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7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충격이 가셔 가던 가을이었다. (그해 월드컵은 프랑스 압승이 예상되던, 월드컵 첫 출전국 세네갈과의 경기 패배를 시작으로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한 치욕의 해였다.) 니콜라스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사거리에 있는 캉펠리에르 중학교에 입학했다. 260명이 다니던 쥘 페리 초등학교에서 1200명이 바글대는 정글로 오니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공부하는 것도 처음, 매 시간 교실을 옮겨 다니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갑자기 어른이 된 듯 행동했고 상급생 형들은 키가 크고 거칠었다.
언어 치료와 마담 솔레르의 노력으로 겨우 극복한 난독은 중학 프랑스어의 복잡하고 불규칙한 용법으로 인해 다시 도졌다. 금목걸이에 분홍 옷만 고집하던 핑크 우먼 마담 란자의 프랑스어 수업은 그녀의 패션만큼이나 난해했다. 수학 시간에는 x가 문제였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계산하라는 거지? 질문을 하면 아이들에게 눈총을 받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니까 물어보는 것도 가능한데, 이해하지 못하는 채로 질문을 하면 아이들은 놀리고 짜증 냈다.
중학교 아이들은 짓궂었다. 서로 무안을 주었고 그걸 견뎌야만 강한 아이로 인정받았다. 이도 저도 아닌 니콜라스는 그냥 질문하는 걸 멈추었다. 어떻게 공부를 잘할까 보다 어떻게 사람들을 웃길지 생각했다. 발표라도 하는 날에는 아는 게 없으니 저절로 스탠딩 코미디가 되었다. 니콜라스는 웃긴 놈으로 기억되었다.
학교엔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가 선택할 수 없었던 진짜 가족 대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친구들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작은 섬 카포 베르데(Capo Verde)에서 이민 온 스테판과 모로코 출신의 카림, 그리고 그와 같이 게임을 좋아했던 그자비에와 시간을 보냈다. 소피와 엠마, 로라도 있었다.
중학교는 매일 하교 시간이 달랐다. 일찍 마치면 니콜라스 무리는 축구를 하거나 길거리에서 놀았다. 술과 담배엔 딱히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는 술과 담배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졸업 시험(Brevet, 중학교 학력 인정 국가 고시)을 잘 치려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온 친구가 있을 정도였다. 어른들이 워낙 와인을 반주삼고 담배를 많이 피니 아이들의 심리적 거리감도 그만큼 가까웠다. 니콜라스에겐 확고한 규칙이 있었다. 술과 담배는 하지 않을 것. 밤마다 술을 마시고 매일 한 갑씩 담배를 피던 부모님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당시 한 반에 7~8명은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니콜라스 세대에게 생김새가 다른 아이들은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모두 프랑스인일 뿐. 아직까지 엄마나 할머니 나이대의 어른들은 “아라비아 인들과 어울리지 말아라” 했지만 그는 성격이 좋고 자기와 잘 맞으면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남들이 뭐라든.
아라비안 친구들 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질 나쁜 아이들의 대부분은 아라비안이었다. 아라비안 친구들은 형제가 많았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는 누나와 형도 많았다. 그냥 형이 아니라 진짜 총을 쏘고 마약을 거래하는 무서운 형이었다. 그들은 닭장 같은 아파트에 같이 살았다. 독립된 집에 사는 프랑스 인들의 오랜 전통과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아파트를 ‘씨떼’라고 불렀고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조심해야 했다.
중학교의 일진들은 라카이(Racaille, 양아치)와 스카터(Skater, 멋 부리는 아이들) 두 부류로 나뉘었다. 두 그룹이 패싸움이라도 하는 날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화난 라카이들은 주차된 스쿠터를 발로 차고 던졌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아는 형과 누나로 연결된 거대한 라카이 조직은 경찰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하루는 계단을 내려오는데 한 아라비안 라까이가 반 친구 안소니를 무섭게 때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서서 보기만 했다. 무슨 용기에선지 니콜라스는 그에게 다가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다. 라까이는 그를 비웃곤 계속해서 안소니를 때렸다. 니콜라스가 ‘불쌍한 놈’이라 조롱하자 그가 “네 엄마만큼 불쌍할까” 대답했다. 니콜라스는 ‘엄마’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대로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친구들은 둘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하자 달려와서 말렸다.
니콜라스는 이날 그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는 누군가 이유 없이 당하는 것은 못 보았다. 또 그의 엄마가, 가정이 어찌 되었든 그것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을 모욕을 해야 한다면 그건 자신 뿐이라 생각했다. 라까이를 무서워하거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더 잃을 게 없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제 몸은 건사해야 했다. 리디아가 점포를 중개하다 알게 된 한국인 마스터 박의 태권도 도장에 등록했다. 한글로 ‘니꼴라’라 적힌 도복을 입고 일 년을 열심히 다녔다. 하루는 올리비에 아저씨의 아들 아드리용과 버스를 기다리는데 흑인 형들이 다가왔다. 덩치 큰 형들 몇이 아드리용을 둘러싸고 괴롭혔다. 그만 하라고 말리다가 그도 맞았다. 태권도에서 배운 대로 해 보려고 했지만 형들은 훅 치고 들어와 무섭게 때렸다. 암담했다. 이유 없이 맞는 세상이라니.
복싱을 배우면 조금 나을까, 싶어 프랑스식 복싱장에 갔다. 특정 부위를 터치하면 점수가 올라가는 그런 춤 같은 스포츠론 큰 형들을 이길 수 없었다. 캄보디아의 펜착 실랏과 태국의 무에타이를 기웃거렸다. 프랑스 아이들에겐 정정당당한 경기용 스포츠보다 ‘싸움’에 대비한 호신술이 필요했다.
그쯤 리디아와 실반은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니콜라스는 이제 수요일을 쉬던 초등학생도 아니고, 굳이 학교를 데려다주지 않아도, 집에 늦게 들어와도 스스로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들이 ‘함께’ 해야 할 의무는 끝난 것이었다. 니콜라스도 서로와 있었던 일을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았다. 슬펐지만 한편으론 상관없었다. 혼자 노는 데 익숙했던 그에게 형제가 생겼으니까. 학교가 마치면 집에 가지 않았다. 리디아에겐 어딜 가고 누굴 만나는지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자신을 찾을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