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강한 부모를 위한 위로
저는 부모 자식 인연이 일률적이라는 주장, 정상 가족의 환상을 밀어 넣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집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을 향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 하지만, 정작 부모도 인정받고 위로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은 쉽게 잊곤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도 인정받고 위로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그러합니다.
저의 작은 에피소드를 공유해보려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 무심코 반복하는 말속에서 그 사람의 내면과 욕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건 명상이나 초능력 같은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관심을 기울이면 보이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저의 부모님 중 한 분이 무심코 이런 표현을 자주 쓰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저 사람은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저럴 수 있겠지.”
한 번씩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세계 여행을 하는 모습을 다큐에서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 사람은 영어를 할 줄 아니까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었겠지."
자식들이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이런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기초 영어 교재를 만들 때마다 부모님께 한 권씩 드렸습니다. 아침마다 한 페이지씩 읽으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책 좋더라. 꾸준히 하면 진짜 영어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좋아하시더군요. 그러나 운전면허를 가족끼리 가르치기 어려운 것처럼, 영어도 가족끼리 꾸준히 가르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무심히 스쳤지만 돌이켜보면 저희 부모님은 영어 공부에 대한 열망이 계속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이 번갈아가며 해외에서 생활할 때, 부모님은 영어로 주소를 적어 소포를 보내시곤, 굉장히 뿌듯해하셨거든요.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할 때면 체크인은 자식들이 맡지요. 한 번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면 곧 체크인하고 오겠다며 몸을 돌렸는데 눈앞에 부모님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몸을 돌리는 그 짧은 시간에 반대 방향으로 달려와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어! “
최근 저는 영어와 한국어 가사가 포함된 명상 노래를 작업했습니다. 그 노래는 그동안 애쓴 스스로를 인정하고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부모님께 들려드리자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영어도 늘겠네."
그 노래는 한 문장씩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나오게 편집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팝송 공부할 때처럼 활용하면 분명 도움이 됩니다. 다만, 저는 명상과 힐링에 관련한 주제만을 다루니까, 그와 관련한 표현들이 늘겠지요.
“가사가 너무 좋더라. 지하철 탈 때마다 한 줄씩 보면 좋을 것 같아.”
그래서 가사를 크게 출력해 드렸습니다. 그때 문득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도 목적이겠지만, 사실 혼자 이 가사를 음미하는 시간을 더 갖고 싶어 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부모님도 지금껏 부모란 위치의 의무로만 지금껏 버텨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책임감이 강한 성격들은 자신과 남에 대해 더 엄격하다 보니, 스스로를 인정하고 위로할 기회가 많이 없었겠지요.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부모도 나이가 들어도,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인정받고 위로받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건 저의 개인 에피소드지만, 여기에 명상적 조언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 명상으로 인생을 바꾸는 법 | 알아차림과 인정하기의 힘
명상을 통해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알아차리기 그리고 인정하기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단순히 명상의 과정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일상에서도 적용한 것처럼, 삶 전반에서 이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명상의 목표는 내면과 현실 세계의 온전한 통합,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정하기의 힘
인생에서 겪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삶이 바뀌곤 합니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단절시키려고 합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렇게 억눌린 부정적 에너지를 ‘그림자’라고 표현했으며, 저는 칼 융의 표현을 포함하여, 명상을 하며 접할 수 있는 부정적 에너지까지 포함하여 더 넓게 그림자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좋고 싫음(호오, 好惡)’의 판단을 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소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처럼 우리는 일상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원을 빈다는 것 자체가 삶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행복과 고통을 분리하는 태도입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들을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해 주고, 흘려보내면, 그 순간 내면은 조화롭게 통합되며 잠잠해집니다. 그렇게 우리의 내면이 통합되면, 내면의 삶이 우리 인생에서 의도한 숙제를 한 단계 무사히 끝낸 셈이기 때문에 인생도 자연스럽게 변화합니다. 그렇게 다음 단계의 숙제로 이동하는 것이지요.
알아차림을 연습하는 방법
알아차림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하는 말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주 반복하는 말을 의식적으로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면, 무의식적 감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명상 수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알아차림이란 게 꼭 명상에서만 쓰이는 표현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도 여전히 유효한 힘을 가집니다.
이번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였지만, 알아차림과 인정하기의 태도를 삶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면 명상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