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 년 전 덮쳤던 파도가 무색하게

태국 카오락 쓰나미 메모리얼 파크

by 전윤혜


2004년 카오락 바다에 집채만 한 파도가 들이쳤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인도와 미얀마 사이에 일어난 지진으로부터 비롯한, 1000km에 이르는 단층대를 20m나 옮겨 버린 힘은 인도양 해저까지 뻗쳤고, 그 충격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켰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쪽 바다에서 시작된 파도는 육지로 다가올수록 높아졌다. 태국의 서남쪽 푸껫과 카오락 일대는 진원지와 마주한 땅이었다.


시속 800km로 달려든 파도는 해변과 리조트를 삼켰다. 흙빛 바닷물이 나무와 전봇대를 쓰러뜨리고 가까스로 매달린 이를 가차 없이 쓸어갔다. 이 쓰나미로 푸껫과 카오락 등지에서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러 온 가족들은 하루 만에 남편과 아내, 아이들을 잃었다. 지금껏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에서 일어난 지진 가운데 가장 큰 지진이었다.




오늘은 어딜 가 볼까, 카오락에 온 뒤 처음으로 생각해 본다. 지금까진 벤자민의 추천 장소들을 따라간 터였다. 구글맵으로 카오락을 찬찬히 훑었다. 중앙에 쓰나미 뮤지엄이 있었다. 그렇지, 여기에 쓰나미가 왔었지. 길을 걷다 보면 쓰나미 대피 도로TSUNAMI EVACUATION ROUTE 표지판을 만나곤 했다. 검색해 보니 이 조그만 마을에 쓰나미 뮤지엄만 꽤 여러 곳이라 놀랐다. 쓰나미 뮤지엄 카오락, 인터내셔널 쓰나미 뮤지엄, 쓰나미 메모리얼 뮤지엄, 쓰나미 메모리얼... 리뷰를 보니 별다른 콘텐츠 없이 영상과 사진 자료나 당시 파도에 밀려온 경비정을 전시하고 기부금 형식으로 돈을 받는 듯했다. 기부금의 단위는 꽤 컸지만 전시는 5분 안에 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자연재해가 관광객을 상대로 한 돈벌이가 되다니, 사람은 쓰나미보다 더 무서웠다. 우리는 박물관 대신 카오락과 조금 떨어진 북쪽 바닷가, 방 무앙Bang Muang에 있는 쓰나미 메모리얼 파크(추모 공원)에 가기로 했다. 그곳에 선 기념비가 아름다워 보였다. 스쿠터로 3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뺨으로 서쪽 해가 내려올 무렵 출발했다. 우리가 언제나 일몰을 즐기는 건 다 미적거리는 내 탓이다. 쭉 뻗은 도로 끝까지 달렸다. 길은 평온했고 이따금 커다란 트럭이 오고 갔다. 우리는 시끄러운 작은 강아지처럼, 그 사이를 왜앵- 호기롭게 달렸다. 트럭에도 꿈쩍 않던 니콜라스가 갑자기 넋이 빠졌다. BMW의 GS 시리즈를 탄 커플이 지나간 것이다. 이 더위에 가죽 재킷과 바지까지 다 갖춰 입은, 뒤로는 톱 박스와 새들백(모터바이크 안장 뒤에 얹는 가방과 뒷바퀴 양옆에 붙이는 보조 가방.)까지 갖춘 진짜 모터바이크 여행객들. BMW 모터바이크 중에서도 오랜 여행에 특화된, 큰 몸집만큼 편안한 GS 시리즈는 보통 투어리스트 모터바이크라 불린다. 니콜라스는 한낱 125cc짜리 혼다 스쿠터에 형광 연두색 헬멧을 쓴 우리가 영 마뜩잖았는지, 그들을 따라잡으려다 애꿎은 기름만 더 많이 쓰고 말았다. 기름이 아슬아슬할 때쯤 막바지 골목에 들었다. 구불구불하다 깨끗해지곤 하는 골목 사이로 10밧, 20밧 붙은 코인 세탁기가 몇 대 나와 있었다. 길 어귀 가지런히 심긴 흰 꽃들이 햇살을 맞아 빛났다.


ⓒ Yoonhye Jeon

공원은 한적했다. 주차장 옆엔 낡은 간이매점이 있었고 아스팔트 바닥에 흰 분수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너머엔 바다가 있는 듯했다. 풀밭엔 듬성듬성 잡초들이 올라와 있었다. 어른들이 신경 쓰지 않는 공터 같았다. 마치 십 대들이 모여 노는 음악을 틀고 노는 그런 오래된 바깥.


바닷가로 가려면 추모의 길을 걸어야 했다. 오른편은 어두운 회색빛 노출 콘크리트가, 왼편은 주홍빛 타일들이 이어졌다. 키를 훌쩍 넘는 회색 벽은 마치 파도처럼 주홍빛 벽을 덮칠 듯 굽어져 있었다.


“윤혜. 그날 친 파도가 이렇게 높았던 걸까...”


벽 뒤에 머무는 해가 길에 긴 그늘을 드리웠다. 발을 들였을 뿐인데 숙연해졌다. 타일 벽은 파랗고 하얀 마름모꼴 모양으로 장식돼 있었다. 가까이 보니 시신도 찾지 못한, 묻히지 못한 이들을 기리는 일종의 묘비였다. 어두운 그림자를 건너며 하나하나 그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태국인, 독일인... 그중엔 2000년에 태어난 아가도 있고, 해맑은 11살 꼬마의 사진도 붙어 있었다. 같은 성을 가진 네 개의 이름이 함께 모인 곳에서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족이었구나. 한 가족을 떠나보낸, 남겨진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벌써 십오 년째.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들과 딸, 엄마와 아빠가, 남편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직 누군가를 잃어보지 않은 나조차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그들은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 잠깐 세월호를 생각했고 니콜라스에게 그날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누군가에 죽음 앞에 선다는 일은 언제나 참 아픈 일구나. 누가 뭐래도, 어떻게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도 결국은 아픈 일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두운 그늘 아래를 한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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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IN PARADISE ⓒ Yoonhye Jeon

좁은 길이 끝나는 곳엔 커다란 부처님이 있었다. 거짓말처럼 부처님 뒤로 빛이 쏟아졌다. 그 모습이 자못 거룩했다. 종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터널 같은 그곳을 아주 천천히 빠져나오는 과정이 그랬다. 이 거룩함은 결국,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거룩함 같았다. 평소 같으면 금상, 특히 동남아를 여행하며 보는 그것의 재료나 못 미더운 마감 처리에 더 신경 쓰던, 전심을 다해 만든 상이 아니면 심드렁하던 내가 오늘은 그의 인자한 미소를 먼저 보았다.


“윤혜, 부처님이 이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나 봐.”


IMG_8171.JPG ⓒ Yoonhye Jeon


부처님 뒤로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지금껏 보던 카오락의 바다와는 조금 달랐다. 공원은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세워진 것이었다. 구름 낀 하늘로부터는 햇빛이 쏟아졌고, 파도는 그 빛을 부수며 지그재그로 밀려왔다. 바다로 가고 싶은 강과 파도를 밀어내는 바다가 만들어낸 광경. 강 흙이 섞인 탁한 물에 늦오후의 빛이 산란했다. 반짝반짝, 그 모습이 마치 떠다니는 아름다운 천사 같았다. 어쩌면 머물고 있는 영혼인지도 모른다. 손을 잡고 바닷가를 천천히 걸었다. 둥그런 모래둑엔 낚시꾼들이 서서 낚시를 했다. 우리는 시멘트 나루에 걸터앉았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이 귀엽게 치는 물장구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우리 역시 아름다운 그 가족을, 멀리 보이는 낚시꾼 아저씨들의 한가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요했다. 아름다웠다. 십오 년 전 이곳을 덮쳤던 파도가 무색케도, 이곳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 Yoonhye Jeon

해변가 나무 사이를 거닐었다. 카오락 바닷가엔 하늘하늘한 침엽수가 많았다. 우리의 풍파 이겨낸 억센 소나무들과 달리, 가늘고 뾰족한 잎과 얇은 가지들이 더위에 지친 듯, 축 늘어져 흔들렸다. 길게 늘어뜨린 그 모습이 마치 버드나무 같기도 했다. 나무는 항상 둥글고 두꺼운 잎을 가진 인도아몬드나무와 함께 짝을 이뤘다. 뾰족한 소나무와 둥근 나무가 우리 같았다. 나무 아래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매점에 들렀다. 꼬마는 엄마의 장사가 지루한지 몸을 비비 꼬았다. 엄마는 아이에게 컵라면을 주었고 꼬마는 행복하게 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웃음이 났다. 한 스쿱에 20밧 하는 아이스크림을 샀다. 초콜릿과 코코넛 맛을 고른 니콜라스는 내 라임맛을 한 입 먹어보더니 다시 달려가 라임 한 스쿱을 더 얹어 왔다. 조금 더 걷다 부처님 등 뒤에 앉았다.


ⓒ Yoonhye Jeon


“니코. 왜 공원을 이곳에 세운 걸까?”


“음... 아마 이곳이 쓰나미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힘을 겨루고 있잖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은 쓰나미가 왔을 땐 훨씬 더 피해가 큰 곳이야.


“강이 밀고 내려오는 힘이 파도와 만나면 더 상쇄되지 않을까?”


“아니, 쓰나미는 바닷속 지진으로부터 오는 강한 파도잖아. 파도가 높아지면 덩달아 근처의 물을 끌어당기는 힘도 커지게 되지. 왜, 우리도 수영할 때 보면, 큰 파도가 칠 때면 몸이 빨려가는 힘도 크잖아. 쓰나미는 엄청난 스케일의 파도니까 그 인력이 상상도 못 하게 센 거야. 그 힘이 강을 내려오는 물까지 다 빨아들이는 거지. 거대한 파도가 앞뒤로 점점 물을 모으다 못 이겨 꽝, 내리친다고 생각해 봐. 순식간에 물폭탄이 터지는 거야. 빨아들인 것 이상으로 토해내는데, 시속 몇 백 킬로미터로 순식간에 강 안쪽까지 거슬러올라가. 당연하지. 뒤에서 저 큰 바다가 밀어주잖아. 그럼 강을 따라 온 마을이 물에 잠기게 돼. 몇 분이 채 안 걸려.”


“그렇구나... 와, 넌 어떻게 이걸 다 알아?”


“2011년 동일본 지진이 났을 때 기억해? 나는 쓰나미가 얼마나 강력한지 그때 처음 알게 됐어. 학자들은 쓰나미가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재해라 했지. 세상에서 가장 큰 자연재해라, 궁금하잖아? 엄청나게 찾아봤지. 후쿠시마에서 큰 피해를 본 지역이 항구와 강가 마을이야. 거긴 말할 것도 없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 육지 마을에서도 하천 수위가 점점 내려가더니 얼마 후 파도가 들이닥쳐. 사람들도 구경하다가 순식간에 다리를 삼키고 집과 자동차들을 밀어버리고, 운동장을 가득 채우는 검은 바닷물을 보게 돼. 사실 몰랐겠지, 바다 앞에 안 사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그 물의 속도와 위력... 영상을 보는 나도 손에 땀이 나더라고. 일본이 얼마나 재해를 대비하는 나라야. 이미 물속, 물밖으로 둑들을 쌓아두었는데도 이겨내지 못했으니... 파도가 영화에서 보던 것만큼 거대한 파도는 아니야. 그러나 그 속도가 모든 걸 밀어버려. 차와 나무와 냉장고와 집과 사람과 모든 것을. 육지 깊숙한 논까지.”


ⓒ Yoonhye Jeon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추모 길을 따라 다시 걸었다. 길 끝엔 이 공원을 독일의 철강 회사인 티센크루프Thyssenkrupp가 세웠다는 표지석이 있었다. 이곳을 찾은 이가 추모비를 닦고 있는 독일인에게 물었다. 그 독일인은 쓰나미가 일어날 당시 티센크루프의 아시아 지부 담당자였고, 쓰나미로 그의 아들을 잃었다. 회사는 이후 그에게 일 년에 한 번 이 곳을 방문해 아들을 보고, 추모비를 돌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티센크루프는 카오락 뿐 아니라 인도에도 고아원을 세우고 금전 지원은 지역 재건과 전문 심리 상담사까지 지원했다고 한다. 남은 사람을 돕고 떠난 사람을 되새기게 만드는, 그들이 죽음을 기리는 방식이 아름다웠다.


길 속에서 스페인 포르부Portbou 바닷가에 세워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추모 작품 <통로Passages>가 떠올랐다. 이 세상 곳곳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겨진 추모의 길들... 오늘 하루의 모든 것들이 쓰나미에 대한 기억을 만들었다. 오늘의 온도, 오늘의 냄새, 오늘의 바람, 오늘의 소리, 오늘의 길,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들이. 내게 처음 온 쓰나미는 무섭고 거대한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골목 작은 가게에서 기름을 넣었다. 위스키 병에 담아 파는 휘발유를 1l에 30밧(약 1,150원)을 주고 채웠다. 도로에 접어든 니콜라스는 “내일 스쿠터를 반납하기로 했으니까 이 기름으로 버텨보자.” 하더니 “재밌는 거 보여줄게.” 하고선 어느 순간 엑셀을 놓았다. 그런데도 스쿠터는 굴러갔다.


“평평해 보이지? 근데 여기 내리막길이다? 윤혜, 나처럼 몸을 숙여 봐!”


뒤에 몸을 붙이고 구부린다. 속력이 60km, 70km 점점 올라간다.


“하하! 이렇게 타면 기름 쓸 일이 없지! 달려라 달려!”


길가에 쓰나미 대피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쓰나미가 왔을 때 이 길을 따라 도망을 치세요. 말하고 있다. 이 표지판이 없을 땐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겠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우왕좌왕하다 파도에 휩쓸렸겠지... 과거를 기억하며, 이제 이들은 조금 더 준비하고 있다.


스쿠터는 여전히 잘 달렸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스쿠터 불빛에 달려드는 벌레, 가물가물한 주황빛 가로등 사이로 카오락의 여름밤이 지난다. 문득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되어 감사합니다.



IMG_3076.JPG 카오락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쓰나미 대피 도로 표지판. ⓒ Yoonhye 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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