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20
멕시코 레스토랑 토르티야에는 영국인, 폴란드인, 인도인, 프랑스인이 섞여 일했다. 그는 레스토랑 지하에서 6개월을 타코와 부리또를 말았다. 지하의 갱스터 래퍼(Wrapper). 레스토랑 사장은 마감 후 스태프들에게 병맥주를 한 병씩 지원했다. 팻말을 ‘Close’로 돌린 뒤 테이블에 걸터앉아 코로나를 마셨다.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 밤들을 보내면서 손짓 발짓으로 통하던 영어는 점차 문장의 형태가 되어 갔다. 문장 만드는 형식을 외워서 써먹는 것보다, 자꾸 들어서 형식을 유추하는 것이 잘 맞았다. 그는 태생이 귀납적인 사람이었다. 이제야 알게 됐다. 문자와 문법에 약했던 것도, 방정식을 푸는 것보다 기계를 고치는 게 좋았던 것도,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것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을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주문을 알아들을 정도가 되자 드디어 지하의 주방을 탈출해 캐셔로 나왔다. 비건과 베지테리언, 견과류 알러지와 글루텐 프리, 할랄과 코셔 주문이 오가는 테이블에서 영어는 점점 늘어갔다. 호스텔의 친구와 친구의 친구, 하우스메이트와 친구들, 레스토랑 스태프들 모두가 새로웠다. 2018년 새해 전야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위스키를 마시고 얼어붙은 거리에서 카운트다운을 했다. 코끝에 자유가 스쳤다.
런던에서 만난 친구들은 대부분 어렸다. 니콜라스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처음으로 대학생 문화를 맛보았다. 대학교가 없는 칸, 그리고 더욱이 직업학교를 나온 자신의 삶과는 먼 그런 삶이었다. 사립학교 학생들은 어딘가 짓궂은 데가 있었지만, 신선했다. 하우스메이트 기욤은 경영 교육을 받으러 온 파리의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 프랑스 공학, 경영 분야의 프랑스 제1 대학교) 대학생이었다. 유급의 대명사 니콜라스와 월반의 대명사 기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지만, 또 국제통화기금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기욤과 기사로 일하던 니콜라스의 이야기 주제는 달랐지만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 새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웠다. 귀중한 자산들. 그의 인생은 확장되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여름 시즌을 맞아 다시 칸으로 돌아왔다. 고객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영화제 외에도 국제 방송광고 마켓(MIPCOM), 국제 부동산 박람회(MIPIM) 등을 바쁘게 치르고 또 다른 일정인 칸 국제광고제(Cannes Lions)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창 바쁠 시기에 니콜라스에게 일이 배당되지 않았다. 회사가 행사 의전보다 개인 VIP에 주력하며 고객이 줄었는데, 경력 기사부터 일이 돌아가다 보니 니콜라스가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대신 사장은 그에게 우버를 시켰다. 일하느라 바빠야 할 국제 행사 시즌에 슈트와 구두를 차려 입고 대기만 하다 저녁이면 오천 원, 만 원을 벌기 위해 우버 콜을 잡았다. 전문 기사의 월급은 운전 건수당 계산되는 시스템이었다. 월급이 채워질 리가 없었다. 처음 계약과 다른 부당한 처사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버를 하려고 지금껏 투자하고 고생한 것이 아니다. 니콜라스가 제일 먼저 사표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들도 그만두었다.
조금 더 큰 회사에 이력서를 돌렸다. 킹덤 리무진과 샤베(Chabé). 두 회사는 칸의 3대 호텔인 마제스틱, 칼튼, 마르티네즈 호텔의 고객을 도맡고 있었다. 2018년 6월 20일 아침, 샤베에 이력서를 주고 나와 스테판을 만났다. 그의 차에 올라타 안부를 묻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오후에 급하게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지금 당장 계약을 하자고. 스테판은 그를 다시 사무실에 데려다줬다. 사장 장이브는 계약을 마치자마자 칸에서 한 시간 떨어진 상트로페(Saint-Tropez)로 가서 고객을 만나라고 했다. 그의 첫 고객은 모로코의 왕자였다.
상트로페로 가는 길. 벤츠의 S클래스를 타고 해안을 따라 달렸다.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좋은 차를 모는 일을 하고 싶어- 오래도록 돌고 돌아온 그의 꿈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어릴 적 아빠와 다리에 앉아 구경하던 차와, 올리비에 아저씨가 선물해준 스쿠터, 그를 숨쉬게 한 중고 모터바이크와 나락까지 몰았던 우울증, 지푸라기 잡듯 시작했던 주유소 생활과 실수라 여겼던 렉서스, 런던에서 경험과 우연처럼 맞아떨어진 샤베와의 타이밍- 어릴적 기억과 아픔과 실수와 우연이 모두 모여,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