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이야기 1
레이몽드 쇼송은 1934년 르망(Le Mans)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아래,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2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르망은 일 년에 딱 한 번 자동차 경주에만 사람이 몰리는 그저 그런 시골이었다. 르망 토박이들은 r을 강하고 촌스럽게 굴려 발음했다. 쇼송 가의 사람들도 그랬다.
레이몽드의 아빠는 농부였고 엄마는 집안일을 했다. 첫째 레이몽드 이후 열두 명의 자녀가 태어났으니(정확하게는 죽은 아이까지 열다섯이다.) 집안일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농장에선 아이가 곧 노동력이었다.
레이몽드 집에는 소를 다섯 마리 키웠다. 소들은 들판에서 풀을 뜯다 밤이 되면 농장으로 돌아왔다. 레이몽드는 부모님이 소젖을 짤 때 바가지를 들고 옆에서 젖 짜는 시늉을 했다. 우유를 뒤집어쓰기 일쑤였지만 장난치듯 맛있게 먹었다. 갓 짠 우유는 뜨겁고 달았다. 농약도, 화학 비료도 치지 않을 때였다.
남는 우유로는 버터를 만들었다. 레이몽드는 엄마 옆에서 커다란 우유통의 우유를 휘저었다. 몸이 배배 꼬일 때까지 젓다 보면 우유 거품은 조금씩 단단해지다 크림으로 변했다. 크림은 패대길수록 모양이 잡혔다. 덩어리를 통에 꾹꾹 눌러 담으면 버터가 되었다. 시골의 일상은 그랬다.
여섯 살쯤이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벨기에의 숲으로 숨어 들어온 나치군은 한 달 만에 프랑스를 점령했다. 동네 아저씨들은 군대로 끌려갔지만 레이몽드의 아빠는 부양할 아이가 너무 많아 제외됐다. 프랑스 정부는 중남부의 비시(Vichy)로 후퇴했고 샤를 드골은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 정부를 꾸렸다. 결국 르망이 위치한 북프랑스에는 프랑스'인'과 독일'군'만이 남았다. 전쟁 중이었지만 별다를 것은 없었다. 남은 사람들은 농사를 지었고 이따금 독일 병사들이 와 주민들을 감시했다. 르망은 가져갈 것도 별 재미 볼 것도 없는 곳이었다.
전쟁은 길어졌다. 그사이 레이몽드는 십 대가 되었고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했다. 연합군은 남하하며 르망을 지났다. 레이몽드는 군인 발소리가 들리자 동생들과 얼른 테이블 아래로 숨었다. 문이 열렸다. 커다랗고 검은 사람.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흑인이었다. 미국 군복을 입은 그들은 동생들에게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 갔다. 두 달 뒤 프랑스는 해방됐다. 한여름이었다. 이듬해가 되자 파리에선 보란 듯이 전쟁 전처럼 패션쇼와 모터쇼가 열렸다.
스무 살이 된 레이몽드는 르망을 떠났다.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녀는 파리에서 가정부 일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남의 집 요리와 청소와 빨래를 했다. 어린 그녀를 착취하던 몇 집을 전전하다 스물네 살, 테리용 부부를 만났다. 디올의 디렉터였던 무슈 테리용의 집은 샹젤리제와 루브르를 걸어갈 수 있는 부촌에 있었다. 테리용 부부는 자신의 집 근처 건물 꼭대기의 하녀방을 한 칸 얻어줬다. 매일 일곱 층 계단을 올라야만 했고 방 열 개가 공동 화장실 하나를 사용했음에도, 시골 소녀는 파리 한가운데 살게 되어 감사했다. 부부가 여행을 갈 때도 함께 떠났다. 덕분에 브르타뉴로, 프로방스로, 알프스로 프랑스 곳곳의 아름다운 성과 호수에 머물렀다. 돌아온 샤를 드골이 권력을 잡을 무렵이었고 오르세 미술관이 오르세 역일 시절이었다.
일은 아침 아홉 시에서 저녁 여섯 시까지만 했다. 일이 끝나면 센 강변을 걷고 몽마르뜨에 올랐다. 그러다 로제 리우를 만났다. 로제는 공장에서 기계의 부품을 만들었다. 밀리미터 단위의 것들을. 둘은 금세 사랑에 빠졌고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가족들에게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레이몽드 쇼송에서 레이몽드 리우가 되었다. (이 시기의 이야기는 레이몽드 외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작게 웃음 지으며 ‘사랑은 미스터리한 것’이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