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3
리디아의 부모님은 이탈리아 이민자였다. 남프랑스 곳곳의 여느 이탈리아인들처럼, 제2차 세계대전 뒤 국경을 넘었다. 왜 이탈리아를 떠났는지, 왜 하필 칸이었는지는 모른다. 가까우니까 그랬을까. 남프랑스는 파리보다 이탈리아에 가까웠고 세계대전 중에는 이탈리아 영토에 속하기도 했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들은 칸에서 다니엘, 리디아, 피아레뜨 세 아이를 낳았다. 리디아의 아빠 엘리 피아노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전형적인 가부장이었다. 알콜 중독도 있었다. “아이는 때려야 큰다”며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벨트를 풀었다. 엄마도 아빠에게 맞았다. 그 때문인지 리디아의 엄마는 일찍 죽었다.
리디아가 자라던 1960년대 중후반은 미니스커트가 등장하고 여성의 참정권이 보편화되어가던 때였지만 여전히 가정 폭력은 흔했다. 아빠는 새로운 여자를 만났다. 마지막 정신적 지지대였던 엄마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새엄마는 악독했다. 세 아이는 방치됐다. 리디아는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벗어나려 애썼다. 성인이 되자마자 홀로 니스로 떠났다. 형제애 같은 것도 없었다. 내 몸을 탈출하는 것부터가 우선이었으니까.
리디아는 니스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진짜 대학을 갔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졸업을 앞두고 실반을 만났는데, 그녀보다 네 살이 많은 실반은 키가 크고 유머스러웠다. 제빵사로 일하며 돈도 잘 벌었다. 리디아는 안정감을 느꼈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그녀는 졸업을 포기하고 실반에게 도피했다. 1987년 둘은 결혼했다. 리디아의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신혼집은 실반의 빵집과 가까운 르 꺄네에 자리 잡았다. 르 꺄네는 칸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뒷마을이었다. 그렇게 가족과 떨어지고 싶었건만, 다시 그들과 가까운 곳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무렵 베를린이 통일됐고 동서 냉전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진출 경쟁도 이제 협력의 단계로 접어들 정도로,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나치에 협력했던 비시 정부의 적폐 청산에 대해 시끄러웠다. 새로운 세대, 곧 전후에 태어나 전쟁의 후유증만 겪은 세대, 윗세대의 탐욕이 빚어낸 참상과 세계를 가르는 이념 갈등 속에 자란 이 세대는 자국의 치부를 들추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들은 나라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며, 무엇 때문에 싸우는가. 옳은 일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이 거대하고 멋지게 포장된 담론은 실상 소시민의 삶과 거리가 멀었다. 행복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행복의 목표는 크지 않았다. 실반은 1989년 출시된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슈퍼겜보이)에 푹 빠져 있었고 리디아는 집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쉬었다. 콧대 높은 프랑스 제국의 애국심은 개인의 작은 행복들로 흩어져갔다.
리디아는 일을 하지 않았다. 요리하는 것보다 외식하는 것을 좋아해 실반이 일을 마치고 오면 으레 레스토랑이나 펍에 가 와인이나 맥주를 마셨다. 둘은 술을 좋아했고 취할 때까지 마셨다. 그런 행동은 경미한 알콜 중독에 가까웠으나 사람이 술을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실반이 고된 일을 하는 만큼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돈은 언제나 모이지 않았다.
리디아가 결혼하고 몇 년 뒤 오빠 다니엘 불쑥 찾아왔다. 집을 사려고 하는데 대출 보증인이 필요하다고. 실반은 그를 믿고 보증인에 자기 이름을 썼다. 그러나 다니엘은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 실반은 졸지에 남의 집을 위해 대신 돈을 내야만 했다. 감당할 여력이 안 돼 대출금 반환이 밀렸다. 두 사람의 보금자리는 언제 가압류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레이몽드마저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녀의 집도 가압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레이몽드는 아빠도, 새엄마도, 여동생도 있는 리디아 집 일에 왜 실반 혼자 돈을 대신 갚고 있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왜 다니엘은 실반을 찾아왔을까? 간단했다. 자기 가족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버니까. 그랬다. 처음부터 갚지 않을 요량이었던 것이다. 리디아와 실반에게 다니엘은 그녀의 아빠만큼 끔찍한 사람이었다.
리디아의 여동생 피에레뜨는 의지가 약했다. 아빠의 폭력은 그녀의 트라우마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우울증이 왔다. 알콜 중독 증세도 있었다. 남편 장뤽은 전과가 있는 사람이었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 피에레뜨를 만나 함께 살았다. 그는 어두운 과거가 있지만 그래도 따뜻한 사람이라 기억됐다. 두 사람은 르 꺄네 구시가의 언덕에 집을 구해 살았다. 피에레뜨는 여전히 신경이 쇠약했으며 가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자해를 했다. 이 척박한 태 속에도 생명은 찾아들었다. 딸 루시가 태어났다.
피아노 가문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맞고 자란 아이들은 어딘가 심약한 데가 있었다. 어려움이 닥치면 포기가 빨랐고 무엇에 의존해야만 했다. 엘리 피아노, 이 한 사람이 모두의 인생의 파멸로 이끌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의 부모와 세 자녀 모두 차로 10분 거리인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두들 이 파멸에서 도피하고 싶어 했지만 새로운 세상으로 뛰쳐나갈 자신도 없었다. 그들은 고향을 버리지 않았다. 대신, 가족으로서 책임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