카페가 있다며, 네가 좋아할 것 같다며 가 보자고 재촉한다. 내가 늦잠을 자는 사이 그가 카페를 알아봤나 보다. 아침마다 꼭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오늘 숙소엔 조식이 없는 탓이다. 안개 낀 커다란 나이한 호수를 끼고돌아 산골짝을 넘는다. 푸르른 모습이 꼭 녹음진 충주의 호숫가 같다. 몇 채의 집을 지나 사람 없는 한적한 길을 올라간다. 이런 곳에 카페가 있다니. 니콜라스가 웬 운동장에 스쿠터를 댄다.


알고 보니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그 학교의 운영을 도우려 지은 카페였다. 정면의 자그만 흰색 단층 건물이 카페Yes Coffee, 그 왼편으론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학교Yes School. 자갈 깔린 운동장엔 커다란 나무가 우뚝 솟아 지키고, 배구 네트가 바람에 흔들린다. 귀여운 도라에몽 헬멧들이 벤치에 쌓여 있다. 아이들이 부모님 스쿠터 뒤에 타고 등교하는 모양이다. 교실은 두어 칸쯤 되어 보이고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초록색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 열린 문밖으로 아이들이 대답하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신발장에 드러누운 고양이는 가르릉가르릉 낮잠을 잔다. 가지런히 놓인 아이들의 신발들. 마음 한구석이 뭉근해진다. 눈을 들었더니 어머, 이거 태극기잖아. 나란히 걸린 태국, 미얀마, 한국, 미국 국기. 어떤 연유로 한국의 국기가 이곳에 걸리게 된 것일까?


ⓒ Yoonhye Jeon

카페도 어딘가 모르게 한국 느낌이 폴폴 난다. 선반에 가지런히 진열한 커피 원두하며, 커다란 벽그림,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페모카, 카라멜마끼아또... 메뉴판까지. 마치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 근처 커피집 같은 분위기랄까. 나름대로 멋을 내었지만 수더분한 카페. 뒤쪽 선반에 빨간 홍삼 박스를 놓고 파는 걸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임이 분명하다. 니콜라스는 어떻게 여길 알고 온 거지? 커피 마니아이자 설탕 중독자이기도 한 그는 오랜만에 카라멜마끼아또를 보고 미소를 감추지 못한다. 아침 식사 핑계를 대며 브라우니에 팬케이크까지 시킨다. 저기요... 저는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켰는데요. 그러거나 말거나 니콜라스는 500ml 맥주잔만큼 커다란 유리컵에 휘핑크림이 한가득 올려진 자태, 거기다 카라멜 시럽까지 휘휘 아낌없이 둘러쳐진 커피를 보고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으음. 이곳, 한국 카페가 맞군!


예스 스쿨은 태국 국적이 없거나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공립학교를 갈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다. 특히 일을 하기 위해 미얀마에서 넘어온 부모들의 아이들을 돌본다. 태국에서는 언어와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미얀마 아이들을 모두 받아 줄 수 없다.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한국인 미스터 박Mr.Park. 미얀마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태국어와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매년 예스 커피에서 나오는 수익의 10%를 학교에 지원한다고 한다. 알아보니 예스 커피는 푸껫을 비롯해 끄라비Krabi, 치앙 마이Chiang Mai 공항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다. ‘혜택 받지 못하는 계층의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했다. 남을 도와주기 위해 수익 구조를 만들다니. 멋진 취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구한말 우리나라에 건너와 교육에 힘쓴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한국 전쟁 후 나라를 도와준 이들의 선교사들의 따뜻함이 박 대표님에게 전해졌고, 그 사랑이 다시 내게 전해진다. 어떤 사람인진 만나지 못했지만,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려 노력하는 마음이 커피보다 더 따뜻하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도움을 받다가 나누어주는 나라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감격했던가. 나날이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시끄럽지 않게, 푸껫 언저리에서 조용하게 온정을 나누는 그 행보가 놀랍다. 가난하고 힘들 때 언제나 우리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지 않나. 언더우드는 1886년 부모 잃은 아이를 거둔 언더우드 학당을 세웠다. 이것이 1915년 연희전문학교가 되고 연세대학교가 되었다. 150년이 다 되어가는 긴 시간, 나라를 잃고 식민 지배를 당하고 독립을 맞고 나라가 갈라지는 전쟁을 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동안 얼마나 꿋꿋하게 많은 인재들을 길러 냈는가. 1886년 메리 스크랜튼Mary Fletcher Scranton이 이화학당(현 이화여고, 이화여대)을 세웠을 때 첫 학생은 콜레라에 걸린 여섯 살 배기 떠돌이였다. 1885년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는 배재학당(현 배재대)을 세우고 6명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전기도 채 들어오지 않은 나라에, 그들은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물론 선교를 목적으로 온 것이긴 했지만, 그들의 중심에 ‘사랑’이 있었음은 자명하다. 성경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마태복음 22장 39절)를 몸소 실천한 이들이었음을. 구한말 제대로 먹고 입지 못하는 아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거두었듯, 미얀마 아이들을 거두는 한 한국 독지가의 모습을 나는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 태국에서 본다.


ⓒ Yoonhye Jeon

아직 종교에 대해서는 이렇다 말할 수 없는 나지만, ‘사랑’이 제일인 이 종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느낀다. 동네 사람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떤 고민이 있으면 발 벗고 기도하고 자신도 어려우면서 푼돈이라도 내어 돕던 엄마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2학년 내가 시장에서 다리 없는 아저씨를 처음 보았던 날, 아저씨가 누워서 리어카를 밀며 수세미를 파는 모습을 보고 펑펑 울고야 말았던 날, 엄마는 윤혜의 마음이 너무 예쁘다고 우리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했던 그 밤. 동네 청년이 잘못된 길로 들어 수습이 필요할 때 힘들고 지침에도 나서서 거두고 기도하던 엄마.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느꼈다. 아, 이 종교는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어두운 곳에 먼저 사랑을 내밀고 밝게 비춰 주는구나. 그 빛 그대로 나를 더욱 사랑해 준 엄마의 사랑, 아빠의 사랑, 가족의 사랑이, 종교를 믿고 아니고를 떠나, 먼저 믿는 이의 아름다운 실천들을 보면 그 종교가 궁금해지는 것처럼, 나에게 기독교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1서 3:18)


“윤혜 너도 그랬어. 난 너를 보고 사랑이 뭔지 궁금해졌어. 시드니에 있을 때 토요일 새벽까지 일하고선 일요일 댓바람부터 졸아가며 성가대에 반주하러 갔잖아. 그럴 때마다 나는 내게 대체 왜 이렇게 힘들여가면서 가는 거야, 뭐가 너를 그렇게 움직이게 해, 교회는 뭘 알려주는 거야, 물었어. 내 머리론 이해가 안 됐거든. 너는 ‘잘 모르겠어, 나도 성경을 다 알진 못하지만, 성경엔 사랑이 있어. 언제나 선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선하게 살아가려고,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해.’ 했어. 룸메들이 아무도 하지 않는 청소를 하고, 작고 귀찮은 일들을 내세우지 않고 당연한 듯하는 네가 신기했어. 나, 너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 사람을 사랑하는 법.”


대체로 차갑고 개인주의적인 프랑스 세계에서 자란 그는 한국적인 배려심은 물론, 기독교 가정에서 나고 자란 나의 행동은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한 순간이다. 떠나기 전 화장실에 들어가 벽을 보는데 울컥, 눈물이 나오고야 만다.


If I know what love is, it is because of you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면, 그건 당신 덕분이에요.


이 학교 아이들이 화장실에 올 때마다 사랑을 생각하고, 자신들을 사랑받는 아름다운 존재로 여기며 자랄거라 생각하니 너무 뭉클해서, 웃으며 춤추고 노래할 아이들을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너무 따뜻해져서. 건강한 부모님에게, 따뜻한 동생들에게, 나를 보듬어 주는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이역만리에서 만난 남자 친구에게 받는 과분한 사랑을 떠올리며, 너희들도 사랑받듯, 나도 사랑받고 있구나.


빠똥으로 떠난다. 흐린 하늘에 반사되는 햇빛이 장관이다. 바닷물은 맑게 부서진다. 까론 비치에 멈춰 물결에 몸을 맡긴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푸껫의 하루. 여행하는 동안은 줄곧 자연에 감사해 왔지만 오늘은 사람에 감사하고 감사한다. 이곳을 알게 해 준 니콜라스에게, 누군진 모르지만 박 대표님께. 예스 스쿨은 푸껫 어느 휴양지보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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