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여행이 끝나갈수록 앙코르 와트가 가까워졌다. 서쪽 미얀마 접경 매솥에서 방콕까지 11시간을 달린 뒤 그곳에서부터 동쪽 캄보디아 시엠레아프(Siem Reap)까지 9시간짜리 직통 버스를 탔다. 버스는 태국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캄보디아 출입국사무소 앞에서 기다렸다. 육로 국경은 어리바리하다가는 코가 베이는 곳이다.
니콜라스가 출국을 퇴짜 맞았다. 날짜를 잘못 세어 태국 무비자 체류 기간을 넘긴 것이다. 줄을 거슬러 나가 은행을 찾아 달렸다. 급한 대로 달러를 뽑고 사설 환전을 해 벌금을 물었다. 겨우 입국하나 했더니 이번엔 캄보디아 관광 비자 발급에 필요한 니콜라스의 증명사진이 없어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에게 사진 없는 이들의 입국 허가는 일종의 용돈벌이였다. 들여보내주겠으니 대신 돈을 내라고 했다. 못 알아듣는 척했더니 종이에 얼마를 원하는지와 ATM 위치를 써서 보여줬다. 돈 내기 싫으면 옆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오라고 했다. 사진관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내밀었다. 다시 돌아와 현금을 양말 속에 숨긴 뒤 소장 앞에서 주머니를 털고 지갑을 열어 남은 돈을 보여줬다. 3달러밖에 없다며 징징거려 결국 그것만 내고 나왔다. 더 안 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뭐하는 짓인가 회의가 들었다. 아무 준비도 안 한 니콜라스를 보자니 열이 머리 뚜껑까지 올랐다. 줄을 몇 번이나 다시 선 건지. 땀이 비 오듯 했다. 호객꾼 때문에 힘들 줄 알았는데 우리 부주의로 덥고 힘들었다.
다른 승객들은 진작에 입국 수속을 끝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임 쏘리.”를 거듭하며 자리에 앉았다. 내 신경은 날카로웠다. 나는 그에게 너는 도대체 국경 넘는 걸 뭘로 생각한 거냐, 준비물까지 내가 일일이 챙겨줘야 하냐, 다음부터는 사진 여분을 들고 다녀라, 쏘아붙였다.
쏟아붓고 나니 후회가 됐다. 캄보디아에서 처음 한 일이 다툼이라니. 이게 아닌데. 나는 왜 그를 힐난했을까? 그는 그대로 솔루션을 찾느라 바쁜데, 옆에서 기운을 북돋워도 모자랄 망정. 이걸 몰랐어? 저걸 몰랐어?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저렇게 했을 텐데…. 사실 그가 답답했다.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 파다. 여행할 나라에 대해 먼저 알고 싶어 한다. 조금만 더 알아도 보이는 게 더 넓어질 것이니까. 그래서 미리 조사를 한다. 니콜라스는 ‘백문이 불여일견’ 파. 보고 느끼는 게 먼저다. 나쁘게 말해 별 준비가 없다. 그러면서 태연히 "이렇게 당해봤으니, 나중에는 같은 실수 안 해." 한다. 난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실수를 굳이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윤혜. 너는 꼭 우리 할머니 같아. 고집스러워. 본인이 이해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받아들이지. 세상엔 너 같은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야. 그런데 너는 나 같은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니콜라스는 실수를 인정하기 때문에 실수한 뒤에도 마음이 편하다. 물론 돈을 쓴 것은 아깝지만 자신의 실수로 비롯한 것이고, 그 또한 경험이 되었으니 괜찮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라곤 옆 도시 가듯 영국이나 이탈리아에 가던 사람이(EU 안에서 육로 이동은 아무 제약과 검문이 없다.) 비자를 30달러씩이나 내고 거기다 사진까지 붙여야 하는 것에 익숙할 리 없지. 여행 끝무렵이 되어 마음이 안이해진 것도 사실이다.
“네가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 해도,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너를 보고 있으면 행복해. 너를 사랑해.”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더 화를 낼 수 있을까. 미안하다고 말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캄보디아의 농촌 풍경은 평평하고 광활했다. 지쳐 잠이 들었다.
캄보디아의 서북쪽, 옛날 용맹을 떨치던 크메르 왕국의 수도. 시엠레아프는 앙코르 유적이 먹여 살리는 도시다. 앙코르 유적 중 가장 큰 사원이 앙코르 와트고. 캄보디아 국기에 그 사원, 캄보디아 국민이 자신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그 사원이다. 왜 이곳에 오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거대한 크기, 1000년 전 건축술의 미스터리, 정글 속에 묻혀 있던 폐허. 세계 7대 불가사의. 어렴풋하게 들어만 오던 굉장한 실체를 직접 보고 싶었다. 마음이 떨렸다. 이제 보겠구나.
버스터미널 앞은 캄보디아의 논처럼 황량했다. 기다리던 툭툭 기사들이 제각기 자기 손님을 찾아 태웠다. 시엠레아프의 숙소는 대부분 무료 픽업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숙소의 서비스가 아니었다. 기사들이 자비를 들여 승객을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대신 그들은 개인적으로 앙코르 와트 투어 영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 기사는 번호를 교환하고선 다른 고객을 태우기 위해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시엠레아프에서는 모든 것이 달러로 계산됐다. ATM조차 달러 출금이었고 수수료는 건당 5달러였다.
앙코르 유적은 그 면적이 무려 400㎢, 서울의 2/3나 된다. 걸어서 보지 못한다. 그러나 시엠레아프에서 외국인이 스쿠터를 대여하는 것은 불법이다. 왜인지 모르겠다. 기온 35℃에 습도 80%. 8월의 시엠레아프에서 자전거를 빌린다면 탈진하겠지. 발이 묶였다. 결국 숙소에서 소개해준 기사를 대동하기로 했다. 루트는 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주변 사원을 도는 스몰 투어와 외곽까지 나가는 빅 투어가 있다. 보통 스몰 투어와 빅 투어를 하루 이틀씩 나누어 간다. 우리는 돈도 없고 지칠 대로 지쳤다. 하루 고생하고 말자. 스몰 투어 하루에 일출과 일몰 옵션을 추가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기사와 만나 매표소로 갔다. 1일권, 3일권, 7일권을 파는 매표소는 벌써부터 줄이 길었다. 1일권은 37달러, 3일권은 62달러, 7일권은 72달러였다. 몇 해 전 20달러에서 37달러로 훌쩍 올렸다. 앙코르 유적의 입장 수익은 운영 업체의 비리로 말이 많았다. 창구 위 전자 광고판에는 중국어로 면세점 광고가 나왔다.
일출은 구름에 덮여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명 속 크메르 왕국의 흔적은 대단했다. 사암(沙巖)이 녹으며 사원이 고동빛 눈물을 흘렸다. 뻑뻑한 연못에는 햇빛 대신 사원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우리는 해자를 건너 서쪽의 입구에서 동쪽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사원은 사방의 긴 회랑이 둘러싸고 있었다. 벽을 따라 새긴 힌두교의 창세 신화가 끝이 없었다. 많은 것이 설명하기 어렵던, 작황으로 한 해의 점을 치고 별똥별 하나 떨어지는 것도 신의 계시로 보았던 그 시절. ‘신’이 필요하던 그 시대의 숭앙이 사원에 녹아 있었다.
조금씩 닳고 무너지는 부분은 그대로 두었다. 이가 빠지거나 금이 가도 두었다. 천장의 쩌귀가 아슬아슬했다. 위험한 곳은 나무 지지대로 괴어 놓았다. 나는 새로 짓거나 어설픈 복원을 하려던 다른 사원들보다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1,000년이나 살았으니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거다. 인기가 많은 바욘 사원도, 앙코르 톰도, 그냥 돌이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나무가 자라면 자라는 대로 두었다. 열기와 습기에 빠르게 생장한 나무는 사원을 덮었다. 치앙마이를 지키던 것과 같은 커다란 고무나무가 벽과 복도를 무너뜨렸다. 우리는 그 열기와 습기에, 그리고 알 수 없는 사원의 묘한 힘에 탈진했다.
기사는 당신이 가는 현지 식당을 소개해 달라는 우리에게 위생상의 문제가 있다며 관광객용 식당을 안내했다. 현지인들은 그곳에서 먹고 멀쩡히 잘 지내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 것일까? 그가 안내한 식당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그렇지만 손님을 데려오는 기사에게 공짜 밥을 제공했다. 에둘러 말한 기사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야속했다. 니콜라스는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얘기했으면 차라리 점심 식대를 주었을 텐데."
기사는 종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호텔에서 너무 적은 돈을 주어서 그걸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다음날 시간이 되면 수상가옥에 가자며, 그 경우 호텔에 말을 하지 말고 자기한테 연락하면 싸게 해주겠다는 영업을 계속했다.
그게 아닌데. 그게 돈을 더 버는 방법이 아닌데. 동정심에 기대는 게 아니라 당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 건데. 당신이 진짜 친절을 베풀면 기쁨에서 우러나온 사례를 할 텐데. 동정에 의한 돈은 능력에 의한 돈이 아니다. 그러나 이곳에선 동정을 잘 사는 사람은 능력 있는(돈 버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아직까지 만연한 동남아시아의 관광이다.
일몰을 보러 올라선 사원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았다. 기분이 조금 가셨다. 일몰마저 구름에 가렸지만 정글 뒤, 지평선 너머 붉은 빛이 좋았다. 실로 오랜만에 본 지평선이었다. 그제야 내가 캄보디아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캄보디아는 드넓고 평평한 땅을 가진 나라다. 크메르 왕국은 시엠레아프 아래 톤레사프(Tonlé Sap) 호수의 물과 그를 둘러선 평야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그중 가장 좋은 목에 앙코르 유적을 세웠다.
정글 속 가깝고도 먼 사원들이 보였다. 넓은 유적엔 사원들이 널찍히 떨어져 있어 곳곳에서 쉬기 좋다. 입장권은 사원에 들어갈 때마다 검사하므로, 사원 바깥 그늘에서 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기사와 함께 다니다 보니, 가이드도 없고, 그룹 투어도 아님에도 왜인지 일정에 따라야 할 것만 같다. 고대하던 앙코르 와트에 와 놓고선 왜 기사에 더 신경 쓰는지 모르겠다. 이게 아닌데. 나는 중얼거렸다.
“이다음에 온다면 쪄 죽더라도 자전거를 탈까 봐.”
“아니, 다음엔 우리 모터바이크를 타고 올 거야.”
그러네. 다음엔 어디든지 갈 수 있겠구나.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겠구나. 해자를 따라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겼다. 무지막지하게 큰 검정 스피커에서 트로트 같은 음악이 흘렀고 물 마른 공터에선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곳에 앉아 저녁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새벽 4시 반부터 일한 기사를 야근까지 하게 할 수는 없다.
숙소 앞에서 기사는 팁을 기다렸다. 니콜라스가 생각에 잠겼다. 니콜라스는 칸에서 기사로 일한다. 호텔에서 콜을 받고 부자들을 태운다. 우리가 캄보디아에서 돈을 쓰듯 석유 재벌과 러시아 부호들이 와서 돈을 쓴다. 니콜라스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고, ‘고객 중심’의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그들이 내게 얼마나 줄까, 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편안할까, 를 생각한다. 니콜라스는 좋은 기사가 되려면, 정말 팁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할까 고민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지금 그에게 이 일은 단지 돈을 버는 일이라고, 그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고. 그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이가 처한 곤경만을 강조하는 거라고. 언젠가 깨달을 날이 오겠지, 하고.
니콜라스는 적당한 액수의 현지 돈을 건네고 힘주어 악수를 했다. 그게 우리 힘으로 여행하자, 다짐한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기사 비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