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알프스와 이상한 부처님

태국 펫차분 푸터벅, 왓 프라 깨우

by 전윤혜

‘파일린 팔라스’. 네모나고 노란 멋없는 모텔. 궁전palace이란 이름과 다르게 원룸 건물처럼 생겼다며 방문을 열었는데, 글쎄 방이 궁전만큼 크다. 와아, 방콕의 어두운 3평 쪽방에서 일주일을 부대끼다 맑은 미색 타일이 깔린 넓은 방에 온 것이다. 화장실이 방콕 숙소의 방 만하고, 발코니가 있는 데다 조식까지 포함해도 방콕보다 싸다. 340밧(13,000원). 관광지와 한참이나 멀어졌다는 증거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모터바이크 여행을 할 때 비만큼 걸리적거리는 게 없다. 일단 신발이 젖는다. 우비를 입어도 다리 위로 말려올라가 소용없다. 젖은 바지가 점점 윗옷마저 적셔갈 거다. (그래도 입어야 한다.) 핸들 잡은 손이 미끄러지기도 한다. 잘못해서 헬멧 스펀지라도 젖으면 그 냄새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전문 라이더들은 방수 재킷과 바지, 장갑, 신발까지 챙겨 다닐 테지만 동남아에서 그렇게 입으면 젖기 전에 쪄 죽는다. 차보다 모터바이크! 외치던 우리도 이런 날은 차가 그립다. 작은 우산에 붙어 현지 식당으로 간다. 회식하는 떠들썩한 목소리를 투두둑 굵은 빗방울 소리가 덮는다. 직원들이 주섬주섬 테이블들을 접는다. 돌아온 숙소에서 할 일 목록을 쓴다. ‘마트 들러 우비, 장갑 사기’. 산마을 가기, 국립공원 가기도 아니고 마트 가기.


시끌벅적한 오리고기집. 마치 창동역 노상 테이블에 온 것처럼 정겨웠다. ⓒ Yoonhye Jeon

다행히 비가 잦아든다. 연유를 듬뿍 친 토스트로 아침을 하고 테스코로 간다. 테스코는 홈플러스를 인수했던 영국 회사로 태국 마트 업계의 큰손이다. 우리는 긴 통우비가 필요하지만 이곳엔 짧은 통우비와 긴 단추형 우비뿐. 이런, 어려운 선택이다. 짧더라도 통우비를 사기로 한다. 핸들 마찰력을 높여줄 장갑을 살펴본다. 모터바이크용이 없어 고무 요철을 붙인 노란색 파란색 게임용 장갑을 산다. 산속에 올라가서 먹을 만두와 초콜릿 바, 니콜라스가 먹고 싶은 수박, 전부터 벼르던 펩시와 코카콜라 비교 대결을 위한 콜라들, 다 떨어진 치약... 별 산 것도 없는데 계산하고 보니 900밧(약 34,000원)이다. 끽해야 200밧 쓰러 가서 폭탄을 맞은 거다. 설상가상 짐을 열어보니 단추형 우비가 담겨 있다.


단추형 우비를 입고 모터바이크를 몰면 단추 사이로 비바람이 들어 등 뒤쪽이 풍선처럼 부푼다. 속도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언젠간 단추가 찢어질 거다. 길가 상점에서 싸구려 비닐 우비를 사서 덧입자는 내게 그는 “그럴 거면 마트에서 대체 뭘 산 거냐. 하나를 할 때 제대로 해야지 못 미치는 걸 사서 두세 번 더 움직여야 하는 것이 싫다.” 한다. 좋은 우비를 사기 위해서 마트에 간 건데, 싼 우비를 다시 사는 건 한사코 싫단다. 뒤집어 입자고 설득해도 어차피 물은 샐 거니 바로 입겠단다. 마트에서 킬킬대며 산 콜라와 수박과 쌓여 있는 만두가 애꿎다. 나는 그냥 웃어넘겼으면 좋겠는데.


“아니, 우비 한 장으로 자존심 세울 일이야? 그냥 하나 더 사면 되잖아? 돈 때문에 그래?”


“윤혜. 돈을 많이 쓴 게 문제가 아니라 쓸데없는 곳에 써서 화가 난 거야. 그러고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돈을 쓰자는 가벼운 태도를 이해 못하겠어.”


니콜라스는 그동안 여행하며 내가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없는 대로 하지 뭐’ ‘다음에 하지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한 번에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내 태도를 못마땅해 해온 것 같다. 돈도 대수롭지 않게 쓰니, 돈 쥔 그로서는 기분이 상할 법도 하다. 나는 그의 리액션에 기분이 상하고. 지금이 1시, 오늘 일정은 다 끝났네. 왜냐? 우리 여행엔 절대 원칙이 있다. 갈등은 무조건 그 자리에서 해결하기, 상한 기분을 절대 일정 때문에 덮어두지 않기. 여행하면서 생긴 갈등은 시간이 좀처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싸늘한 공기 속에선 당연히 좋게 기억될 리 없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풀고 떠나야 한다. 서로 합리적이지 못했던 씀씀이와 날선 태도를 지적한다. 두 시간이 넘도록 주장을 하고서야 드디어 반성도 하고 화해를 한다. 산에서 먹으려 했던 만두를 숙소에서 먹는다. 목이 막히니 콜라도 마시고. 세 시 반, 비는 거의 그쳤다. 그래도 우비를 단단히 잠그고 출발한다.


ⓒ Yoonhye Jeon

펫차분은 산과 산 사이 넓은 계곡을 따라 형성된 주다. 북에서 내려온 빠싹 강과 우리가 타고 온 21번 국도, 이 두 큰 세로축을 중심으로 논밭집들이 펼쳐진다. 주요 도시로 주의 가운데 위치한 펫차분과, 그 북쪽으로 30km가량 올라간 롬싹Lom Sak이 있다. 롬싹에서 21번 도로와 태국 동서를 가로질러 미얀마까지 가는 12번 도로가 만난다. 그 큰 사거리 북서쪽으로 푸힌롱클라Phu Hin Rong Kla 국립공원, 남서쪽으로 카오코Khao Kho 국립공원, 동쪽으로 남나오Nam Nao 국립공원이 있다. 이 일대를 태국의 알프스라 부른다. 푸힌롱클라 국립공원에 경치 좋은 마을이 있다기에 그곳에 올랐다 남쪽 카오코 국립공원을 한 바퀴 크게 돌아내려올 생각이다. 산간 어디나 도로가 나 있는 덕에 국립공원 내에서도 운전이 가능하다.


퍼덕이는 우비 소리와 함께 30분 달려 롬싹 사거리에 닿고, 15분 더 달려 푸터벅으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1,768m 되는 푸터벅까지 꼬불꼬불 20km가 오르막이다. 처음이야 구름을 위에 두고 완만하고 상쾌하게 올라간다. 어느 순간 안개가 자욱이 낀다. 비가 안 오는데도 우비에 이슬이 맺힌다. 구름 속에 들어온 거다. 우리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구름(운해)은 보통 1,300m 기준으로 끼니까, 여기가 그쯤 되는 모양이다. 점점 경사가 급해지고, 시원하다 못해 몸이 떨린다. 축축하게 젖은 도로엔 움푹 팬 크랙들이 나타난다. 싱크홀도 가끔 일어나는 보다. 팽창과 수축을 버티던 아스팔트가 끝내 깨어진 풍경. 이따금 나타나는 10도짜리 커브를 보고는 말을 잇지 못한다. 모터바이크를 종이접기처럼 고이 접어 접어 돌아 낑낑 올라간다.


알고 보니 빠이-매홍손 구간보다 어렵다는 푸터벅 가는 길. 이때만 해도 매홍손이 뭔지, 빠이 커브가 뭔지도 몰랐다. ⓒ Yoonhye Jeon

“윤혜. 이 도로, 지금껏 내 운전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도전이야. 너무 위험하다. 커브는 둘째치더라도 크랙이 너무 많아. 미끄럽기도 하고. 나 지금 정말 조심하고 있어. 너도 조심해야 해. 절대 크게 움직이지 말고.”


눈으로만 봐도 어려운 길이다. 사실 편안히 뒷좌석에 탄 나는 길 걱정보다 구름 구경을 더 많이 한다. 축축한 공기 속으로 손도 뻗어 보고, 니콜라스 몰래 사진도 찍는다. 그러다 홀연 시야가 깨끗해진다. 마법같이 구름이 벗겨지고 정글 같은 나무들도 사라진다. 아래로 구름이 비단처럼 깔려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보면 1차 세계 대전, 구름 속에서 비행 전투를 하던 포르코가 한순간 구름 위로 ‘뽁’ 하고 올라서는 순간이 있다. 고요를 맛보는 순간. 우리도 뽁- 하고 탈출했다. 구름들이 점점 멀어진다. 우리가 올라가고 있다.


Phu Tubberk. ⓒ Yoonhye Jeon

푸터벅Phu Tubberk은 산꼭대기의 작은 관광 마을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참 평화롭다던데 빡빡한 안개 덕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정말 춥다! 오들오들 떨며 전망대에서 내려오는데 멀리 스텐 보온 물통이 보인다. 믹스커피 한 잔에 15밧(약 600원). 한 잔 사 들고 어두침침한 식당에서 창밖을 내다본다. 네모네모 조성된 양배추 밭에 색색 방갈로들이 들어서 있다. 아기자기하다. 오늘은 궁전 말고 여기서 하루 잘까, 했더니 하루 방갈로가 1,000밧(약 38,000원)부터. 좋은 목에는 방 하나가 3,000밧(약 115,000원)까지 올라간다. 알고 보니 이곳과 카오코 국립공원은 현지인 휴양지로 인기란다. 여름 기온 평균 20도. 상쾌한 공기와 멋진 운해, 평화로운 분위기. 왜 이곳을 태국의 알프스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커다란 콘도 리조트가 들어선 게 아니라 산비탈에 별장이 하나씩, 점점이 들어선 모습이 꽤 그럴싸하다. 촌스럽게 서 있는 작은 풍차도 귀엽고, 등선에 낸 흙길과 고랭지 밭마저도 정성 들여 매는 것 같다. 밭이 푸를 때면 더 멋지겠지. 태국 왕실 별장이 있는 카오코는 이곳보다 더 유럽식으로 꾸며져 있다고 한다.


푸힌롱클라 국립공원으로 넘어가려 했건만 입장료가 외국인 500밧이다. 태국인 40밧. 12배 차이. 타지마할급 바가지가 아닐 수 없다. 불쌍한 척해 보지만 예외 없이 둘이 1,000밧. 이 돈을 내고 갈 만큼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대신 산 아래 있다는 신기한 사원Wat Phra Kaew에 들르기로 한다.


내려가는 길은 꺼뻑하면 죽겠다 싶다. 올라가는 길이야 천천히 엑셀을 끌어서 가면 되지만, 내리막길은 미끌, 하는 순간 고갯길 너머로 안녕. 젖은 도로 위 브레이크만 잡다시피 살금살금 기어 내려온다. 나중에 태국 여행 커뮤니티의 글을 읽다 보니 “빠이 고갯길 넘는 건 푸터벅 가는 길에 비하면 약한 편입니다. (...) 안개도 자욱한 게 마치 가스 소독차 지나간듯한 상태로 변해서 정말 운전하기 위험천만한 곳이더군요. 다른 분들은 그날 비 오면 절대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리막길에 비까지 오면 더 위험해지니까요.” 한다. 아아, 소독차 따라가는 그 기분 알 것 같다. 비 오면 절대 가지 말란 길을 비 오는 날에 가고 말았네. 북부 산간 빠이 치앙마이 가기도 전에 매 먼저 맞은 셈이다.

다시 봐도 아찔! ⓒ Yoonhye Jeon

다시 롬싹 사거리로 내려와 12번 도로로 꺾는다. 구불구불하지만 역시나 큰 도로답게 뻥- 뚫려 있다. 새로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도로가 넓은 데다 왼쪽 오른쪽 커브가 번갈아 나와 기분 내기 제격이다. 니콜라스는 모터바이크 방향을 틀 때 핸들을 꺾기보다 몸을 기울여 조절하는 편이다. 130km/h로 달리며 몸을 기울이는데, 쉬잉- 씽- 턴할 때마다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기도 하고, 뱃속이 간지럽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난생처음 겪는 이상한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아악’ 소리 지르니 니콜라스가 파하하 웃으면서 더욱 짓궂게 몬다.


“윤혜! 왜 차가 한 대도 없지? 왜 이렇게 큰 도로를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워!”


“아아악!”


“휘익- 이 도로가 다 우리 거야!”


“끼아악!”


날이 어두워지며 도로에 불이 들어온다. 새 도로는 가로등도 LED다. 텅 빈 6차선, 깨끗하게 그려진 차선, 희고 또렷한 조명. 험한 산길 낑낑대며 내려온 지 얼마 됐다고 이제는 미래로 빨려 드는 기분. 몇 시간 만에 시대가 바뀐 것 같다. 멀리 흰 조명을 받는 흰 부처님이 보인다. 부처님을 보고 간다.


ⓒ Yoonhye Jeon

가까이 갈수록 부처님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생김새가 이상하다. 머리가 하나, 둘, 셋... 부처님 머리가 다섯 개다. 해가 다 지고서야 도착한 우리는 나가는 신도들을 거슬러 간다. 결국 사원 안엔 우리만 남는다. 썰렁한 사원, 거대하고 희고 이상한 좌상과 마주한다. 다섯 부처. 어린아이부터 성장한 모습대로 다섯 좌상이 겹쳐 있다. 좌상은 예배당이자 수행자를 위한 숙소이기도 하다. 부처님 몸 안이 숙소라니. 무섭지만 가까이 가 본다. 윤회 사상을 강조하는지 바닥과 불상 앞 여기저기에 원 장식이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절대, 태국의 전통적인 사원 모습이 아니다. 무엇을 하는 사원일까? 부처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가르치는 곳일까? 같은 종교, 한 나라 안에서 사원이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도자기를 깨서 붙인 모자이크 벽과 기둥, 금색 탑이 흰 조명에 반짝반짝 빛난다. 한쪽은 매끈하고 커다랗고 기묘한 불상, 한쪽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건물. 수많은 타일 조각으로 장식된 바닥. 돌에 앉으려 했더니 두드리면 퉁퉁 소리가 나는 플라스틱 가짜 돌이다. 이곳으로 오던 새 도로처럼 이 사원도 신상이다. 우리는 이곳이 테마파크 같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불자들을 위한 신성한 곳이기보다 신기해서 구경을 올 곳 같기도 하다. 외람되지만 일루미나티처럼 숨겨진 단체의 비밀 기지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세모, 네모, 원, 여기저기 겹치는 상징을 찾아본다. 물론 실패.


ⓒ Yoonhye Jeon

구름이 잔잔히 껴 있다. 여기도 산 중턱쯤 되는 것 같다. 850m 고지. 희고 흰 구름이 검은 산을 스치는 모습이 무섭고도 신령하다.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은 2km 밖, 12번 도로변에 있다. 여행자들은 주변 도시 자체에 오기 어려울뿐더러 거기서부터도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으니, 차가 있는 현지인들이나 불교 수행을 위한 단체 방문객 정도가 있을 뿐이다. 아니면 모터바이크 타다가 이상한 사원이 있다는 소문에 산중턱까지 달려온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세상에 종교는 많고 볼거리도 많다. 잘 모르겠다. 우리에겐 잘 꾸며진 신상보다 산길 구름을 빠져나오던 그 순간이, 푸터벅 꼭대기의 거친 안개가 더욱 신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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