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5
결국 리디아와 실반은 따로 살기 시작했다. 1997년, 니콜라스가 일곱 살이었다. 그는 졸지에 두 집을 오가며 살게 되었다. 엄마와는 수요일 밤부터 화요일 아침까지, 아빠와는 화요일 하교 후부터 학교를 가지 않는 수요일 온종일을 보냈다. 실반은 니콜라스를 위해 수요일 휴무를 받았고, 전업주부로 살던 리디아는 별거를 시작하고서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취직했다.
예비학교가 끝날 무렵 어느 수요일, 실반이 축하의 의미로 니콜라스에게 책가방을 사줬다. 그가 메기엔 조금 컸지만 아빠가 사준 가방이니 소중했다. 니콜라스는 그날 밤 아빠가 엄마 집으로 데려다줄 때까지 내내 가방을 메고 있었다. 딩동. 문을 연 리디아는 새 가방을 보고 말했다. 얘는 그 가방을 메기에 너무 작은 애라고, 당신은 도대체 당신 자식을 알긴 아냐고, 당신이 아빠의 자격이 있냐고 쏘아붙였다. 그녀는 가방을 벗겨 실반 얼굴에 던졌다. 가방은 바닥에 팽개쳐졌고 실반은 인사도 없이 뒤돌아 갔다. 니콜라스는 조용히 울었다.
니콜라스는 새 담임 선생님인 마담 다쥬망이 마녀 같다고 생각했다. 해리포터의 맥고나걸 교수처럼 생긴 그녀는 인내심이 없었다. 수업을 알아듣는 아이들과만 수업하는 그녀의 방식 때문에 점차 몇몇 아이들이 소외됐다. 열린 사고를 존중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프랑스 교육은 사실 ‘이해 능력이 있는 아이들의’ 열린 사고를 존중했다. 그 전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도태됐다. 그 중엔 니콜라스도 있었다.
니콜라스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자신도 선생님에게 시간을 쏟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프랑스어는 점점 어려워졌고 난독 증세가 나타났다. 글을 못 읽으니 다른 과목도 배울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유급을 하라고 했다.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 유급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기본을 이해해야 다음 것을 배울 수 있으므로 기본기가 부족하다 여겨지는 아이들은 종종 유급을 당했다.
여덟 살, 유급을 하는 일 년 동안 니콜라스는 자신이 학교를 싫어한단 것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모호하던 ‘의무적인’ 기분은 자신이 학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더 이상 학교에 시간을 빼앗기기 싫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공부를 안 하면 다시 유급을 할 것이고, 유급을 할수록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은 늘어날 것이다. 결론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는 학교를 최대한 빨리 졸업해서 하고 싶은 걸 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니콜라스 식의 열린 사고였다.
유급한 해의 담임 선생님은 은퇴를 앞둔 마담 메조뇌브였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가 담배를 피우던 그녀는 전형적인 옛사람으로, 아주 엄격하고 딱딱한 구식 교육법을 고수했다. 난독증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언어 발달 시기를 이미 놓친 것이다. 그는 M과 N처럼 비슷한 발음과, b, d, p, q 같은 비슷한 알파벳을 구분하지 못했다. 리디아도 심각성을 깨닫고 무언가 해보려 했지만 이내 귀찮아 그만두었다. 결국 학교에서 언어치료를 권했다. 매주 수요일 아빠와 함께 언어치료사에게 가 받아쓰기를 했다. 꼬박 사 년을 다녔다. 치료비는 비쌌지만 일종의 장애에 해당했으므로 나라에서 비용을 대신 내줬다.
학교는 네 시 반이면 마쳤지만 부모님이 데리러 올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여섯 시까지 열려 있었다. 프랑스에선 초등학생이 등하교할 때 항상 보호자가 동행해야 했다. 법적 의무는 아니어도 그렇게 했다. 아무리 짧은 거리여도 유괴나 교통사고, 괴롭힘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의 동네엔 스쿠터 타는 십 대와 좁은 인도, 음침한 공원, 슬럼가가 있었고 해가 지면 누군가 밖에서 심심찮게 마리화나를 피웠다. 아이들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않았고 부모들도 그랬다. 그들에게 혼자 다니는 아이는 집시의 아이였다.
방과 후 어느 날 니콜라스는 학교 안을 떠도는 클레르그를 발견했다. 그는 부모님을 기다렸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고 싶지도 않아했다. 그들은 자신의 신세가 비슷하다는 걸 직감했다. 가난하고 화목하지 않은 집. 서로를 딱하게 여긴 둘은 각자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여덟 살 사내아이 둘의 약속은 험한 세상으로부터 서로를 지켜주는 것이었다.
리디아는 여섯 시가 지난 후에도 그를 데리러 올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동산 거래로 받는 인센티브에 매혹돼 미친 듯이 일을 했다. 돈의 맛을 보니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 옆 루이제트 할머니에게 맡겼다. 니콜라스는 그곳에서 간식을 먹고 엄마를 기다렸다. 루이제트는 커피를 많이 마셨다. 그녀는 커피에 각설탕을 한 개 반 넣었는데, 니콜라스는 루이제트가 설탕을 어디서 꺼내는지 눈여겨보았다가 항상 남은 반 개를 훔쳐 먹었다. 니콜라스는 설탕에 중독되었다. 니콜라스도 엘리 가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에 결핍된 아이였다.
엄마는 일곱 시쯤 그를 데리러 왔다. 집에 오면 엄마는 단 것을 좋아하는 니콜라스를 위해 설탕을 잔뜩 친 타르트나 초콜릿 케이크를 구워줬다. 니콜라스는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며 습관적으로 설탕과 누텔라를 수저로 퍼먹었다. 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당의 한계를 넘어 종종 위경련이 일어났고 마른 몸에 배만 둥그렇게 나왔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만 먹었고 먹기 싫은 건 먹지 않았다. 부모님도 강요하지 않았다.
또 니콜라스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엄지 손가락을 빨았는데, 그러지 않으면 무언가 불안정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여름 캠프를 위해 처음으로 가족을 떠난 니콜라스는 깨달았다. 자기 외엔 아무도 손가락을 빨지 않는다는 것을. 이것이 무언가 미숙한 행동이란 걸 알게 된 그날 그는 집착을 그만두었다. 그는 깨달으면 바뀌었다. 알려주는 사람이 딱히 없어 스스로 깨닫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그 충격은 아주 큰 것이어서, 단칼에 그만둘 수 있었다. 니콜라스는 그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좋고 나쁜지 알려줄 이가 필요한 평범한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