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6
아홉 살. 첫 학년을 유급한 니콜라스는 남들보다 한 살이 많았다. 반은 유급한 아이들과 조기 진급한 아이들이 한데 섞여 복잡했다. 세기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컴퓨터 바이러스 괴담이 퍼질 때였다. 그는 차라리 세상이 여기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숭숭한 인생이 지구 멸망으로 끝나면 얼마나 간단하고 좋은가. 집에 컴퓨터가 없어 바이러스에 공격받을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지구가 멸망하는 데에는 나쁜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실은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어느 비 오는 오후, 애완용 거북이와 토끼, 그리고 닭까지 키우던 루이제트 할머니의 정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니콜라스는 길에 나온 달팽이들이 너무 귀여워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집에 가는 길에 자꾸 주머니가 움직이는 것 아닌가. 조용히 시키려고 손바닥으로 눌러버렸더니 주머니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넣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대로 바지를 세탁기에 넣고 엄마가 하던 것처럼 버튼을 눌렀다. 세탁기의 뚜껑조차 열기 버겁던 때였다. 니콜라스는 자신이 한 가족을 몰살했다는 죄책감에 며칠을 고통받았다. 이후 절대 길 위의 생명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해 여름 생애 처음으로 할머니의 고향 르망에 갔다. 20세기의 마지막 르망 24시(24 Heures du Mans)가 열리고 있었다. 차들이 24시간 동안 달리는 이 장거리 경주는 모나코 그랑프리,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과 함께 세계 3대 자동차 레이스로 꼽혔다. 허술한 펜스 너머 그랑 투리스모에서 보던 슈퍼카들이 300킬로미터 속도로 쌩쌩 지났다. 그 굉음과 속도와 떨림. 사람들이 왜 차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순간 메르세데스 벤츠의 차가 속도를 이기지 못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장내에 사고를 알리는 아나운서의 방송이 나왔다. 길이길이 회자되는 끔찍하고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니콜라스는 딱히 위험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 위험은 주차장에서도, 길가에서도, 트랙에서도 언제나 도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해는 벤츠가 르망 24시에 참여한 마지막 해였다.
달팽이와 벤츠가 죽고 새천년이 왔다. 리디아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올리비에 아저씨는 모터바이크 샵을 열 자리를 알아보다가 그녀와 눈이 맞았다. 니콜라스는 올리비에가 싫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간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아니지만, 그때의 그에게 아빠는 영원히 실반이었고 그에게 실반은 여전히 영웅이었다. 영웅의 자리를 이상한 아저씨가 대신하게 둘 수 없었다. 소중한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남으로 대체되는 것을 보며 그는 인생이 의미 없다고 느꼈다. 학교도, 집도, 친구도 부질없었다.
니콜라스는 실반을 만나는 수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수요일이면 그들은 다리 위에 앉아 지나가는 모터바이크를 구경하거나, 스쿠터를 타고 동네를 드라이브하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는 게임을 했다. 실반은 게임광이었다. 네모난 팩을 꽂아 게임하던 시대였다. 니콜라스는 라이언킹과 알라딘 같은 작은 게임으로 시작해 이내 그와 자동차 게임을 했다. 고사리 손의 작은 아이가 닷지의 바이퍼와 도요타의 수프라를 몰았다. 지금은 전설이 된 그랑 투리스모의 첫 버전이었다.
실반은 유머가 있었다. 니콜라스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주겠답시고 머리를 수도승처럼 밀어놓기도 했고, 주유소에서 만난 할리데이비슨 아저씨에게 니콜라스를 태우고 한 바퀴만 돌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실반은 그를 태울 때면 액셀과 브레이크를 반복하며 ‘더럽게’ 운전했다. 그의 운전은 니콜라스에게 차가 사람을 먹는 영화 ‘크리스틴’처럼 한 편의 호러로 기억됐다. 운동장에서 단둘이 축구를 할 때면 그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며 니콜라스의 공을 비껴갔다. 니콜라스는 발이 아릴 때까지 공을 찼다.
초등학교 마지막 해가 되었다. 니콜라스는 혼자 힘으로 등하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열한 살이었다. 실반은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며 그에게 휴대폰을 사주었다. 문자 두 줄이 보이는 작은 초록색 액정에 숫자 패드에만 덮개가 가려진 소니 에릭슨 사의 폴더폰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휴대폰을 가진 아이였지만 자랑하지 않았다. 아빠가 데리러 오는 시간이나 엄마가 어디다 자신을 내려주면 될지, 등을 물을 때만 꺼냈다. 사실 그의 휴대폰은 실반과 리디아의 직접 연락을 대체할 수단이었을 뿐이다. 마치 비둘기처럼.
가정 문제로 싱숭생숭하던 그를 붙잡은 건 담임 선생님 마담 솔레르였다. 그녀는 학업에 관심이 없는 학생과 어떻게 대화하는지를 알았다. 복잡한 미사여구 대신 언제나 간단한 예를 들었고 아이들이 헷갈리는 부분은 몇 번이고 반복했다. 빨리 이해해서 외우듯이 넘겨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아는 어른이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솔레르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그녀를 존경했다. 저도 모르게 결과가 좋아졌다. 평소에 절반만 맞던 수학이 만점 가깝게 올라갔다. 받아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니콜라스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보통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그해 어린이용 운전면허증을 따러 간 날 이야기다. 프랑스는 어린이 안전 교육의 일환으로 어린이 면허증을 발급한다. 하루 동안 어떻게 차를 타고, 신호를 지키며,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지 교육을 받은 뒤 열 문제를 풀고, 작은 주행로에서 운전 연습을 하는, 면허 필기와 실기의 어린이 버전이랄까. 두 가지를 잘 통과한 아이 가운데 점수를 매겨 우승자를 뽑았다.
도로 주행을 하던 니콜라스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은 양 떼처럼 앞을 따라 한쪽으로만 갔다. 왜 다들 같은 길로만 갈까? 아무도 다른 길이 금지라고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는 무리에서 떨어져 다른 길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리디아는 “몽 디유(Mon Dieu, 신이시여)...” 하고 머리를 감쌌다. 일등으로 들어온 니콜라스에게 다른 부모들은 축하는커녕 그의 운전이 무효라며 선생님에게 실수를 바로잡아달라고 했다. 그는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그것을 실수라고 단정 짓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안전 교육의 목적대로 안전하게 도착했음에도. 금지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으레 금지라고 생각한 그들의 상상력이 좁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랬다. 생각 없이 대중을 따르고, 그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멀리했다. 필기에서 한 문제를 틀려 8등으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자그만 트로피를 받았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트로피였다.
하루는 마담 솔레르가 집에 돌아가면 티비를 켜라고 했다. 뉴욕의 무역센터가 무너지고 있었다. 네모 박스 안의 빌딩은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세상을 바꿀 큰일이 벌어졌음에 틀림없었다. 어른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안타까워하는 그들과 달리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인상이 깊을 뿐이었다. 마치 르망 경주 때의 벤츠처럼 말이다. 사람에 대한 니콜라스의 감정은 메마른 것이었다. 어쩌면, 달팽이에 대한 것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