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의식, 의식, 신경계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내가 알아차리고 행하는 모든 과정을 리듬정렬™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작업 중인데, 이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될 것 같다.
내가 과거 명상, 태극권, 몸미학 등을 기반으로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 해 왔던 매 순간의 실천들을 나는 리듬정렬™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걸 영어로 번역하면, 리듬 어튠먼트(Rhythm Attunement™)라 부른다.
흔히 '정렬'을 번역할 때는 alignment라는 단어로 쓰는데,
나는 영어로 리듬정렬을 표현할 때 의도적으로 리듬 정렬(Rhythm Alignment)과 리듬정렬™(Rhythm Attunement™)의 차이를 구분한다.
한국어로 표현할 때는 단어로는 구분이 안 가서 리듬정렬™로 붙여 쓰며 tm 표시를 써가며 이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는 중이다. 그래야 나중에 오해 없이 리듬정렬™을 말하는지, 일상적인 언어로 리듬 정렬을 말하는지 구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리듬정렬™ (어튠먼트)는 내가 알아차리고 주도하는 과정이다.
마인드풀니스 명상이든 알아차림 명상이든, 비슷하게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현재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고, 내 삶의 주도권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여기서 좀 더 깊은 우리의 무의식의 작용까지 포함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무의식은 의식적 자아의 의도와 무관하게, 내 삶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한다. 그 힘의 작용 범위를 깊게 이야기하자면 또 명상이나 내면 수행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단 누구에게나 그런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한다.
사실 리듬정렬™ 어튠먼트가 없더라도 삶은 결국 우리를 자기중심으로 되돌려 보낸다.
하지만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날 때, 대개는 강제적인 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경험이 특히 고통스러운 이유는
혼란이나 붕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크게 고통받는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다.
인간은 모르는 상태 자체에 이름을 붙이기만 해도 신경계는 안정을 찾는다. 극단적으로는 UFO란 단어도 있다. Unidentified Flying Object,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현상 자체를 단어로 쓰기도 한다. 의료계에서 이름 붙인 많은 증상들 역시 사실은 임시적인 명칭인 경우가 흔하다. 그것이 곧바로 해결책을 주지도, 정확한 원인을 알려주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붙는 순간, 그 현상은 관리 가능한 대상이 된다. 적어도 신경계의 위협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은 막아주고, 그 경험을 경계 지어진 대상으로 만들며, 그 결과 자율신경계는 진정된다.
그래서 리듬 정렬(Rhythm Alignment)과 리듬정렬™ (Rhythm Attunement™)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리듬정렬은 우리가 내면의 중심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혹은 귀 기울이는 방법을 모를 때, 삶이 개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이며,
그리고 종종 ‘혼란’의 형태로 도착한다:
위기
배신
번아웃
붙잡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성공
정체성 붕괴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감각
리듬 정렬은 삶이 강제로 지금보다 더 통합된 버전의 나의 레벨로 멱살 잡고 끌어당기는 방식이다.
당연히 삶이라 표현하는 무의식은 의식적 나의 허락을 묻지 않는다.
그래봤자, 의식적 자아의 에고는 '싫다~~!'라고 말할 테니까.
하지만 이건 카르마도, 징벌도 아니다.
그냥 우리 존재가 더 통합된 상태로 존재하기 위해 움직이는 자연의 질서다.
낮이 있고, 밤이 있고,
지구가 도는 것처럼 그저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내가 의지를 가지거나,
내가 더 도덕적이라고 해서 낮을 막고 밤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지금보다 더 도덕적으로 산다고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누구든 지금보다 에고의 집착이 해체되면 더 일관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고,
무의식의 힘으로 작용하는 우리의 삶은 당연히 그 길이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길을 택한다.
하지만 그것이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의 자각이 따라잡기도 전에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다시 쓰이기 때문이다.
리듬정렬™은 이런 존재의 통합에 스스로 참여하기로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의식적이고,
의도적이며,
매우 정밀하다.
그리고 굉장히 자기 주도적이다.
리듬정렬™은 다음과 같다:
위기가 되기 전에 변화를 인식한다
확장이 시작되는 순간을 감지한다
정체성을 삶이 강제하기 전에 먼저 조정한다
강요당하지 않고 놓아준다
붕괴 없이 진화한다
리듬정렬™은 변화를
덜 폭력적으로,
덜 갑작스럽게,
덜 소모적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리듬정렬™은 삶의 변화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도적 자각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리듬 정렬 (얼라인먼트)은 폭풍이다.
리듬정렬™ (어튠먼트)는 폭풍이 형성되기 전에 바람을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리듬 정렬 (얼라인먼트)은 지진이다.
리듬정렬™ (어튠먼트)는 땅이 심하게 흔들리기 전에 기초를 매 순간 조정하며 다지는 과정이다.
리듬 정렬 (얼라인먼트)은 삶이 강제로 개입하는 힘이다.
리듬정렬™ (어튠먼트)는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둘 다 성장을 이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는 감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참, 한 가지만 더 덧붙인다.
리듬정렬™ (어튠먼트)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삶이 강제로 리듬 정렬 (얼라인먼트)을 하는 일을 막을 수 있거나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자체가 이미 에고의 집착과 욕심이다.
다만, 삶의 강제 리듬 정렬 순간에 내가 지금 어느 국면을 통과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이때 어떻게 하면 내 중심을 잡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내 중심을 잡으면, 무의식이 강제하는 정렬은 반드시 나를 살리는 길로 이끈다.