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치고 올라오니 무서울 게 없더라

니콜라스 이야기-프롤로그

by 전윤혜

이따금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몸 뉘일 곳이 있고, 출근할 직장이 있고, 가끔은 외식할 수 있으며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이 있고, 하늘 좋은 날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으면서도 불행했다. 좁은 방안이 답답하고 돈을 더 못 버는 것이 아쉽고, 직장에서 실수하는 내가 바보 같고, 매일 쏟아지는 정보를 따라가지 못해 허덕였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지 못해 알 기회를 놓쳤고 아는 것은 더 번드르르하게 말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게 놓친 것만 아쉬워했다. 똑같이 생긴 회색 빌딩과 원룸숲에 둘러싸여 후회에 짓눌려 살았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위로하는 책들도 자신을 사랑하세요, 다정하게 말하는 책들도 가증스러웠다. 다 돈벌이지. 뉴스는 언제나 종말을 이야기했고 그것들을 깔보면서도 한편 서로 비방하는 댓글에서 쾌감을 느꼈다. 부정적인 마음들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견딜 수 없어 한국을 떠났다. 그곳에서 만난 웃음이 많은 니콜라스는, 내가 세상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을 뿐이라는 걸 알려줬다. 그는 서점의 책들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주 관대하고 참을성 있게 나의 불평을 들을 뿐이었고 작은 일마다 분노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 사람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이다지도 화가 없는 걸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한 마디씩 들을 때마다 나는 놀라고,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그런 과거가 있는 줄 몰랐다. 늘 밝기만 하던 그였다. 금발에 푸른 눈, 환한 웃음 뒤에 가려진 그의 과거는 알면 알아갈수록 깊은 동굴로 나아가듯 깜깜해졌다. 폭력과 방임으로 얼룩진 가련한 꼬마의 이야기. 아무도 책임지지 않던 아기. 이 우울한 성장기의 끝은 어디일까. 니콜라스의 이야기는 가족 개념이 해체된 프랑스의 표상이었고, 무책임한 텔레비전 세대의 결과였다. "바닥을 치고 올라오니 무서울 게 없더라." 그는 이따금 말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한때 죽기까지 결심했던 그는 이제 누구보다 긍정적이려, 자신을 사랑하려 노력한다. 뭘까. 무엇이 그를 괴롭혔고 무엇이 그를 죽음까지 내몰았으며 무엇이 그를 극복하게 만들었을까. 그를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


니콜라스 이야기는 조그만 불행은 불행도 아니니 억지로 삶에 감사해야 해, 하는, 불행을 저울질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으로써 안도를 얻게 되는 이야기는 더더욱. 다만 방 한 칸, 빌딩 속에 매여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상 반대편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불행에 맞서 포기도 노력도 모두 해보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한 청년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를 모아 써내려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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