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없어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by 전윤혜


시엠레아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숙소는 현지인 거주 구역에 덜렁 세워진 신식 레지던스 호텔이었다. 일사병이 든 건지 기운이 없었다. 여독이 몰려왔다. 잠을 늘어지게 자고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이들에게 엽서를 썼다. 건너편 시장에서 소고기와 물고기를 땡볕에 두고 파는 것을 본 뒤로 가급적 호텔 식당에서 끼니를 때웠다. 돈이 없어 2달러, 3달러짜리 핫도그를 먹고 맥주는 시키지 않았다. 대신 구멍가게에서 캔맥주를 박스채 샀다. 앙코르 맥주는 24캔에 11달러. 맥주 회사 직원들은 조그만 골프 카 같은 것을 타고 가게마다 영업을 하러 다녔다.


ⓒ Yoonhye Jeon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섰다가 길을 잃었다. 숙소 한 블록 건너부터는 흙길이었고 길에는 마른 소와 털 빠진 개가 돌아다녔다. 외곽에는 조그맣고 어두운 상점들이 있었다. 분홍 등 아래 여자들이 거울을 보고 화장이나 머리 손질을 했다. 앳되어 보였다. 니콜라스는 몇 년 전에 본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해줬다. 저런 곳에서 부모가 죽었거나 가난해서 돈을 받고 판, 그런 아이들이 착취당한다고. 아동 성애자들이 동남아시아, 특히 캄보디아를 찾아온다고. 놀라지 말라고, 그들은 5살 6살, 여자아이 남자아이를 가리지 않는다고. 정부에서 조사도 않고 관리들은 눈을 감는다고. 그리고 아이들은 에이즈가 걸리면 버려진다고. 어렴풋이 알면서도 외면해오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되니 차마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인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 사장을 찾아 따져야 하나? 멀찍이서 발길을 돌렸다. 대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 Yoonhye Jeon

이곳은 돈이 없어 불행하고 돈이 없어 모든 것이 상품으로 보인다. 여행자 거리에서는 클럽과 펍 호객이 한창이고 툭툭 기사들은 승객을 태우려 기승이다. 관광객들은 장난 반 진심 반으로 ‘No More Tuktuk!(툭툭은 그만!)’이란 티셔츠를 사서 입고 다닌다. 대충 박아 만든 바지를 팔아 3달러를 번다. 길엔 쓰레기가 지천이고 개와 고양이들은 광견병에 걸려 있다. 우리가 낸 입장료는 도대체 시엠레아프의 어디로 간 걸까? 오랜 독재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이 나라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다. 한때는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 땅 대부분을 호령했던 크메르 인의 나라가.


ⓒ Yoonhye Jeon

캄보디아의 어두운 역사가 스쳤다. 태국과의 오랜 전쟁, 도움을 요청한 베트남에게 되려 빼앗긴 땅, 자립할 수 없던 상태에서 만난 프랑스. 자발적으로 청한 프랑스 식민 시절과 캄보디아 왕정의 복고, 부패 왕정에 반기를 든 친미주의자들의 공화국 건국, 그에 반하는 크메르루주(캄보디아 공산당)의 양민 학살. 베트남 전의 연장으로 당한 미국으로부터 폭격. 우리의 근현대사가 그랬던 것처럼, 주변국에 땅을 뺏기고 찾고, 힘없이 외세에 흔들리다 친미와 반미, 한 나라 아래 다른 이념으로 서로가 서로를 고발했다. 반군은 아이를 잡아다 총 쏘는 법을 가르쳤고,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그들에게 밀고했다.


1993년 공산 독재가 망하고 다시 왕조가 들어섰지만, 주체만 바뀌었을 뿐, 허수아비 왕 옆 총리가 장기 집권하며 독재는 여전히 이어졌다. 2019년 캄보디아는 국제 부패지수(CPI) 20점(100점 만점)으로 180개 나라 중 162위를 했다. ‘매우 부패한 국가’에 속한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수치보다 단순하던 부패가 점점 정교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국제 원조는 공무원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마치 앙코르와트의 입장료처럼. (실제로 2016년까지 앙코르와트 입장 수익을 담당했던 소키멕스(Sokimex) 사의 횡령과 그 검은돈이 베트남으로 흘러들어 갔음은 익히 알려져 있다. 소키멕스의 사장은 캄보디아 상원 의원이다.) 나라의 어른들이 이러한데,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 삶을 살면서 깨달아야 할 순리 말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가난에 기대던 기사처럼, 똑같이 무언가를 바라며 관광객을 쫓아왔다. 그런데 이런 풍경을 내전의 후유증이라 에두르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곳은 어두웠다. 시엠레아프를 며칠 겪고 나니 『레미제라블』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참다운 구분은 이렇다. 즉 밝은 사람들과 어두운 사람들. 어두운 사람들의 수효를 줄이고 밝은 사람들의 수효를 불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목적이다. 우리가 교육이다! 학문이다! 하고 외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을 배우는 것, 그것은 불을 켜는 것이다. 배우는 한마디는 빛을 던진다.” (민음사 출판, 정기수 옮김)


IMG_2016.JPG ⓒNicolas Riou

이곳이 어두운 이유는 밝아지는 방법을 알지만 나라가 밝아지지 않도록 막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을 밝히려면 먼저 눈을 밝혀야 한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밝은 눈. 결국 이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의 세계가 한 마을, 한 집, 이 어두운 어른들에 머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캄보디아에는 국제 구호 단체가 세운 학교들이 많다. 단순 원조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원조의 형태로 파견한다.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아이를 낳으면 새 자전거를 사주기보다 중고 자전거를 사서 해체하고 조립해 보라고 할 거라는 니콜라스의 말이 떠오른다. 천천히 자립할 수 있도록, 그리고 훗날 이를 바탕으로 공교육을 바르고 단단하게 세울 수 있도록. 아이들이 힘을 내어 공부할 수 있게 부모 교육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 Yoonhye Jeon

여행을 하면서 한 번씩 빛을 볼 때가 있었다. 어쩌다 간 커피집이 학교를 후원하거나, 자립 여성을 돕는 식당이거나, 캄보디아 어딘가에도 그러한 빛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안다. 캄보디아에서 일주일은 짧았다. 구석구석을 돌아본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내 여행의 감정들이 모아지고 정리되었다. 나는 다짐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최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알리겠다고. 그리고 때가 되면 나도 동참하겠다고. 불현듯, 지금껏 회의가 들었던 나의 전공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내 전공은 음악교육이었다. 졸업 후 선생님이 되었지만 곧 그만두고 곁가지를 배회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뭔지 몰랐다. 뭘 하고 싶은지, 왜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20대를 부유(浮遊)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여행을 계속할수록,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동안 내가 뿌린 씨앗의 이유들이 분명해져 갔다. 퍼즐의 조각이 하나씩 맞추어지듯.


ⓒ Yoonhye Jeon

숙소의 공용 테라스는 유리문이 깨진 채로 방치돼 있어 아무도 찾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이면 핫초코, 저녁이면 맥주 캔을 들고 그곳으로 갔다. 발아래로 엉킨 전깃줄이 교차했다. 사거리에는 숙소의 툭툭이 오갔다. 어느덧 마지막 날 밤. 테라스로 시원한 바람이 부니 시드니에 살던 때가 떠올랐다. 니콜라스와 진지한 만남을 막 가지기 시작했을 때.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라면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겠어. 그와 시드니 하버의 예쁜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 이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구나. 이 사람과 함께라면 이 세상의 어떤 일도 헤쳐나갈 수 있겠어.


“니코, 내가 한국을 떠날 때 서울은 회색 빌딩 숲 회색 하늘의 겨울이었어. 한순간 파아란 하늘, 쨍한 햇빛 구름 한 점 없는 여름으로 건너왔지. 시티를 걸을 때 흘리던 땀. 쾌청한 날씨. 쿠지 비치.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했었어…. 오늘따라 왜 이런 것들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네.”


“신기하다. 나도 오늘 아침 시드니를 생각했어. 퇴근하고 집으로 걸어오던 시간들, 집에 가면 네가 맞아줄까 생각하며 걷던 길, 네 옆에 누워 같이 잠드는 것, 그땐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 네가 없던 시드니는 이제 생각이 잘 안 나. 널 만나기 전의 난 별 거 없었거든. 나, 칸에서 27년을 살았어. 상상해 봐. 내가 얼마나 변했을지. 2년 만에 모든 것이 바뀌었어. 시드니에 있던 내가 지금은 캄보디아에 있잖아.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내가 쓴 것, 쓰는 것, 희생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는 없어.”


돈이 떨어져서 귀국 일정을 조금 당겼다. 파산할 때까지 여행할 거라고 농담했는데 정말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간신히 티켓 값만 남겼다. 캄보디아를 떠나는 날에 장대비가 떨어졌다. 끝까지 비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니콜라스는 여권 훼손으로 인해 항공권 발권을 거부당했다. 항공사 본사에서 발권 승인이 안 나서 1시간 반을 카운터 앞에서 기다렸다. 하노이(Hanoi)에서 환승을 하기 때문에 일이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베트남을 두려워했고 그들에게 책임을 추궁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카운터가 닫히기 직전 모든 책임은 니콜라스 본인이 진다는 서약서를 쓰고 티켓을 받았다.


IMG_3852.jpg ⓒ Yoonhye Jeon

작은 공항 1층 청사에서 바깥에 선 비행기가 지척으로 보였다. 뒤로 노을이 너무 붉게 타올라서 그동안 먹었던 나쁜 마음과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나, 마음이 비워지는 중이구나…. 이전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겠구나. 화염과 같은 빛에 휩싸였다. 그 빛이 너무나 강렬해 우리가 곧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었다. 니콜라스가 우리가 한 모든 것에 후회가 없다고 한 말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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