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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22. 2021

일부러 낸 시간

      멀리 있을때 네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허식없이 편안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낀다.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지,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함께하고픈 그들에게 성의를 다하고 싶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열정 과잉의 거친 나를 거울처럼 비추어주고 다듬어준 사람들 덕분에 이 자리에서 분발하며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서울 파견근무를 하던 2017년, 아이는 서울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남편은 휴직을 해서 합류했다.  

가족 모두 서울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아이의 제주어 합창단 활동이 있어서 2주에 한 번은 제주를 오가고 있었다.

아이를 챙기고 나면 유일한 제주 일정은 독서모임 하나.     


 16년 지기 공무원 동기 둘. 아이들 학습보다 본인 여행 계획 세우기에 바쁜 나팔수 J와 지독히도 건조하고 말수 적은 녀석 K와의 독서모임. 물론 매번 독서모임은 J가 전해주는 귀한 정보들과 제주와 서울의 일상을 비교하며 흥분하거나 깔깔거리는 수다모임으로 격상(?)된다.     


  독서모임은 K의 느닷없는 결단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그해  그녀가 서울연수원 하반기 6개월 과정에 신청한 것이다.  스스로도 ‘주입식’이라 말하는 안정 추구형의 성격과 유치원, 초등 4학년 두 딸아이를 둔 형편이라 주변에서 모두 놀라는 결정이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 있어 선택한 두려움 섞인 도전이라는 것을.   

   

 나는 근무로, K는 연수로 서울생활은 분주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던 어느 토요일, 그녀가 말한다


‘언니가 서울에서 내려와 만날 때는 몰랐는데 그게 얼마나 애써 만난 건지, 일부러 시간을 낸 건지 이제야 알겠다.  

난 주말에 내려오면 다른 사람 만날 기운도, 시간도 없어 겨우 애들과 밥 먹고 챙겨주고 올라가는 게 끝인데...‘




제주에 있을 때는 온갖 만남이 잦았다.

학교 친구, 동료, 선후배로 이어지는 인적 네트워크 접속이 정신없이 바빴다. 그녀와의 만남은 후순위 이거나 여럿이 함께 있으면 그녀는 말없이 그림처럼 자리했다.


그러다 파견기간, 모처럼 내려오는 제주에서의 짧은 주말 동안은 만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그렇게 독서모임만은 열심히 참여한 것이다. 실은 그녀와 얼마나 함께 하고 싶은지는 물리적 거리를 두게되면서야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누구의 사랑을 얻고 싶은지는 거리를 두고 볼 때, 어쩌면 시간도 기운도 없어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마음을 명확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녀가 한숨에 붙여 혼잣말처럼 묻는다.  

‘어쩌다 이런 재미없는 직장에 들어왔을까?’     


그녀에게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나를 만나려고 왔지, 우리를 이어준 고마운 곳이야’     


한참 동안 말이 없는 그녀의 촉촉한 눈가가 대답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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