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의 탄생 그리고 최초 기억들

니콜라스 이야기 4

by 전윤혜

1990년 5월 2일 밤 11시 30분, 리디아는 남자 아기를 낳았다. 밝은 금빛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진 천사였다. 빛나는 금발과 진한 눈매는 엄마 리디아를, 조그만 입술과 장난 가득한 미소는 아빠 실반을 닮은 듯했다. 아기의 이름은 니콜라스로 짓고 그 시대 관습대로 미들 네임에는 아기의 외할아버지 이름과 할아버지 이름을 차례로 넣었다. 니콜라스 엘리 로제 리우. 엘리 피아노와 로제 리우를 존경하진 않지만, 이 아이를 있게 한 뿌리는 존중한다는 일종의 작은 표식이었다.


니콜라스는 리디아가 그를 가진 뒤 어떤 9개월을 보냈는지, 그를 낳기 위해 얼마나 아파했는지, 그를 처음으로 안은 순간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모른다.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는 그 순간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 집안에 태어난 것은 그의 선택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고 어른들이 그에게 말해주지도 않았다. 아주 아기일 시절, 천사 같은 얼굴로 예쁨은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테리용 부부 또한 니콜라스를 아주 예뻐했다.


두 살이 된 니콜라스는 구시가의 탁아소에 맡겨졌다. 불행하게도 그곳 파트리시아 원장은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낙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화장실 가고 싶어 할 때마다 거절해 곤욕스럽게 만들었는데, 결국 니콜라스도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다. 원장은 친구들 앞에서 창피한 그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까지 거절했다. 이 사건이 너무나 치욕스러웠던 니콜라스는 같은 탁아소에 다니던 사촌 루시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루시는 자신의 엄마 피에레뜨에게 말하고 말았다. 피에레뜨는 리디아에게 알렸고 리디아는 경찰에 파트리시아를 신고했다. 그러나 파트리시아의 남자친구는 동네의 경찰이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니콜라스의 생애 첫 기억이다. 우리 나이로 네 살 때 일이었다.


유치원으로 올라간 니콜라스는 늘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다녔다. 하루는 같은 반의 마빈이 자동차를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았다. 간식 시간이 되자 마빈은 그의 간식마저 뺏으려 들었다. 가질수록 더 가지려 드는 인간의 이기는 세 살바기 아이에게도 유효했다. 니콜라스가 거절하자 싸움이 일어났다. 작은 꼬마 둘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의 위협을 느꼈다. 순간 마빈의 긴 금발을 잡아당겨 바닥에 찧었다. 그리고는 자동차를 되찾았다. 마빈은 이후로 그의 것을 탐내지 않았다. 첫 싸움이었다.


실반과 리디아는 밤마다 와인에 취해 있었다. 그럴 때면 니콜라스는 자기 방의 침대와 서랍장 사이의 좁은 틈에 들어가 있곤 했다. 몸집이 작은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이 공간을 그는 퍽 안전하다고 느꼈다. 실반과 리디아가 언성을 높일 때면 니콜라스는 그곳에서 인형과 함께 잠을 청했다. 다툼의 횟수가 잦아졌다. 실반이 다니엘, 곧 니콜라스의 외삼촌에게 선 보증 때문이었다. 실반이 버는 돈은 족족 다니엘의 빚을 갚는 데 나갔다. 돈 문제는 어린 니콜라스가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아빠와 엄마 사이가 점점 나빠지는 것만을 보았다. 그들은 돈이 없어서 싸웠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싸웠고 삶이 버거워서 싸웠고 기분이 나빠서 싸웠다.


여섯 살이 된 니콜라스는 쥘 페리 초등학교의 예비학교에 들어갔다(예비학교는 우리나라의 학제로 초등학교 1학년쯤이다). 19세기 프랑스 교육 개혁을 통해 세계 최초로 의무 교육을 시행한 정치인 쥘 페리의 이름을 딴 학교였다. 담임 선생님인 무슈 테스토리스는 오십 살쯤 된 반백의 인자한 분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소금후추머리라고 불렀다.


니콜라스는 받아쓰기를 못했다. 알파벳은 깨쳤지만 제각기 다른 알파벳 조합들이 비슷한 소리를 내는, 불규칙한 프랑스어 발음이 헷갈렸다. 실수를 반복하자 그만 자신감을 잃었다. 소금후추 선생님은 그림 그리는 법, 숫자 세는 법도 열심히 알려줬지만 니콜라스는 자신이 하나도 잘하는 것이 없다고 느꼈다.


학교는 그저 의무여서 갈 뿐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작 여섯 살의 생각이 그랬다. 무덤 속의 쥘 페리가 들었다면 통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니콜라스는 나이에 비해 퍽 조숙했는데, 엄마가 떼를 쓰거나 무엇을 조를 때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어른처럼 취급됐다. 어릴 때 꾸는 환상이나 꿈도 없었다. 엄마는 산타클로스가 진짜 있냐는 그의 물음에 "네가 믿으면 있어, 믿지 않으면 없는 거고." 하고 답했다. 니콜라스는 그 이후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산타클로스가 주는 게 아니니 굳이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며 미리 달라고 했다. 그건 거절당했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는 그랬다.


니콜라스는 공부 대신 친구들을 웃기는 데 집중했다. 관심을 받고 싶었다. 앞니가 빠진 꼬마는 웃음이 많았다. 부모님은 니콜라스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진도를 얼마나 따라가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고, 아니, 신경을 쓸 생각조차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본인들의 결혼 생활이 위태로웠으니까.


부부싸움은 일상이 됐다. 하루는 다툼이 하도 사나워 잠이 들 수 없었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살금 방문 밖으로 나가 보니 거실에 핏자국이 이리저리 떨어져 있었다. 아빠가 흘린 피였다. 엄마가 밀치는 바람에 아빠가 테이블 위로 넘어졌다. 식탁 위 잔과 접시들이 깨지고 살이 찢어졌다. 고성이 오가는 밤이 이어졌다. 니콜라스는 잠들기 위해 귀를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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