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17
온라인 게임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면 되니 밖으로 나갈 필요는 더욱 없어졌다. 그동안 많은 시간을 쏟은 만큼 그의 실력은 좋았다. 현실에서 못 받던 인정을 이곳에서 받았다. 게임으로 만난 동료들이 더욱 가족 같아졌다. 정이 들 무렵이면 한 명씩 취직했다거나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며 클랜을 탈퇴했다. 그 자리는 금세 새로운 멤버로 채워졌다. 허무했다. 이곳에선 정든 사람이 떠나도 다른 사람이 쉽게 대체할 수 있구나.
게임은 경쟁적이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서고 인정을 받으니, 다른 팀을 다 죽이지 못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느 순간 폭력이 만족을 부른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 그는 그토록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은데 왜 하고 있지? 다시 허무해졌다.
클랜을 탈퇴하기는 어려웠다. 그동안 쌓은 전적은 화려했고 계정과 계정들이 우애 이상으로 엮여 있었다. 떠나는 이유가 있어야 했는데 없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불행한 자신이 싫어 떠나는 건 그들에게 온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사실 비겁한 변명이었다. 스스로 용기만 내면 되었다. 현실에선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그냥 사라지기로. 평소처럼 ‘내일 봐’ 하고 계정을 지웠다. 일 년 반,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게임하던 시간의 흔적들이 깨끗해졌다. 내가 떠나도 내 자리는 누군가 대체하겠지. 부품 같은 삶이구나. 게임을 하고 싶지 않은데 게임 외에는 돈을 안 쓰며 살아갈 방법을 몰랐다.
계정을 지운 그는 허무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 옆 액자엔 해맑게 웃는 어린 니콜라스가 있었다. 이 소년은 어디로 간 걸까. 마지막으로 웃어본 게 언제일까. 다시, 저렇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미소를 다시는 못 찾을 것 같았다. 남을 웃기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던 꼬마 아이가, 웃음을 잃은 폐인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내 인생은 실패했어. 나는 안 될 놈이야. 부정적인 생각이 덮쳤다. 우울증이 왔다.
액자를 버리고 방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날 이후 니콜라스는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침대 위에서 눈을 뜨고 감을 뿐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하고 나쁜 기분이 그를 짓눌렀다. 블라인드를 친 방은 언제나 컴컴했다.
샤를리 엡도가 테러 당하고 그리스가 부도 나고 시리아의 인구 절반이 난민이 될 때에도 그의 방은 여전히 깜깜했다. 리디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혼자 있게 두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 하루 종일 얼굴을 못 보아도,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러려니, 두다 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대신 그가 사진을 보면 더욱 우울해질까 봐 밝은 어릴 적 사진을 다 버려 버렸다.
오후 세 시였다. 블라인드 사이로 가느다란 해가 비쳐 들었다. 문득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대로 있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컴퓨터를 켜 자살 사이트를 들어갔다. 이곳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분노와 우울로 쓴 그들의 글은 니콜라스를 다시 상기시켰다. 역시 삶은 쓰레기 같은 거야.
서랍을 열고 칼을 꺼냈다. 군대에서 받은 칼이었다. 군대라니. 십 대 말, 집을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그곳에서도 나는 실패했었지. 여기서도 또 실패했네. 실패뿐인 인생. 그는 칼을 쥐고 침대에 앉았다. 이제 다 끝이야.
심호흡을 하고 손목을 긋는 연습을 했다. 이만 하면 됐어. 마지막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 카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멈추지 않아 도저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한 마디를 끄집어냈다. “나, 도움이 필요해.”
30분 뒤 카림이 집으로 달려왔다. 니콜라스가 잠적한 뒤 일 년 넘게 왕래가 없었던 그들이었다. 니콜라스는 그의 얼굴을 보자 주저앉았다. 목놓아 엉엉 울었다. 그동안 그가 참고 참아 왔던 불행했던 과거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가자. 이 집에서 나가자.” 카림은 오열하는 니콜라스를 추슬러 나왔다. 그자비에를 불러 함께 스테판이 일하는 레스토랑에 갔다. 이 작고 우울한 남자는 2미터에 가까운 덩치 둘에 부축을 받아 식탁에 앉았다. 눈물은 계속해서 흘렀다.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날 그들은 스테판의 집에서 함께 잤다. 스테판과 카림, 그자비에는 그가 열셋일 때,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채워 주었던, 새로운 가족이었다.
그날 이후 니콜라스는 절대 혼자 있지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했다. 관심과, 사랑과, 지지가 필요했다. 친구들이 자처해서 함께 있어 주었다. 니콜라스도 바뀌었다. 자주 전화를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제안했다. 그전까지는 연락이 오기 전엔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던 그였다. 괜한 자존심에 혼자가 되는 것은 철저히, 나쁜 방식이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구나. 그는 다짐했다. 절대 혼자가 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