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오너가 된 주유소 직원

니콜라스 이야기 18

by 전윤혜


바닥을 치고 올라오자 정신이 단단해졌다. 돈도 없는 주제에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려던 그의 생각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었다.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이번엔 이것저것 따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집에만 있는 일상을 하루 빨리 바꾸는 것이 그를 살리는 길이었다.


어딜 가면 일할 수 있을까? 남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면 빨리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주유소는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았다. 예상은 맞았다. 칸의 한 주유소에 단기 아르바이트로 취직했다. 여름 시즌이 끝나자 집 앞 대형마트에서 재고 관리를 했다. 그러던 중에 주유소 사장님이 전화가 왔다. 그라스에 있는 주유소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잠깐 일한 경력이 도움이 돼 정규직 캐셔가 되었다.


프랑스 주유소의 시스템은 손님이 셀프로 주유한 뒤 직원이 있는 주유소 상점에 들어와 결제를 하는 시스템이다. 니콜라스는 가게를 보고 계산을 받았다. 오후 2시부터 8시 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했다. 쉬운 일이라 피곤하지 않았다. 일을 한다는 자체가 기뻤다. 비록 늙고 깐깐한 여사장이 매일같이 히스테리를 부렸지만 말이다.


실없는 유머와 스몰 토크를 좋아하는 니콜라스는 손님들에게 늘 웃음을 주었다. 일 년 동안 본사에서 주는 우수직원상을 7번이나 받았다. 고객을 가장한 직원이 항목별로 평가해 주는 상이었다. BP 그라스 지점은 그 덕분에 운영 점수를 높게 받았다. 그에게 부상으로 아이폰7이 내려왔다. 열대 섬으로 가는 여행권도 2번이나 나왔지만 그건 사장이 가져갔다. 그래도 기뻤다. 어쨌거나 자신의 서비스가 인정받는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사장을 2주나 안 볼 수 있었으니까(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어찌나 고마움을 표했는지 모른다). 주유소의 월급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노동을 하며 얻는 기쁨,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잃었다고만 생각한 미소도 되찾았다.


둘도 없는 동료 로랑도 만났다. 모터바이크 사고로 무릎뼈를 잃었던 로랑은 결국 니콜라스의 이야기에 끌려 다시 모터바이크를 사고 말았다. 그들은 종종 함께 맥주를 마시고 풋살을 하고, 모터바이크 트립을 다녔다. 취미가 맞는 친구까지 생겼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다만, 평생을 주유소 캐셔로 살고 싶진 않았다. 이곳에 뼈를 묻을 게 아니라면 지금부터 한 발짝씩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저녁 시간이 남으니 우버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일 년 전 니스에 우버 서비스가 도입되며 한창 떠오르던 때였다. 영업 면허도 필요 없이, 차만 있으면 택시처럼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우버를 하려면 고급 승용차가 필요했다. 니콜라스는 투자 개념으로 중고 렉서스 세단을 샀다. 12,900유로. 우리 돈 1,700만 원 정도 되었다. 정규직으로 당길 수 있는 대출을 모두 당기고 4년 상환을 걸었다. 어차피 주유소와 우버를 하면 다 갚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지리 운도 없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버가 출시 5년 이내의 차만 등록 가능하도록 룰을 바꾸었다. 니콜라스의 차는 2009년식, 그해는 2015년이었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스물다섯 살 청년은 졸지에 오로지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렉서스를 산 꼴이 되었다. 넓은 회색 세단은 대부(레이몽드의 막내 동생이자 니콜라스의 작은삼촌)를 만나러 르망에 가거나 할머니 레이몽드를 모시고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들을 다니는 데 썼다. 좋은 차를 모니 기분은 좋았지만 기분이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아니었다.


렉서스에 회의가 들 무렵 정기 점검을 위해 정비소에 갔다. 가끔 매연이 많이 나기도 했고. 고장 난 매연 정화 장치의 교체 가격을 들은 순간 그는 실감했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급 차를 몰 수 없겠구나... 부품은 그의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4년 상환을 약속한 대출 이자는 그 시간에도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