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19
니콜라스는 계속되는 여사장의 히스테리에 주유소를 그만뒀다. 2016년 가을, 스물다섯이었다. 실업급여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니 위험을 안고 렉서스를 산 것이 후회가 됐다. 실수라고 생각했다. 한 달 뒤 렉서스를 팔았다. 9개월 간의 렉서스. 그의 서른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유한 차였다.
대출금은 바로 상환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면 목돈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던 바다. 그의 우울증은 새로운 시작을 할 재정적 뒷받침이 없어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다시 미래를 생각했다. 이번엔 돈이 있으니 달랐다. 남의 돈이었지만 그래도 갚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니콜라스는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첫째, 취미로 좋은 모터바이크를 몰고 싶었다. 모터바이크는 그의 가장 큰 취미지만 지금까지 돈이 부족해 낡은 기종만 타 온 그였다. 이듬해 1월, 그의 오래된 스즈키 모터바이크에 4,100유로를 얹어 중고(지만 깨끗한) 트라이엄프 모터바이크를 샀다.
두 번째, 좋은 차를 모는 일을 하고 싶었다. 자신이 운전을 좋아한다는 건 렉서스를 타며 더욱더 확실해진 터였다. 부호들이 여름을 지내러 오는 칸에는 고급 차로 VIP를 의전하는 전문 기사들이 있었다. 그해 4월에 2,700유로를 내고 전문 기사 면허증을 땄다. 드라이빙은 물론이고 리무진 의전 에티켓 등을 배웠다. 면허 학원 선생님은 의전 서비스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니콜라스는 그곳 계약직 기사로 채용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렉서스를 몰았던 경험이 플러스가 됐다. 실수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듬해 조금 더 전문적인 리무진 회사로 옮겼다. 여름 시즌이 한창이던 6월, 영어가 안 된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납득이 되었다. 중동의 석유 부자들과 러시아 부호, 미국과 호주 상류층이 찾는 여름의 칸은 국제 도시였다. 칸 영화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니콜라스는 종종 의사소통의 장벽을 느꼈다. 사장은 영어 회화를 늘려 오면 내년에 꼭 다시 채용하겠다고 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날 그의 머릿속에 불이 켜지듯, 한 단어가 들어왔다. 런던. 그날 바로 비행기표를 뒤져 가장 싼 날을 예약했다. 일단 가서 둘러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스물여섯 살 니콜라스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독일과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여섯 나라를 면하고 영국과 30킬로미터 바닷길로 이웃한 프랑스에서 말이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왜 프랑스어를 두고 영어를 하는지 이상했다(이 대목을 이야기할 때 니콜라스는 자신이 너무 촌뜨기 같다며 웃었다). 모국어인 프랑스어마저 난독이 있는 그가 학교에서 영어를 제대로 배웠을 리 없다. ‘헬로’와 ‘마이 네임 이즈 니콜라스’ 정도를 알았다.
런던엔 외사촌 루시(두 살 때 탁아소를 다니던 그 루시. 피에레뜨의 학대를 피해 스무 살이 되자마자 런던으로 도망쳤다.)가 살았다. 루시는 런던을 일주일 구경시켜줬다. 캠든 거리와 피카딜리 서커스, 템즈의 타워브리지를 걸었다. 이 생기. 바쁘고 크고 아름다운 도시. 인구 천만에 육박하는 국제 도시는 신세계, 신세계였다.
칸에 돌아온 그는 런던에 일자리가 있는지 친구들을 수소문했다. 마침 친구 지인이 니콜라스를 돕겠다고 나섰다. 삼 주 뒤 칸 생활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브렉시트 투표가 막 찬성 통과되던 여름이었다. 그는 옥스포드 스트릿의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주방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 영어를 못해서 주방에서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조급하지 않았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숙소는 가장 싼 호스텔의 32인실을 잡았다. 새로운 시작이란 설렘에 방의 발 냄새와 코 고는 소리를 참을 수 있었다. 집을 보러 가던 9월 15일, 부동산이 있던 파슨스 그린 동네 지하철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 차질이 생겼음에도, 일주일 만에 집을 구해 나갔다. 영국은 보증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문득 5년 전 리옹에서 겪었던 수모가 떠올라 코웃음이 났다.
18세기 옥스포드 백작이 사들여 이름 붙은 옥스포드 스트릿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붉은 벽돌 건물이 늘어선 쇼핑 거리였다. 자라와 막스앤스펜서, 톱숍의 커다란 이니셜이 반짝였고 빨간 2층 버스가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녔다. 그런 걸 보는 출퇴근길마저 즐거웠다. 퇴근 후엔 동료들과 펍에서 축구를 보곤 했다. 반오십 년을 하얗고 낮은 집들이 있는 바닷가 도시에서 보낸 니콜라스는 런던이 주는 생기에 완전히 매료됐다.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자유로웠다. 익숙한 영역에서 벗어나니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할 수 있었다. 족쇄를 벗은 듯했다.
그는 깨달았다. 그는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것들을 얘기하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단 걸. 사람을 웃기고 미소 짓게 만드는 게 가장 기분 좋은 사람이란 걸. 규칙에 갇혀 효율적으로 사는 것보다 자유로운 곳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게 더 즐거운 사람이란 걸. 런던이 어둔 과거에 가렸던 그의 모습을 찾아주었다.
닫혔던 마음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비로소 그의 과거를 받아들였다. 자신의 삶을 저주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사랑과 배움의 부재로부터 비롯한, 밖으로 벗어나갈 방법조차 모르던 삶. 원인을 모른 채 도피하고만 싶어 허우적댔던 시간들. 허우적댈수록 허무해지던 기분. 원인은 하나였다. 그는 그의 삶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던 과거들을 받아들이자 신기하게도 아픔이 줄었다. 억울하고 슬픈 마음도 점차 사라졌다. 니콜라스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